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특별단속’이라는 문구가 적힌 파란 조끼를 입은 단속반원이 대형 스포츠실용차(SUV)의 매연 농도를 측정하고 있다. 이정규 기자
경기·인천·충북·충남·세종·대구·부산·강원 등 9개 지역에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동된 11일. 서울시민과 공무원들은 시내 곳곳에서 미세먼지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중국발 미세먼지라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공무원들은 차량 단속과 주차장 폐쇄에 나섰고 시민들은 대중교통 이용과 자전거 타기로 동조했다. 그 각개전투 속에서 시민들의 폐로 정화된 미세먼지는 이날 오후부터 소강 상태를 보였지만, 올겨울 미세먼지와의 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대한문 건너편 도로에서 100m 길이로 도로 2차선을 막아놓은 채 차량 배출가스 점검이 벌어졌다. 도로에는 ‘운행차량 배출가스 수시 점검’ 팻말이 곳곳에 세워졌다. 빨간 봉을 들고 미세먼지 특별단속이라는 글자가 적힌 파란 조끼를 입은 단속반원이 한 스포츠실용차(SUV)를 멈춰 세웠다. 2004년식 경기도 차량이었다.
“사이드 올리고 아르피엠 4000까지 밟으세요. 5초 꼭 세게 밟으세요. 한번 더 밟으세요. 아니 한번 더….” 단속반원의 요청에 자동차 주인 박아무개(48)씨는 당황한 표정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부르릉’ 소리 뒤 배기관이 까만 매연을 토해냈다. 단속반원이 매연 농도를 측정했다. 박씨는 “내 차가 5등급 차량인 것은 나도 알고 있다”며 “미세먼지 저감장치를 달라는 권고를 받아 10개월 전에 신청했지만 아직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해명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지 이틀째인 11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대한문 건너편 도로에서 차량 배출가스 점검이 벌어졌다. 이정규 기자
배기관에 꽂힌 측정기로 확인된 박씨 차의 매연 농도는 76.9%였다. 자동차 매연 기준치는 배기량의 40%인데 기준치의 1.92배에 이르는 매연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단속반원은 차주인 박씨에게 “정비공장에 가서 배출구에 낀 먼지를 청소하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단속반원이 낸 안내 문서에 서명하고 현장을 떠났다.
이날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이뤄진 단속은 대형 에스유브이 차량과 트럭에 집중됐다. 단속반원들은 차량의 연식과 저감장치 설치 여부를 눈으로 식별해내고 있었다.
관련 조례 시행 전인 대구와 충북을 제외한 7개 시도에서 비상저감조치에 따라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이 제한됐다. 10일과 11일 이틀 연속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서울시는 이날 정오 기준으로 서울 시내를 달린 배출가스 5등급 차량(3만2555대) 가운데 저감장치를 달지 않은 차량 1만4949대를 적발했다.
특히 서울시는 이날 교통량을 줄이기 위해 서울시청과 구청, 시 산하기관 등 공공기관의 주차장 424곳을 모두 폐쇄했다. 이날 오후 찾아간 종로구청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빈 주차 공간에는 빨간색의 주차 금지용 고깔이 세워졌다. 차로 종로구청을 찾은 시민 ㄱ씨는 “미세먼지가 심해 종로구청 주차장이 전면 폐지되는 걸 잘 알고 있다”며 “차량 번호판을 바꿔야 해서 허가받고 주차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전기, 수소,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차량이나 생업용 차량, 장애인, 국가유공자 차량을 제외하고는 차량 운행을 제한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된 지 이틀째인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청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이정규 기자
미세먼지로 인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도 많았다. 차를 놓고 버스를 이용했다는 시민 전상우(41)씨는 “아침부터 마스크 안 쓰고 학교 가려는 아들과 한참 실랑이했다”며 “우리나라는 더운 계절, 추운 계절, 미세먼지 적당한 계절, 미세먼지 심한 계절로 역시 4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씁쓸해했다.
미세먼지는 시민들을 따라 지하철에도 파고들었다. 이날 서울지하철 미세먼지 농도는 덩달아 치솟았다. 한국환경공단 실내공기 질 자료 공개 서비스를 보면, 동대문역 승강장의 경우 미세먼지 농도(PM-10)가 414㎍/㎥를 기록했다. 서울역 지하철 미세먼지 농도(PM-10)는 133㎍/㎥였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외부에 미세먼지가 많다 보니까 지하철 승강장도 수치가 올라갈 수 있다”며 “동대문역은 아직 미세먼지 정화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세먼지의 근본 원인을 줄이려는 시민들의 노력도 있었다. 거리에는 미세먼지 마스크를 쓴 채 공공 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지나가는 시민이 적지 않았다. 시민 ㄴ씨는 “원래 따릉이 타기를 좋아했다”며 “요즘 들어서 가까운 거리는 택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다 따릉이를 타고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김동규(21)씨는 “자동차 문화와 미세먼지는 동전의 양면 같다. 미세먼지가 걱정되지만 나부터 자전거를 더 많이 이용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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