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저녁 7시께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D동 202호 창문으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아파트 D·E·F동은 안전검사에서 철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19일 저녁 7시께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D동 202호 창문으로 불빛이 흘러나왔다. 지진 피해가 컸던 대성아파트 D동은 E·F동과 함께 안전검사에서 붕괴 위험이 있어 ‘철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주민들은 모두 집을 떠났다. 그런데 이날 D동 202호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이 집에 있던 60살 안팎으로 보이는 여성은 “아들과 사는데 딱히 갈 곳이 없어 오늘 낮부터 집에 들어와 있었는데, 오늘 밤은 여기서 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진이 난 이후 오늘까지 집에 찾아온 공무원은 없었다”고 했다.
1987년 지은 5층 대성아파트는 내진 설계가 아예 돼 있지 않다. E동의 중간 벽에는 금세라도 아파트가 두 쪽이 날 것처럼 큰 균열이 위에서 아래로 나 있었다. 철제 베란다 난간이 구부러지고, 아파트 현관문은 아예 떨어져 나갔다.
이런 아파트에서 대부분 고령인 주민들은 안전모도 없이 목장갑 하나만 끼고 집 안에 들어와 물건을 옮겼다. 주민들의 ‘피난’을 도와주는 포항 북부소방서 소방관들과 의용소방대만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대성아파트는 포항지진 피해로 가장 위험한 건물이지만 집에 드나드는 주민 안전을 살펴주는 공무원이나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해 11월 서문시장에 큰불이 났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당시 대구 중구는 붕괴 위험이 있는 건물에 상인들이 물건을 가지러 갈 때마다 안전모 등을 쓰게 하고 공무원과 소방관 여러 명이 동행했다.
시민들은 꼭 필요한 장소와 시간에 공무원이 보이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진원지인 포항 흥해읍 용천리를 포함해 흥해의 시골마을에는 지진 발생 5일째인 이날까지 공무원이 한 명도 찾아오지 않은 곳이 많다. 용천리에 사는 윤성자(76) 할머니는 “마을회관에는 할매들밖에 없다. 이런 데(시골)에는 아무도 안 온다. 언제 또 지진이 올까 무섭다”고 했다.
지난 18일 오후 4시께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 E동 주민들이 집 안의 물건을 밖으로 가지고 나오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진이 일어난 15일부터 19일 오후 5시까지 지진피해 복구를 위해 포항시 일대에 2만3396명, 중장비 128대가 투입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12일 발생한 경주지진 때는 9월20일까지 8459명과 중장비 60대가 투입된 것과 견주면 훨씬 많은 인력과 장비가 신속히 투입된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공무원의 도움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합동브리핑에서 심보균 행정안전부 차관은 ‘붕괴 위험 상황을 모르는 주민도 있을 텐데 지나치게 앉아서 신고를 기다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14일 안에 신고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하겠다”고 했다. 손병석 국토교통부 1차관은 날이 갈수록 피해 주택 신고 수가 급증하는 이유에 대해 “신고에 의존하고 있다 보니, 신고하지 않거나 추후에 발견된 주택의 신고가 늘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했다. 시민들이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찾아가서 돌보는 지원은 쉽지 않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포항시 건축과의 한 공무원은 “주민들의 주택 피해 신고만 5000건이 넘는다. 여기에 회의, 주민과 언론 전화 응대, 정치인들 상대 브리핑 등으로 죽을 지경이다. 우리도 되도록 많이 현장에 가고 싶지만 물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현재 경북 23개 시·군 중에서 포항은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다. 51만여명 중 남구에 24만여명, 지진이 난 북구에 27만여명이 산다. 하지만 포항시 공무원은 2050명이며, 이 중 사회복지공무원은 204명에 그친다.
적재적소에 공무원을 배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경북도 관계자들은 “비상근무 지자체 공무원들이 포항시 어느 지역에 배치되어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해 지역관리체계에 허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
김태환 용인대 특수재난연구소장은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현장 지휘가 아니라 법안을 발의하고 기준을 만드는 등 지자체 재난 담당자의 재난 업무를 돕는 역할만 하고 있다”며 “결국 수적으로 열악한 지자체에 소속된 재난 담당자들이 재난 대비와 점검, 보수 보강까지 맡고 있어 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찬오 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재난안전 공무원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기존 직렬을 바꿔서 사회의 새로운 수요에 맞춰 교체해야 하는데, 공무원법 규정상 쉽지 않다”며 “포항지진처럼 대형재난이 발생하면 한 과의 인원에 불과한 지자체로선 재난 수습에 역부족이다”라고 말했다.
포항/김일우 임재우 기자, 남은주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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