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청문회 뒤 ‘변절’ 차단 목적
헌병·안기부·경찰 등 전현직 80명
행사 열어 회유하고 지속적 뒷조사
헌병·안기부·경찰 등 전현직 80명
행사 열어 회유하고 지속적 뒷조사
“주민들과 접촉 시 헌병 상사 출신임을 과시하며 주민들에게 고압자세라는 평.”
<한겨레>가 확보한 5·11분석반 자료 중엔 80년 5월 당시 전남 합수단 수사관을 지낸 ㅁ씨(전남 보성 출신)를 사찰한 내용이 담긴 문서가 있다. 80년 5·18 당시 헌병 상사였던 그는 합동수사본부 일원으로 5·18수사에 참여했다. 이 문서엔 그가 ‘82년 6월 상사로 예편하고 한달 뒤 처가가 있는 강원도 횡성으로 이사해 소규모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85년 원주시로 옮겨 양계장을 경영하며 닭 4천~5천마리를 사육하는 동향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됐다. ㅁ씨에 대해 “양계장 일이 바쁘기 때문에 타지 출타가 별로 없다하며 필요시 추가 동향 내사가 가능”이라고 보고했다. 이 사찰 의혹 문건의 결재자는 손 글씨로 ‘계속 관심 제고’, ‘지속적 접촉’이라고 지시하고 있다.
5·11분석반은 합동수사본부에 참여해 5·18 수사를 한 이들의 “변절 방지”를 위해 회유하고 사찰했다. 5·11분석반 운영 실태 등의 관련 자료를 보면, 5·11분석반은 89년 12월 국회 광주 청문회가 끝난 뒤 합동수사단에 참여해 5·18 수사를 한 인사들로 ‘정수동지회’(회장 서아무개씨, 고문 최아무개씨)를 설립한다. 최아무개씨는 보안사 대공처장 출신으로, 1982~84년 학생운동 출신 강제징집자 등을 대상으로 벌인 이른바 ‘녹화 사업’ 관련자로 알려져 있다. 서아무개씨는 “광주 505보안부대 중령으로 80년 5월16일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 대령에 의해 긴급소집돼 서울에 다녀온 뒤 광주지역 재야인사 사전 검거를 지시했던 인물”(허장환 성명서)로 알려져 있다.
정수동지회를 만든 것은 “(5·18)합동수사 참여자의 변절 방지 활동”을 위해서였다. 5·18 당시 광주505보안대를 주축으로 검찰·안기부(국정원)·경찰 파견인사 등으로 꾸려진 전남 합동수사단은 80년 5·17 계엄령 전국 확대 이후 포고령 위반자 및 내란 소요사건 등을 수사했다. 전남 합수단은 모두 80명이었다. 보안사 현역 11명과 퇴직 8명, 헌병 현역 6명과 퇴직 14명, 안기부 현역 3명과 퇴직 4명, 경찰 현직 20명과 퇴직 4명, 군 검찰 퇴직 7명, 검사 현직 3명 등이 참여했다. 5·11분석반의 문건엔 “변절 방지 활동으로 전 대상자 동향 파악 및 유대 형성(소재 불명자 3명)”을 목적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특히 퇴직자 변절 방지 주력하고 단합 대회 등으로 소신 및 자긍심 주입”을 강조하기도 했다.
변절 방지를 위한 단합 행사를 서울과 광주에서 8차례 열었다. 5·11분석반 문건을 보면, 서울에선 최아무개씨 주관으로 88년 9월20일(26명), 89년 1월6일(22명), 5월26일(26명), 12월22일(22명) 네차례 행사가 진행됐다. 광주에서도 ‘610부대장’ 주관으로 4차례 열렸다. 88년 8월24일(34명), 89년 9월8일(55명), 89년 12월29일(34명), 90년 1월 등이다. “만찬 및 여흥 실시 후 선물 제공”도 이뤄졌다. 이 문건엔 △합수 활동의 정당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 △역사적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는 자긍심 및 동지감 주입 △시대 상황 변화에 동요치 않도록 확고한 소신 독려 등을 과제로 들었다.
보안사가 전남 합동수사단에 참여한 인사들을 ‘회유·사찰’에 나선 것은 5·18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국회 광주 청문회 과정에서 전남 합동수사단 관계자의 양심선언이 있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보안사 광주지부 수사국 수사관 출신 허장환씨는 1988년 12월 6일 평화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80년 5월21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직접 광주에 왔다는 사실을 505 대공과장 서아무개 중령을 통해 들었다”고 증언해 큰 파장이 인 바 있다.
이번에 <한겨레>가 확보한 5·11분석반과 보안사의 합동수사단 관계자 사찰 동향 문건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보안사는 1990년 당시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자 국군기무사령부로 이름을 바꿀 정도로 80년대 대규모 불법 민간인 사찰을 일상적으로 했다. 이 때문에 보안사와 5·11분석반이 5·18 수사에 참여한 전현직 관련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사찰했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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