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19일 저녁 서울 시내에서 한겨레와 만나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박원순 제압 문건’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9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이날 저녁 서울시장 관용차 안에서 40분 동안 이뤄진 <한겨레>와의 긴급 인터뷰에서 박 시장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박 시장은 또 이 전 대통령 쪽이 이번 사건을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본인이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한 것이 최악의 정치 보복이었다”고 반박했다.
-이명박 전대통령을 정치관여·직권남용·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명예훼손 등으로 고발했다. 이 전 대통령 처벌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검찰은 당시 ‘청와대가 박원순 제압문건’을 보고받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까?
“지시가 있었거나 보고에 의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차관이나 장관이 수사 대상에 올라도 바로 보고되는데 서울시장에 대해 이렇게 광범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찰이 이루어졌는데 대통령이 식물인간이 아닌 다음에야 몰랐을 리가 없다. 또한 원 전 국정원장 재판기록, 국정원 적폐청산 티에프 자료를 보면 연예인 블랙리스트조차 일일이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적폐청산 티에프는 국정원 중앙컴퓨터를 확보하면 거기에서 제압문건 보고 현황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완전히 국기를 뒤흔든 사건이다. 전체를 기획한 국정원과 자금줄을 댄 전경련 자금줄, 보수적 시민단체와 언론까지 동원된 총체적인 사찰·공작사건이라고 본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법앞에선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치주의를 믿고 있다.”
-이 전 대통령 쪽은 이번 사건이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는데.
“본인이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한 것이 최악의 정치 보복이었다. 수사를 통해 진실만 밝혔다면 문제가 없었다. 당시 국가 권력을 동원해 모욕주는 방식으로 수사했다. 지금 와서 과거 국정원을 정치 공작에 동원한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것을 정치 보복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 이번에 고발한 이명박 전대통령과 과거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서울 시장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다. 내가 만나서 ‘그럼 좋은 일에 쓰라’고 권했다. 환경미화원이나 소방관이 업무중에 사망하거나 다치는 경우가 많은데 국가가 보상하는 체계나 액수는 부족했기 때문에 지원해달라고 했다. 그것을 인연으로 그는 아름다운 가게 행사 때도 몇 차례 참여했다. 그 정도면 괜찮은 관계였다. 그런데 촛불집회가 진행되면서부터 악연으로 바뀌었다. 그땐 내가 현장운동에 관여하던 시기는 아니었는데 시민사회 리더라는 상징적인 의미때문인지 나에 대한 사찰에 돌입했다. 내 강연회부터 하나은행과 추진하던 희망재단까지 크고 작은 사업들이 감시를 받거나 모두 무산됐다.”
박원순 시장이 이명박 전대통령을 고발한 19일, 인터뷰는 시장이 저녁 일정을 위해 다른 곳으로 가는 동안 차안에서 급히 이루어졌다.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도 아는 사이였나?
“원 전 국정원장도 이명박 서울시장때 자주 만났는데 개인 핸드폰 번호도 저장해둘 정도록 친했다. 그런데 그는 행정자치부 장관을 맡자마자 내가 행자부와 함께 해오던 지역홍보센터라는 지자체를 위한 사업을 중단시켰다. 지방정부나 시군 특산품 인문 관광정보 등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기관을 만들었는데 어느날 슬며시 행자부와 계약이 해지됐다. 이 사람은 정말 지방행정을 전진시키는데 관심이 없는 장관이었다는 뜻이다.
그런 악연이 내가 정치를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는 원래 엔지오 활동가로 평생을 마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했던 사람이었다.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에서조차 공천심사위원장을 해달라고 했지만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정치를 이런 식으로 하는가에 대한 분노감이 들었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내가 정치를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왜 박원순에게 이런 국정원의 공작이 집중적으로 일어났나?
“이미 시민운동을 할 때부터 보수 쪽에서 내 정치적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었다. 어느 중앙대 교수가 다음 대통령으로 내가 잠재력이 크다고 쓰기도 했다. 그런 내가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침몰시키고 서울시장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당시 선거에서 나경원의 선거 운동에도 여러번 나올 정도로 위기감을 느꼈다. 그쪽에서 내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지만, 시민들에게 폭발적인 인기가 있으니까 그들이 두려워했다.”
-어떤 정책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원장을 가장 자극했을까?
“이명박 오세훈 등 전임 시장들과 결이 다른 정책이었다. 그들은 고도 성장의 끝물에서 새로운 시대 패러다임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물신주의, 토목, 거대 사업, 형식주의, 하드웨어, 성장론, 신자유주의 등 정책이었고, 나는 인간 중심, 소프트웨어, 혁신과 변화, 실용주의, 디테일, 시민들이 비빌 언덕, 복지 중심이었다. 극단적 대비였다. 그쪽이 좋아할 수가 없었으나, 서울 시민들은 모두 좋아했다. 재선될 때는 이런 공작을 당하고도 큰 표 차이로 이겼다. 일부 시민들은 그런 공작을 믿었지만, 다수 시민들은 본인들의 피부에 와닿은 정책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시민들은 정말 위대하고 감사하다. 그런 상황에세도 굳건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신뢰와 사랑 덕분이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등 10년의 민주 정부를 거쳤어도 국정원, 검찰, 군 모두 별로 변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우리 민주주의가 갈 길이 멀다. 제도의 민주화는 이뤄졌지만, 민주주의의 수준과 질은 확보하지 못했다. 일상적인 삶에서 민주주주의 이뤄져야 한다. 이번 경우에도 공무원은 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는 법령에 있는데, 그 책임자들이 자신들의 정치 목적에 따라 행동했다. 보편적 가치, 신념 체계, 일상적 행동은 민주화되지 못했다. 국정원의 경우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위력을 행사하고 거대한 음모와 탄압과 정치 조작이 가능했던 것은 국정원의 밀행성, 비밀주의 때문이다. 국가의 활동이 국민과 사법부와 언론 모르게 통제 밖에서 이뤄졌다.”
-한때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였는데, 이런 국정원의 공작이 대선 후보로서의 이미지에 타격을 줬나?
=당연히 타격이 있었다. 나를 종북좌경으로 몰았다. 합리적 보수의 지지에도 영향을 줬다. 영국 <가디언> 같은 신문에서 세계 5대 혁신 시장으로 뽑아도 국내에선 빛을 잃었다. 서울시가 하는 일이면 중앙 정부가 훼방놓고 추진하지 못하게 했다. 가족들에 대한 근거없는 음해들이 온라인에서 반복돼 정서적 반감을 엄청나게 일으켰다. 지지할 사람들의 열정을 식게 만들었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기관을 동원해서 한 정치인을 공격한 적이 있었나. 정부의 압력으로 <힐링캠프>는 출연이 취소됐고 <와이티엔 뉴스>는 촬영을 하고도 불방됐다. 방송사 국장들이 늘 미안하다,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국정원 심리전담팀의 지시로 어버이연합등 보수단체가 시장을 비판하는 집회가 28번이나 이루어졌다. 사진은 2015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한 집회.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기자회견에서 아들 문제를 이야기했는데 딸과 부인 등 다른 가족도 상처가 적지 않았을 듯하다.
“전방위적으로 가족들에 대한 공작이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심정이 오죽했겠느냐. 아들 병역의혹을 들고 나왔고 15번이나 검증을 거쳤는데도 아직도 댓글에선 그것이 사실인양 거론한다. 의혹만 보도하는 방송도 있었다. 그 끔찍한 내용의 댓글과 공격이 칼에 찔리는 것보다 더 큰 상처였다. 견뎌준 가족이 너무 고맙다. 충분히 지키지 못한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미안함이 컸다. 정치인으로서, 서울시장으로서 비판과 분석의 대상이 될 수밖엔 없다. 그런데 정말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가족까지 공격하는 것은 잔인한 공작이고 저열한 정치적 수법이다. 거기에 협력했던 사회단체들, 비호했던 지식인들, 편들었던 언론이 모조리 정리되지 않으면 국가의 비극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불법이 정리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민주주의 반대편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박근혜와 이명박이었다. 그들이 집권한 시기는 무능의 시기가 아니라 역사를 훼손하고 국가를 후퇴시킨 시기였다.”
-‘박원순 제압’은 박근혜 정권으로까지 이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중앙정부의 권력 남용사례가 있다면 무엇이었는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청년수당 문제를 빼놓을 수가 없다. 청년들을 위한 복지 정책이 너무나도 간절했기 때문에 결국 보건복지부와도 타협책을 만들어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조차도 오케이 했다고 들었다. 발표날짜, 방식만을 조율하고 있었는데 어디에서 중단시켰는지 미스테리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청와대 수석이 동의했다면 최종 결정이라고 봐야 한다. 앞으로도 탐색해야 할 사건이다.”
김규원 남은주 기자
ch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