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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수도권

냉전이 선물한 ‘4873종 동식물 낙원’…난개발로 환경파괴 우려

등록 2019-10-05 05:00수정 2019-11-04 22:17

경기도-한겨레 공동기획
【DMZ 현장보고서】 ③천혜의 생태환경
파주~고성 248km…국토의 1.6%에 해당
사람 손 타지 않는 ‘생명과 생태의 공간’
개발 바람불며 생태계 파괴 우려 높아져
민통선 안 국유지 습지보호지역 지정부터
겨울철새인 기러기들이 경기도 김포 한강 하구 철책선 위를 날고 있다.
겨울철새인 기러기들이 경기도 김포 한강 하구 철책선 위를 날고 있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는 전쟁과 분단이 낳은 비극의 땅이지만 자연에는 축복의 땅이다.

분단 이후 66년간 남북이 철조망을 견고하게 세우고 대치하는 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은 세계에서 가장 삼엄한 ‘중무장지대’를 평화와 생명의 공간으로 바꿔놨다.

경기 파주에서 강원 고성까지 248㎞ 길이의 비무장지대 생태축은 구릉과 하천, 농경지, 습지가 넓게 펼쳐진 서부(파주, 연천)와 산악 지대인 동부(화천, 양구, 인제, 고성), 그 중간에서 생태통로 구실을 하는 중부(철원)로 나뉜다.

산악 지대, 습지, 강, 평야 등 생태계를 두루 갖춘 비무장지대는 국토 전체 면적의 1.6%에 불과하지만 멸종위기종 91종(41%)을 포함한 야생생물 4873종(20%)이 깃들여 사는 동식물의 낙원이 되었다.

특히 임진강과 사천, 사미천, 한탄강, 역곡천, 철원평야 등 습지와 농경지가 발달한 중서부 지역은 세계적 보호종인 두루미, 재두루미의 가장 안정적인 서식처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고 있다.

산림 지역인 동부 비무장지대 일원은 반달가슴곰을 비롯해 산양, 사향노루, 삵, 수달, 담비, 하늘다람쥐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보금자리다.

비무장지대의 우수한 생태환경은 분단이 안겨준 뜻밖의 선물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를 타고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후퇴, 도로 개설 등 개발 구상이 곳곳에서 고개를 들면서 생태계 파괴 우려와 함께 지역주민들의 삶까지 위협받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민간인통제구역 농경지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 1급인 수원청개구리. 파주환경운동연합 제공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민간인통제구역 농경지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 1급인 수원청개구리. 파주환경운동연합 제공

서부 DMZ 생태계 핵심 ‘습지와 강’ 서부 비무장지대 일원 생태계의 핵심은 임진강과 논이다. 하구가 열려 있는 임진강·한강 하구는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면서 산남습지, 공릉천하구습지, 성동리습지, 장단습지, 문산습지, 임진각습지, 초평도습지 등 많은 습지를 조성했다. 습지는 배후의 논과 웅덩이, 자연하천과 더불어 야생생물의 서식처가 되고 있다.

파주환경운동연합이 2012년부터 매주 1회씩 낮에 조사한 결과, 임진강 하구 유역에서 조류, 곤충, 어류, 포유류, 양서파충류 등 총 47종의 멸종위기종이 확인됐다.

임진강 하구에서 사미천을 지나 철원 역곡천에 이르기까지 비무장지대에는 과거에 논이었다가 자연습지로 변한 땅이 넓게 펼쳐져 있다. 자연습지는 논으로 이어지고 자연하천의 원형을 간직한 임진강 줄기로 연결된다.

특히 임진강과 민통선 주변 논은 두루미와 재두루미, 저어새, 흰꼬리수리, 뜸부기, 큰기러기 등 멸종위기 조류가 먹이터, 산란터, 쉼터로 활용하는 중요한 습지다. 멸종위기종인 수원청개구리와 금개구리를 비롯해 삵, 구렁이, 맹꽁이, 물장군, 물방개 등이 사는 곳도 논이다.

하지만 정부는 쌀 생산량이 많다는 이유로 논을 줄이는 정책을 펴는데다, 논을 생태·자연도(자연환경을 생태적 가치 등에 따라 등급화해 작성한 지도) 3등급지로 분류해 철원·파주의 많은 농경지가 개발 압력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환경운동연합은 파주·연천·철원 지역 농민·환경단체 등과 함께 “민통선 안 국공유지 농경지부터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자”는 내용의 ‘민통선 내 논습지 보전 방안’을 지난달 정부에 정책제안 했다. 보호 대상지로는 △파주 임진강 마정리, 사목리, 거곡리 하천 부지 농경지 △파주 장단반도 농경지와 갈대습지 △연천 임진강 군남홍수조절지 상류 하천 부지 △철원평야 중 지뢰 매설 지역 등을 꼽았다. 환경운동연합은 이 밖에도 △부재지주의 소유지 매입 예산 책정 △농민소유지 지원책 확대 △밭작물 전환지원제 폐지△생물다양성관리계약 예산·대상 확대 △농수로 시멘트화 금지 등을 제안했다.

환경부는 2006년 김포·고양·파주의 한강 하구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지만, 임진강 하구는 보호지역에 포함하지 않았다.

전세계 두루미 절반이 찾아오는 연천·철원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 임진강 유역에서는 ‘겨울의 전령’인 기러기 수십마리가 무리 지어 날았다. 5~6년 전까지 논농사를 짓던 85만㎡ 규모의 마을 앞 홍수터는 군남댐 준공 뒤 한국수자원공사가 영농을 금지하는 바람에 가시박과 단풍잎돼지풀 등 유해식물로 뒤덮였다.

파주나 연천보다 추수가 이른 철원에는 지난달 17일 재두루미 32마리가 동송읍 강산리 들녘을 찾아왔다. 기러기류 1만7천마리도 철원에 안착했다.

보통 10월 말에서 3월까지 한반도에 머무는 두루미류는 대부분 철원과 연천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겨울을 난다. 지난해 2월 연천에서는 두루미 374마리, 재두루미 387마리, 시베리아흰두루미 2마리가 확인됐다. 철원에서는 올해 1월 조사에서 총 5492마리의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관측됐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올해 야생에 있는 두루미 개체 수를 1830마리로 추정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 겨울을 나는 셈이다.

철원이 세계 최대의 두루미 월동지가 된 것은 1만㏊가 넘는 논의 절반 이상이 민통선 안에 있어 두루미가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춰서다. 여기에 철원만의 독특한 생태계인 둠벙형 샘 ‘샘통’이 들녘 곳곳에 있고, 한탄강, 역곡천, 대교천, 토교저수지 등 두루미들의 안전한 먹이터와 잠자리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민통선 해제와 막개발로 두루미 서식처가 크게 위협받고 있어 지역주민들의 우려가 크다. ‘철새 마을’인 동송읍 양지리는 2012년 민통선에서 해제된 뒤 축사가 마구 들어서 두루미가 서식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철원군에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총 18만㎡ 규모의 기업형 축사 78개가 들어섰다.

세계 최대의 두루미 월동지인 강원도 철원군 한탄강변에서 두루미들이 겨울을 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두루미 월동지인 강원도 철원군 한탄강변에서 두루미들이 겨울을 나고 있다.

또 군부대가 빠져나간 자리에 태양광발전 시설이 난립해 지역주민들이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막개발 횡포”라며 반발하고 있다. 철원에서 최근 허가된 태양광발전 사업은 400건이 넘는다.

최종수 ‘두루미와 농사짓는 사람들’ 대표는 “민통선이 풀리고 축사와 태양광 시설이 들어서면서 두루미뿐 아니라 흔하게 보던 삵이나 맹꽁이, 두꺼비 등도 3년 새 거의 사라졌다. 민통선이 해제되면 개발을 막을 수 없으므로 농민과 두루미가 공생할 수 있는 땅을 정부가 미리 확보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연천 지역도 임진강 상류 여울과 비무장지대 일원에 습지, 먹이터인 율무밭이 많아 천혜의 두루미 서식처로 꼽힌다. 장군여울은 임진강 물길 가운데 섬 모양을 이루어 천적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잠자리다. 장군여울보다 500여m 상류에 있는 빙애여울은 20~30㎝의 얕은 여울로 겨울에도 얼지 않아 두루미가 물고기나 다슬기를 잡아먹을 수 있다.

하지만 수자원공사가 홍수조절지로 만든 군남댐에 겨울철 담수를 강행해 장군여울이 잠기는 등 두루미의 서식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삼곶리의 민통선 검문초소가 올해 안에 횡산리 쪽으로 3㎞가량 북상할 예정이어서 두루미 서식지 보호에 비상이 걸렸다. 이석우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YICN) 공동대표는 “보호대책 없이 초소를 이전할 경우 두루미의 잠자리인 장군여울과 빙애여울이 차량과 인파에 노출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천군 관계자는 “관광객 편의를 위해 초소를 이전하더라도 기존의 삼곶리 초소를 존치해 야간에 출입을 통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재두루미 한쌍이 지난해 10월 추수가 끝난 경기 파주시 민간인통제구역 안의 논에서 먹이를 먹고 있다.
재두루미 한쌍이 지난해 10월 추수가 끝난 경기 파주시 민간인통제구역 안의 논에서 먹이를 먹고 있다.

냉전이 보호한 생태계, 화해로 훼손 위기 비무장지대 일원은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를 타고 ‘생태·평화·관광 활성화’ ‘디엠제트 생태, 문화, 관광벨트 개발’ ‘남북 철도, 도로 연결 현대화 사업’ 등 각종 개발계획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접경 지역 발전 종합 계획으로 2030년까지 총 13조2천억원의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관광자원 개발, 도로 개설, 비닐하우스·축사 신축 등으로 일부 지역에서 멸종위기종 서식지가 파괴되고 주민의 삶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 같은 개발계획들은 생태 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김충기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자연환경연구실장은 지난달 19일 경기도가 주최한 디엠제트포럼에 참석해 “한번 손상된 생태계는 회복하는 데 수십∼수백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생명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고 해도 원시의 자연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그 어떤 이용·개발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추진 중인 문산-도라산 고속도로는 장단반도와 백연리 등 마을 들판을 지나도록 설계돼 주민의 반발이 크다. 장단반도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통일경제특구’와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등장하는 ‘제2의 개성공단’의 유력 후보지로 꼽힌다. 환경단체는 장단반도가 문산 지역 홍수 예방을 위한 저류지이고, 학교 급식 쌀로 납품하는 친환경쌀 생산지이며, 멸종위기 동식물의 서식지란 이유로 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노현기 파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디엠제트 보전이 의미를 가지려면 4㎞의 좁은 띠가 아니라 민간인통제구역까지 연결해 보전해야 한다. 지금 민간인통제구역에서 시급하게 할 일은 개발이 아니라 생태조사, 문화재 지표조사”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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