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중랑구 서울의료원 재택치료관리 상황실에서 의료진이 재택치료 중인 코로나19 확진자 모니터링 업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택)치료라기보다는 ‘격리생활’ 같았어요.”
지난달 22일 중학생 아들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함께 자가격리됐던 ㄱ(55·경기도 광명)씨의 말이다. 보건소에서는 매일 2차례 전화로 확진자 건강을 체크하고, 감기약과 해열제, 영양제 등을 보냈다. 재검사로 음성 판정이 나온 1일까지 10일 동안 아들과 함께 ㄱ씨, 아내, 딸까지 가족 4명이 모두 집에 격리됐다. 방이 4개인 데다 화장실이 2개로 확진자 아들과 분리생활이 가능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감옥생활’ 같은 격리에서 오는 답답함과 감염불안은 어쩔 수 없었다.
ㄱ씨는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온 가족이 마스크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격리된 상태로) 열흘 동안 빨래 등 일상생활을 못했다. 치료보다는 격리와 다름없는 생활이었지만 분리된 공간이 없는 집이라면 그것마저도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재택치료를 기본으로 하는 특별방역대책을 시행 중인 가운데, 현장에서는 ‘치료’보다 ‘격리’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가 접촉한 재택치료·자가격리자들은 특히 현재 재택치료 방침만으로는 동거인까지 감염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많았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40대 ㄴ씨는 지난달 25일 확진된 초등학생 자녀를 집에서 돌보다 나흘 뒤 남편과 함께 확진판정을 받았다. ㄴ씨는 가족 3명 모두 확진 판정을 받자, 병원입원 및 생활치료센터 입소 신청을 취소했다. 아이는 증상이 거의 사라졌고, 남편도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ㄴ씨도 약간의 기침·두통이 있어 전화로 진료를 받고 보건소에서 처방약을 받아 복용 중이다. 간호사가 매일 오전·오후 1차례씩 전화해 산소포화도, 체온, 이상증상 등을 확인한다. ㄴ씨 사례는 재택치료의 장점·효과와 재택치료의 문제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ㄴ씨는 “나와 남편 모두 모더나 2차 접종까지 끝마쳤지만 (돌파) 감염됐다. 마스크도 쓰고, 소독도 하고, 아이와 생활시설도 분리했는데 감염을 막을 수 없었다”며 “(재택치료는) 동거인도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경남 김해시에 사는 ㄷ(41)씨도 재택치료 중인 자녀 셋을 돌보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직장 때문에 떨어져 있는 남편과 함께 나흘 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남편은 원래 거주하던 직장 근처에서 재택치료에 들어갔다.
ㄷ씨는 ‘삼시 세끼 챙겨먹기’의 어려움을 첫손에 꼽았다. ㄷ씨는 “1인당 1개씩 즉석밥·카레·햄 세트·김 등이 들어있는 키트를 받았다”며 “하지만 계속 같은 메뉴만 먹을 수 없어서, 대부분 음식재료를 배달시켜 만들어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생 아이 셋을 돌봐야 해 애초 분리생활이 불가능했다”며 “내가 증상이 심했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게 되더라. 재택치료를 기본으로 할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재택치료와 생활치료센터, 병원입원 등을 적절히 운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식구가 단출한 경우는 재택치료·자가격리에 따른 부담이 덜했다. 지난 6일 아내와 함께 확진된 ㄹ(32·대전)씨는 “돌볼 자녀가 없어 할 만하다”며 “아내와 각방을 쓰고, 음식도 모두 시켜 먹는다. 밖에 못 나가 답답한 것 빼곤 크게 불편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 재택치료 여부는 본인 동의와 무관하게 방역당국이 결정한다. 확진자 건강 상태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주거환경이 감염에 취약하거나 보호자가 없어 돌봄이 필요한 경우, 70살 이상 미접종자 등은 입원치료 대상이다. 노혜영 경남도 감염병관리과장은 “현실적으로 재택치료를 하기 곤란한 사람들이 많다. 가족은 많은데 집이 좁아서 격리가 안되는 확진자, 보호자가 필요한 아동 등 노약자가 대표적”이라며 “이들은 경증 환자라고 해도 생활치료센터로 보내고 있다”고 했다.
경증·무증상 환자의 재택치료 기간은 병원입원이나 생활치료센터 입소 때와 마찬가지로 10일이다. 재택치료가 결정되면 방역당국은 재택치료 키트(산소포화도 측정기·체온계·해열제·소독제)를 집으로 배송한다. ㄷ씨는 “1인당 키트를 한개씩 지급받다 보니 겨드랑이 체온계가 집에 다섯개나 됐다”고 말했다.
재택치료에 불안을 느끼는 확진자나 동거인도 많지만, 반대로 병원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재택치료를 하겠다는 확진자도 있다고 한다 심우범 대전시 감염병대응팀장은 “재택치료 불만으로 생활치료센터나 병원에 입원시켜달라는 요구도 많지만 입원 대상인데도 재택치료를 하겠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재택이 우선이니 (입원을) 설득해야 해 행정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최예린 김기성 이정하 최상원 기자
floye@hani.co.kr
강릉시 “공공시설을 재택치료 장소로 제공”
재택치료 대상자와 가족들의 가장 큰 걱정은 동거인이 코로나19에 확진될 우려다. ㄷ씨 사례처럼 확진자와 완전한 분리가 어려운 경우는 감염 위험도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와 관련해, 강원도 강릉시가 지역 공공시설을 활용한 재택치료 지원에 나서 눈길을 끈다. 시가 운영하는 녹색도시체험센터와 옛 솜씨힐링빌리지, 체육시설사업소 선수합숙소 등 공공시설을 재택치료자를 위해 제공하기로 했다.
재택치료자는 자가에서 치료받는 것이 원칙이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재택치료가 어려운 시민을 위해 시 자체 시설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시는 이를 위해 현재 별도의 태스크포스를 꾸려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금액이나 입주 우선순위 등 세부 내용을 마련한 뒤 빠르면 이달 중순부터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김한근 강릉시장은 “재택치료의 경우 가족의 추가 감염 등을 고려해 많은 시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연말연시를 기점으로 확진자가 급증할 것에 대비해 시에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을 활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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