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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받는 오세훈, ‘이재명 판결’ 덕볼까?

등록 2021-09-01 11:20수정 2021-09-01 21:18

오, 토론회서 사실관계 다른 발언…단언하진 않아
이, ‘토론회 답변과정 발언 처벌안돼’ 판례 끌어내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등촌역에서 유세차량에 올라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등촌역에서 유세차량에 올라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경찰이 서울시청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4·7재보궐선거 당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오세훈 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 때문이었다. 당시 선거에서 압승을 바탕으로 한껏 존재감을 키워가던 오 시장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일격이었다. 서울시는 반발했다. “야당 서울시장에 대한 과도한 과잉수사, 정치수사를 규탄한다”는 것이다.

과연 경찰의 수사는 정치수사로 볼 수 있을까? 또 이번 수사가 오 시장 형사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한겨레>가 당시 사건전개 과정과 관련 주요 법리 등을 살펴본 결과, 오 시장이 비슷한 혐의 수사·재판으로 고초를 겪었던 이재명 경기지사 덕을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오 시장 “제목은 기억난다”던 파이시티 사건은

문제의 발언은 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4월5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나왔다. 당시 토론회 영상을 보면, 박영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파이시티 의혹 아시죠’라고 말하자, 오 시장은 “제목은 기억납니다”라고 답했다가, 박 후보가 강철원 당시 캠프 비서실장(현 서울시 민생특별보좌관)이 ‘잡혀 들어갔다’고 언급하자 “아 그러고 나니까 기억이 나네요”라고 말했다.

오 시장이 토론회에서 “제목은 기억난다”고 말했던 파이시티 사건은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에 물류복합단지를 조성하려던 과정에서 일어난 비리 사건이다. 대검 중수부 수사로 엠비(MB) 정권 실세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인허가 알선 명목으로 시행사인 파이시티 쪽으로부터 각각 6억원과 1억6천여만원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로 유죄가 확정돼 징역을 살았다.

강철원 당시 서울시 정무조정실장 역시 인허가 절차의 신속한 진행을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청탁한 혐의로 2012년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고위공무원으로서 공명정대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도 부당한 청탁을 받은 뒤 알선행위를 했고, 이 덕분에 파이시티 측이 막대한 이익을 얻도록 했다”며 “공무원의 공정한 업무처리에 대한 신뢰를 크게 훼손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처리 근간을 흔들어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문제의 토론회 발언 살펴보니

오 시장은 토론회에서 해당 사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일관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오세훈 후보가 시장인 시절에 이걸(파이시티 관련) 인허가를 부탁했다. 대통령의 최측근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박영준 전 지경부 차관. 시장이 이걸 모를 수 있었을까요? 인허가하는데’라는 박영선 후보 질문에, 오 시장은 “파이시티 사건은 서울시…. 제 재직시절에 서울시와 관계된 사건은 아닐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강 특보가 해당 사건에 연루됐다는 점을 들어 ‘시장의 허가 없이는 인허가를 하기가 힘든 상황이더라’고 재차 지적하자, 오 시장은 강 특보가 알선수재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은 기억하면서도 “제 기억에, 파이시티는 제 임기 중에 인허가했던 사안은 아닌 거로 기억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이 2012년 5월 7일 밤 구속영장이 기각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 귀가하고 있다. 하지만 강 전 실장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이 2012년 5월 7일 밤 구속영장이 기각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 귀가하고 있다. 하지만 강 전 실장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하지만, 파이시티 사건은 이명박 시장~오세훈 시장 시절에 걸쳐 이뤄진 비리 사건이다. 이명박 시장 체제였던 2005년 2월 박영준 서울시 정무국장은 서울시 교통담당 간부에게 ‘파이시티 인허가에 긍정적 답변을 내달라’고 독촉했고, 2005년 11·12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자문’을 거쳐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퇴임 전인 2006년 5월 ‘대규모 점포 입점’이 확정됐다. 

이어 오 시장 체제였던 2008년 8월20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해당 용지에 대규모 오피스텔을 허용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두달 뒤엔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도 통과했다. 강 특보는 그 즈음 파이시티로부터 돈을 받았다. 이듬해 1월 시 환경영향평가 동의와 2월 교통영향평가 심의 가결을 거쳐, 11월 서초구에서 건축허가를 내줬다. (▶관련기사: 파이시티, 애초 2년 계획…5년여로 늘어지며 로비로 단축 시도)

경찰 압수수색 뒤 서울시는 “지금 확인한 분명한 사실관계는 파이시티 개발의 시설규모 결정 등 도시계획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와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쳤다. 하지만 파이시티 도시계획시설사업 실시계획인가와 건축허가는 서초구청에서 인허가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 도시계획위원회와 건축위원회 심의는 건축허가와 마찬가지로 사업 추진에 있어 필수적인 인허가 과정의 하나였고, 오 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에서 통과됐다.

“제 임기중에 인허가를 했던 사안은 아닌 거”라는 오 시장 발언은 사실이 아니란 얘기다.

이재명 판결이 오세훈 살릴까?

결국, 사실과 다른 내용을 얘기했지만 단언하지 않고 ‘그렇게 기억한다’는 식으로 말한 게 공직선거법에서 금지하는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하는지가 문제의 관건이 된다. 이는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을 지켜볼 문제지만, 판례상으로는 오 시장이 이재명 경기지사 덕을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지사도 토론회 과정에서 한 발언으로 오랜 세월 수사와 재판을 받아왔는데, 천신만고 끝에 토론회 과정에서 발언은 폭넓게 보장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2018년 5월 경기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하셨죠?’라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그런 일 없다”며 “제가 (형의 정신병원 입원을) 최종적으로 못하게 했다”고 답했다가 기소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후보자 등이 토론회에 참여해 질문·답변하거나 주장·반론하는 것은 그것이 토론회의 주제나 맥락과 관련 없이 일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에서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표명한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며 이 지사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사후적으로 개별 발언들의 관계를 치밀하게 분석·추론하는 데에 치중하기보다는 질문과 답변이 이루어진 당시의 상황과 토론의 전체적 맥락에 기초하여 유권자의 관점에서 어떠한 사실이 분명하게 발표되었는지”를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는지 판단기준으로 제시했다. 이에 비춰 “이 지사가 토론회에서 한 친형 관련 발언은 상대 후보자의 질문이나 의혹 제기에 대해 답변하거나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어서 “토론회의 주제나 맥락과 관련 없이 어떤 사실을 적극적이고 일방적으로 널리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에서 한 공표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었다.

결국 “상대 후보자의 질문이나 의혹제기에 대해 답변하거나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오 시장 발언 만으로는 처벌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선거인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증거나 혐의를 발견하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는 선거일 이후 6개월로, 경찰과 검찰에 남은 시간은 한달 남짓이다. 경찰과 검찰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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