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억원을 들여 잘못 만든 국내 최대, 최고의 역인 광명역. 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시민들이 고속철도 이용에 불편을 겪고 지역 간 갈등까지 일어나는 이유는 애초 고속철도역을 만들 때 기존 역과 분리해 고속철도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는 고속철도와 일반 철도를 통합 운영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2일 <한겨레>가 전국의 고속철도역을 분석해보니 18개 주요 역 가운데 서울, 용산, 대전, 동대구, 부산, 익산, 정읍 등 7개 역만 기존 철도역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1개 역은 도심에 있던 기존 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새 역을 설치했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는 광명역이다. 고속철도 건설 초기, 정부는 서울역에서 남쪽으로 24㎞ 떨어진 광명시 변두리에 경부고속철도 출발역을 설치하려고 했다. 이 경우 광명역에서 부산까지는 2시간30분 정도면 도착하지만, 서울 대부분 지역에서 광명역까지 이동하는 데는 1시간 이상이 걸리는 문제점이 생긴다. 결국 정부는 광명역 출발을 취소하고, 출발역을 경부선은 서울역, 호남선은 용산역으로 바꿨다.
그러나 정부의 뒤늦은 결정으로 광명역 건설은 그대로 진행됐고, 노선도 광명역 쪽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유지됐다. 광명시 변두리에 건설된 국내 최대 기차역인 광명역에는 무려 4천억원이 투입됐다. 반면, 가장 중요한 역인 서울역과 용산역엔 한푼도 투자하지 않았고 모두 민자 사업자에 넘겨 역 구조와 기능이 심하게 훼손됐다. 또 광명역 설치에 따라 노선이 바뀌어 인구 120만명의 경기도 최대 도시이며 기존 경부선 철도의 중요 역인 수원역이 경부고속철도에서 배제되는 어이없는 결과도 나타났다.
국내 최대의 기차역인 서울역은 민자 사업자에 넘어가 상업 시설로 뒤덮였다. 서울시
결국 이용자가 많은 대도시인 서울, 대전, 대구, 부산 4곳에선 기존 역이 그대로 이용됐다. 그러나 다른 도시에선 이런 문제가 시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천안역 대신 천안아산역, 조치원역과 청주역 대신 오송역, 김천역과 구미역 대신 김천구미역, 경주역 대신 신경주역, 태화강역(옛 울산역) 대신 새 울산역, 광주역 대신 광주송정역이 고속철도 역으로 새로 건설됐다. 이것은 이용자의 편의가 아니라 공사자의 편의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새 역들은 대부분 도심에서 먼 곳에 지어졌고 기존 열차와의 환승도 어려워졌다. 시청을 기준으로 오송역은 22㎞(세종), 17㎞(청주), 김천구미역은 19㎞(구미), 10㎞(김천), 공주역은 17㎞, 신경주역은 13㎞나 떨어져 있다. 이들 철도역은 도심에서 차량이나 대중교통으로 30분~1시간 이상 이동해야 한다. 기차역이 도심 시설이라는 도시계획의 기본조차 무시한 결정이었다.
이로 인한 주민들의 불편은 만성적이다. 광주 북구의 한 시민은 “원도심의 광주역에서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없어 매우 불편하다. 광주역은 철도역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잃었다”고 말했다. 한국철도공사의 한 관계자는 “고속철도 역이 도심의 기존 역과 통합해서 만들어졌다면 철도 이용이나 환승이 훨씬 편리했을 것이다. 현재는 이용자들에게 상당한 불편이 있다”고 말했다.
김동선 대진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기존 철도역이나 선로와 분리된 고속철도 건설은 잘못된 일이다. 유럽과 일본의 고속철도는 모두 기존 철도와 통합돼 있다. 앞으로 기존 역을 함께 사용하고, 고속선로와 일반선로를 서로 오갈 수 있게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안관옥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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