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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참교육 좇아 좌충우돌 6년…고된 만큼 믿음 쌓였죠

등록 2011-05-12 14:35수정 2011-05-13 10:17

복사꽃이 온 동네를 포근히 감싼 봄날 황성현씨 가족들이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 있는 집 마당에 나와 카메라 앞에 섰다.
복사꽃이 온 동네를 포근히 감싼 봄날 황성현씨 가족들이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 있는 집 마당에 나와 카메라 앞에 섰다.
[한겨레 창간 23돌] 행복365 농어촌 작은 학교의 행복
청도군 귀농 황성현씨네
시범학교 운영 맞선 ‘싸움닭’
도서관 정비·독서회 성과도
“농촌은 젊은가족 삶의 터전”
2005년 가을 황성현(41)씨와 강혜심(41)씨 부부는 대구에서 다니던 직장을 접고 40㎞ 남짓 떨어진 경북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로 이사했다. 6살 아들, 3살 딸과 함께 지붕도 얹지 않은, 뼈대만 있는 집에 텐트를 치고 농촌 생활을 시작했다. 귀농을 서두른 것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을 도시학교가 아니라 농촌 작은 학교에 입학시키고 싶어서였다.

이듬해 봄, 아들을 전교생이 150명 남짓한 집 인근 학교에 보냈지만, 황씨 가족이 상상하던 그런 ‘작은 학교’는 아니었다. 방과후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학원 차량을 타고 화양읍에 있는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에 가지 않는 아이는 같이 놀 친구가 없었다. 집과 학교, 학원을 오가는 아이로 키우지 않으려고 도시를 떠났지만, 사교육 광풍은 농촌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8년 집에서 좀더 멀지만 전교생이 20여명인 더 작은 학교로 아들을 전학시켰다. 그즈음 경북도교육청이 시작한 작은 학교 가꾸기 사업 지원을 받아 ‘돌아오는 작은 학교로 만들겠다’는 학교 쪽의 계획에 기대가 컸다. 황씨는 학교운영위원장을 맡아 학교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작은 학교 지원금으로 번듯한 영어체험교실이 들어서고, 갖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생 수가 50여명으로 불어났다. 성공한 작은 학교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학교도 그가 꿈꾸던 작은 학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황씨는 “작은 학교에 대한 교육철학 없이 시범학교라는 이름으로 각종 지원을 받다 보니 보여주기식 성과주의에 매몰됐다”며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학교 운영과 교육내용에 반대하다 보니 학교 쪽과 부딪히는 일도 잦았다”고 말했다.

황성현씨 가족
황성현씨 가족

그렇다고 소모적인 갈등만으로 끝난 건 아니다. 학교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꾸리고, 학부모들이 독서도우미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집에서는 동네 아이들 6명이 모여 2주에 한번씩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도 한다. 학교와 마찰을 겪으며 황씨는 교육 문제에 눈을 떴다.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활동과 지역의 교사·학부모들이 함께하는 교육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요즘은 6학년이 된 아들을 곧바로 중학교에 진학시킬지를 놓고 가족이 함께 고민중이다. 부부는 “복숭아 나무 몇 그루를 떼줘서 스스로 농사를 지어보게 한 뒤에 아이가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느낄 때 학교에 다녀도 좋을 것 같아 아들과 얘기하고 있다”며 “아이는 학교에 안 가면 친구가 없어질까봐 망설이는 눈치”라고 말했다.

30가구 남짓한 마을에 들어온 뒤로 농촌 지원 사업이나 부실한 농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꼬집다가 이웃들과 갈등을 빚어 마음고생도 했다. 차츰 진심을 이해해주는 ‘동지’도 생기며 마을에 스며들어 자리를 잡았지만,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다.

황씨네는 이 마을에서 여러모로 유별난 이웃이다. 복숭아로 이름난 청도군에서 황씨네 과수원은 다른 과수원과 한눈에 구별된다. 언뜻 보기엔 게으른 농부의 밭이다. 한뼘 이상 자란 풀이 밭을 뒤덮고 있다. 그런데 이 풀은 잡초가 아니라 비료로 쓰는 작물이다. 화학비료를 쓰는 대신 비료작물을 심어 땅을 기름지게 만든다. “과수원을 풀 한 포기 없이 말끔하게 가꾸는 게 부지런한 농부의 자세로 여기는 이웃들이, 처음에는 제 밭을 보고 혀를 끌끌 찼는데 이제는 뭔가 다른 시도를 한다는 데 관심을 보입니다.”

황씨네는 최근 농촌진흥청이 지정한 ‘농가맛집’으로 뽑혔다. 요리솜씨가 남다르다는 입소문을 듣고 손맛을 보러 찾는 이들에게 텃밭에서 키운 푸성귀와 인근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만든 한식과 중식, 유럽 음식을 차려내고 있다. 매일 아침 암탉 8마리가 낳는 달걀 8개를 이웃이나 집에 찾아오는 이들과 나눠 먹는다. 주말에는 과수원에 나가 온 가족이 같이 일하고, 참을 먹는다.

도시에서 지낼 때보다 수입은 줄었지만, 밭에서 먹을거리를 키워내고 외식비 등 씀씀이를 줄이니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부부는 “농촌에서는 낭만조차도 몸을 움직여야 누릴 수 있다”며 “농촌은 삶의 황혼을 보내는 한가한 곳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땀 흘려 일하는 젊은 가족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참 힘들었지만, 여기 온 걸 후회한 적은 없다”는 황씨의 말에 가족 모두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도/글·사진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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