1972년 ‘피의 금요일’에 투옥됐다가 66일간의 단식 끝에 숨진 아일랜드공화군(IRA) 소속 청년 지도자 보비 샌즈의 얼굴이 북아일랜드의 수도인 벨파스트 건물 벽면에 그려져 있다. 박소진 신한대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 교수 제공
중국과 대만 사이 양안의 평화교류 사례와 함께 남북한의 평화체제 전환을 위해 한국과 같은 분단국가인 아일랜드의 평화프로세스 모델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세기 동안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아일랜드는 1921년 남북으로 분단됐다. 북아일랜드는 영국연방에 남고 남쪽은 독립 주권국가인 아일랜드공화국으로 분리됐다. 북아일랜드에 있는 얼스터대의 숀 패런 교수는 아일랜드의 분단은 주로 종교와 정치적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즉 약 60%를 차지하는 북부 아일랜드인들은 개신교를 믿고 자신을 영국인이라고 여긴 반면, 40%인 남부 아일랜드인은 로마가톨릭을 믿고 스스로를 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북 아일랜드는 분단 이후 접촉이 거의 없이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오다 1970년대 테러 활동이 시작되면서 사회 불안정이 고조됐다. 1968년부터 1998년까지 30년 동안 북아일랜드에서 발생한 폭력적인 갈등으로 35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시민이었다.
남북 아일랜드는 폭력을 끝내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1998년 벨파스트(성금요일) 협정을 맺고, 다양한 평화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특히 남북 아일랜드는 장관급 협의회를 설립해 아일랜드섬 전체에 상호이익이 되는 프로젝트를 개발하자고 약속했다. 남북의 장관들은 농업, 교육, 운송, 환경보호, 내륙 수로, 관광 등 12개 분야에서 정부간 협력을 합의했다. 또한 남북의 무역을 증진하고자 ‘아일랜드 상호무역’이라는 기구를 설립하고, 국외 관광 마케팅 개발을 위해 ‘아일랜드 관광’이라는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아스팔트를 포장한 시간 차이로 약간의 색깔 차이를 보이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국경선. 박소진 신한대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 교수 제공
지방정부도 나섰다. 정부간 협력에 이어 남북의 지방정부 차원에서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남북 컨소시엄을 창설했다. 이 가운데 남북 각 4개 지역협의회가 참여한 ‘아일랜드 중앙국경지구 네트워크’(ICBAN)는 유사한 지리적, 경제적, 사회적, 행정적, 정치적 특징을 공유하며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대학, 학교, 교사교육 연계 활동과 치안, 보안 영역에 관한 프로젝트도 진행됐다. 중앙과 지방정부 외에 평화활동을 해온 많은 자발적 기구들도 힘을 보탰다.
이런 노력에 따른 효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일랜드 상호무역은 한 보고서에서 “(정부간) 협정 이후 섬 전체에서 국경을 넘어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의 새 시대가 열렸다”고 밝혔다. 패런 교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남북 아일랜드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새로운 우정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됐다”며 “이런 노력들은 평화 정착의 희망이 됐다”고 말했다.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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