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 보라매공원 동쪽 경계에 미루나무들이 서 있다. 옆에선 신림선 경전철 공사 마무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보초맘 제공
지난 21일 서울 보라매공원을 관리하는 서울시 동부공원녹지사업소(동부사업소)는 인근 주민들, 서울환경연합 등과 함께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사흘 전 동쪽 경계에 있던 미루나무 6그루 가운데 2그루가 강풍에 쓰러져, 남은 네 그루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의견을 구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3월 바로 옆 2그루가 기울어졌을 때, 주민들의 원인 및 상태 정밀 조사 요구에도 아무 답도 없이 벌목 작업을 강행했던 동부사업소였다. <▶관련기사 :
미루나무 두그루 ‘싹둑’ 잘리자…엄마들이 공원에 모였다> 당시 미루나무가 기울어진 원인에 대해 동부사업소 쪽은 식재시기 등을 제시하지 않은 채 “나무가 수명이 다했기 때문”이라고 고집한 반면, 시민단체는 “보라매공원을 지하로 관통하는 신림선 경전철 공사 과정에서 나무의 뿌리가 손상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 뒤에도 제대로 된 원인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3일 서울 보라매공원 동쪽 경계에 미루나무들이 서 있다. 옆에선 신림선 경전철 공사 마무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공사장 쪽 키 작은 메타세콰이어가 공원 쪽 우람한 미루나무와 대조적이다. 보초맘 제공
이번에 쓰러진 미루나무들을 확인해 보니 수령은 30∼40살이었고, 생육상태도 좋지 않다고 동부사업소 쪽은 설명했다. 겉보기엔 똑바로 서서 건강해 보여도 예전 같으면 쓰러진 나무와 비슷한 상태일 것으로 짐작해 “시민 안전이 우려된다”며 남은 네 그루도 곧바로 베어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동부사업소는 이날 주민 의견수렴을 통해 △남은 미루나무 4그루에 대해 주민과 함께 생육상태를 정밀히 조사할 것 △혹여 벌목이 불가피할 경우 기존 나무의 가지를 이용해 삽목 화분을 만들어 주민에게 제공할 것 등을 합의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김달용 조경지원과장은 “그동안 관리주체인 사업소가 제대로 관리 못 해 나무 생육이 안 좋아진 점을 인정한다”고 반성하며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도록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과장은 2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 22일 만남은 나무를 베기 위해 동의를 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무 생육을 보다 정확하게 확인하는 방법을 세우고, 보라매공원에 대한 관심이 많은 주민과 전문성이 높은 시민단체가 그 일에 함께해달라고 요청하는 자리였다. 우리 사업소가 이렇게 주민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건 첫 시도”라며 “이제는 시대적으로 공원 나무들을 관리할 때도 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행정편의보다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관심을 가져달라는 참석자들의 의견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초맘(보라매공원의 보초를 서는 맘들)의 김미라 대표는 “동부사업소의 태도가 1년 새 크게 달라진 점은 환영한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고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보초맘은 보라매공원을 산책하던 학부모 모임에서 시작해 보라매공원과 근처 와우산의 나무와 새 등의 생태를 관찰, 기록하는 주민 모임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