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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이 싹 다 해묵었다카데, 대통령이 정신차리야”

등록 2016-11-03 21:44수정 2016-11-04 01:19

박근혜 대통령 정치적 고향인 서문시장 상인
“온몸으로 밀어줬는데 배신감” 허탈감에 분노
대구·경북 대학가도 ‘하야’ 매일 시국선언
대선 ‘80% 몰표’ TK 지지율 최근 14%로 급락

박근혜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던 대구 서문시장 상인들은 3일 최근 ‘최순실 사태’를 보고 “잘할 것으로 믿고 찍어줬는데, 이럴 줄 몰랐다”며 배신감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구대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던 대구 서문시장 상인들은 3일 최근 ‘최순실 사태’를 보고 “잘할 것으로 믿고 찍어줬는데, 이럴 줄 몰랐다”며 배신감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구대선 기자
“한마음으로 밀어줬는데, 우째 이럴 수가 있습니까?”

3일 오전 대구시 중구 서문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면 잘할 것으로 믿고 몰표를 줬지만,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안타깝고 허탈감을 느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대구(80.14%)와 경북(80.82%)에서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했다. 상인들은 배신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30여년 동안 서문시장에서 포목점포를 해온 정종달(57)씨는 “여기서도 대통령이 잘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모두 ‘대통령이 정신 차리야 된다’고들 해요”라고 말했다.

서울 남대문시장, 부산 자갈치시장과 함께 국내 3대 시장으로 손꼽히는 대구 서문시장은 포목과 비단 등 점포가 4천곳이 넘고 상인은 2만명을 웃돈다. 1998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돼 정치 활동을 시작한 박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서문시장을 찾았고, 상인들은 박 대통령을 뜨겁게 환영했다. ‘정치인 박근혜’에게 이곳은 힘들 때마다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 ‘정치적 고향’이었다.

하지만 ‘최순실씨 국정농단 파문’으로 철옹성 같은 서문시장의 민심마저 박 대통령을 떠나고 있다. 포목점을 운영하는 김아무개(64)씨는 “박 대통령이 더 낮은 자세로 국민들한테 호소를 해야지”라고 말했다.

서문시장을 벗어나 대구 시내로 발걸음을 옮기면 박 대통령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진다. ‘달리는 여론전도사’로 불리는 택시기사 박정호(59)씨는 “요즘 택시 손님들이 마 온통 그 이야기뿐이라 카니까요. 다들 격앙된 반응도 보이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도 있다니께요. 내가 생각해도 최순실이 싹 다 해 묵었다 카데예. 온몸으로 밀어줬는데 배신감마저 느껴요”라고 말했다. 선거 때마다 여당을 지지해온 대구의 한 공기업 간부 이아무개(52)씨도 “주변에서 대통령 비난하는 소리밖에 안 들린다. 특히 대통령 사과 성명이 기름에 불을 붙였다”고 밝혔다.

여권의 핵심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박 대통령 하야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경북 김천 농소면에 사는 김도환(83)씨는 “이거는 청와대 책임자, 대통령이 잘못한 기라. 애초부터 (최순실을) 가까이 안 했으믄 청와대 들락날락할 일이 없었겠지. 온 나라가 난린데 이거 수습할라믄 대통령이 고만둬야 돼”라고 말했다.

3일 오후 1시 대구 남구 대구교대 상록교육관 앞에서 대구교대 학생 400여명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3일 오후 1시 대구 남구 대구교대 상록교육관 앞에서 대구교대 학생 400여명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그동안 박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삼가던 대구·경북 지역 대학가에서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침없이 쏟아진다. 이날 오후 1시 대구 남구 대구교대 상록교육관 앞에서 열린 대구교육대학 시국선언에는 학생 400여명이 참여했다. 대구교대 전체 학생은 1700여명이다.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이 여기 출신이기도 한데 불쌍하지 않아요?”

“대통령이 뭐가 불쌍해요. 제가 더 불쌍하거든요.”

시국선언에 참여한 한 대구교대 학생이 <한겨레>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 학교 학생 김다은(21)씨는 “이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하야하고 내각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경북대 총학생회(회장 박상연)의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모두 10개 대학 학생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박 대통령에게 싸늘해진 대구·경북 지역 민심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박 대통령 지지율 폭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10월31일부터 이달 2일까지 전국 성인 15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구·경북에서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1주일 전에 견줘 19.0%포인트 급락한 14.2%였다.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이 지난달 31일 조사한 결과, 대구·경북 지역의 박 대통령 지지율은 전국 평균치(9.2%)조차 밑도는 8.8%로 조사됐으며, 1개월 전 44.3%에 견줘 35.5%포인트나 곤두박질쳤다고 <내일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청와대는 사태의 심각성을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정국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당장 더욱 강도 높고, 더욱 과감한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구대선 김일우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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