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율동패가 공공일자리 제도화 촉구 결의대회에서 문화공연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서울시가 최중증 장애인의 노동권을 실현한다며 2020년 도입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를 보수언론 등의 지적을 이유로 사실상 무력화했다. 특히 해당 일자리의 주요 업무인 ‘장애인 권익옹호’ 부문을 삭제하면서 “집회 신고 여부를 불문하고” 모든 시위, 집회, 캠페인 활동을 금지한 것을 두고선 최중증 장애인의 기본권과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는 지난 6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를 수행하는 단체에 지침을 보내 “7월 1일부로 집회 신고 여부를 불문하고 시위, 집회, 캠페인 활동은 일자리 활동에서 제외한다. 선전전, 촉구·결의·투쟁대회 및 기자회견, 가두행진 등과 유사한 행위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2020년 서울시가 “최중증 장애인에게 노동의 기회를 준다”며 시 예산을 투입해 만든 이 공공일자리는 최중증 장애인과 탈시설 장애인이 △장애인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등의 활동을 통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업무를 수행한다. 당시 서울시는 ‘권익옹호 활동’의 사례로 ‘저상버스 직접 타기 행동’ 등 캠페인과 퍼포먼스 등을 포함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 6월 해당 일자리를 수행하는 단체를 모아놓고 “언론이나 의회에서 계속 이 일자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그래서 3월에
실태조사를 한 것”이라며 ‘집회, 시위, 캠페인 활동 불가’ 방침을 일방 통보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이 사업을 문제 삼은 것도 이 때다.
서울시의 바뀐 지침을 두고 법조계 일각에선 위헌 가능성을 제기한다. 최현정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서울시가 “집회 신고 여부를 불문하고”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 “행정기본법에 명시된 법치행정의 원칙, 비례의 원칙, 성실의무 및 권한남용금지의 원칙, 신뢰보호의 원칙 등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행정기본법은 행정이 법률에 위반해서 작용할 수 없고,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때는 법에 근거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행정작용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소한’에 그쳐야 하고, 행정기관이 법령에 따른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그 권한을 남용해선 안된다고도 밝히고 있다.
최 변호사는 이어 “서울시가 ‘지방보조금 관리 조례’를 근거로 ‘지방보조사업 추진이 공익에 반하는 경우’ 보조금 교부를 취소할 수 있다고 지침에 밝혔는데, 이는 집회 참여 자체를 공익에 반하는 것으로 보는 위헌적인 인식을 드러낸다”고 덧붙였다.
공공일자리에 참여해 온 이들은 서울시가 보조금 교부를 볼모로 삼아 사실상 최중증 장애인의 ‘생존’자체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정규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전권협) 정책국장은 “서울시가 (권익옹호 활동을 빼고) 제시한 서비스업 업무는 최중증 장애인이 수행 불가능한 것”으로 “(이런 지침을 유지하면) 사실상 지금 채용된 노동자 수백여명은 해고 위험에 놓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공공일자리에서 일하는 노동자 3명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는 지난달 4일 “하태경 의원이 일자리에 대한 폄하와 왜곡을 일삼고 있다”라며 하 의원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서울시가 보조금을 준다는 이유로 이미 시행 중인 직무를 강제 중단하고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당사자 의사도 확인하지 않고 임의로 결정한 것”이라며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공공일자리를 포함해 장애인 일자리 전반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초창기 ‘권익옹호’ 업무는 예시로 넣은 것이지 그게 주(된 업무)가 아니었는데 지난해부터 갑자기 인식개선 활동이 하나의 의무처럼 해야 된다고 포장이 됐다”라며 “최중증 장애인 일자리는 내년에도 유지하겠지만 (현행 공공일자리처럼) 이대로 할지 다른 형태로 할지는 고민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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