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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당신이 소금 자루에 넣어서 버린 ‘랭이’는 잘 살고 있답니다”

등록 2019-01-23 15:00수정 2019-01-23 20:03

[애니멀피플] 윤정임의 보호소의 별들
배려심 많은 랭이는 왜 소금 포대에 담긴 채 산에 버려졌을까
비슷한 아픔을 가진 동물보호소 친구들과 가족사진을 찍었다. 제일 왼쪽이 랭이.
비슷한 아픔을 가진 동물보호소 친구들과 가족사진을 찍었다. 제일 왼쪽이 랭이.
바싹 마른 몸, 한쪽 눈은 궤양으로 실명되었고 귀도 어두운 것 같았다. 어림잡아도 10살이 훌쩍 넘은 늙은 개이고, 관절염으로 다리에 힘도 없었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의욕이 1도 보이지 않는다.

2014년 ‘랭이’라는 시추가 동물보호소에 들어왔을 때 받은 첫인상이다. 이랬던 녀석이 2019년을 맞이하다니 감회가 새롭고 울컥한다. 랭이는 2014년 아직 눈도 녹지 않은 초봄, 소금 포대에 담겨 산속에 버려진 개이다. 우연히 동물자유연대 회원에게 사연을 전해 듣고 랭이가 버려진 경기도 고양시 고봉산 관할 지자체 동물보호소와 통화할 수 있었다. 보호소 쪽은 랭이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져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의 전화가 많이 왔고, 법적 보호 기간 10일이 지나면 입양을 갈 것이라 했다.

나는 10여년 동물자유연대에서 동물 입양을 담당했던 때가 떠올랐다. 안타까운 사연에 마음이 앞섰다가 연락을 받지 않거나 입양을 취소하는 경우의 일을 많이 겪었다. 염려스러운 마음에 말을 남겼다. “그럼 10일 후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입양되지 않으면 저희가 데려갈 테니 안락사시키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정확히 10일 뒤 랭이는 동물자유연대 식구가 되었다. 이날 랭이를 입양하겠다던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랭이는 그늘진 개였다. 주인을 잃고 낯선 환경에서 나타나는 경계가 아니라 정말로 사람 손을 타지 않아 모든 것이 처음인 것처럼 사회성이 없었다. 손끝만 닿아도 목 윗부분이 돌덩이처럼 경직되었고 안아 올리기라도 하면 온몸에 힘을 줘서 뻣뻣한 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구조 당시 랭이의 모습. 포대 안에 개가 살아 있다고 신고한 사람도, 포대 안에서 개를 꺼낸 구조 담당자도, 이렇게 버려진 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도, 모두 상처 받았다.
구조 당시 랭이의 모습. 포대 안에 개가 살아 있다고 신고한 사람도, 포대 안에서 개를 꺼낸 구조 담당자도, 이렇게 버려진 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도, 모두 상처 받았다.
나는 랭이가 수명을 다하는 날까지 집으로 데려가 보살피기로 결정했다. 안락사 직전 천운으로 동물자유연대 식구가 되었지만 여기도 동물보호소다. 상처가 깊은 랭이의 마지막을 인간의 도리로 지켜주고 싶었다. 집과 가족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랭이는 사람 옆으로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야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 적당히 떨어진 곳에 자기 영역을 만들었다. 식사와 배변 후 자기 영역의 방석으로 돌아가는 도중 다른 개들이나 테이블 등 장애물이 있으면 참을성 있게 기다리거나 최대한 ‘빙~’ 돌아서 갔다. 떼쓰는 법이 없었고 그림자처럼 조용히 거슬리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랭이와 함께 산 지 1년이 지나 베란다가 있는 집으로 이사한 직후의 일이다. 내가 임시보호 하는 개들이 대소변을 못 가려 이번에는 확실하게 베란다로 배변훈련을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나의 지속성 없는 교육으로 개들은 베란다를 배변 장소로 인지하지 못했다. 밥을 먹은 직후 배변을 볼 때까지 베란다 문을 닫고 기다리기를 수차례. 그냥 포기해야지 하는 그때, 랭이가 아주 익숙하게 베란다로 걸어가 소변을 보고 들어오는 게 아닌가.

이미 학습된 습관이었다. 랭이는 베란다에서 배변을 보는 훈련이 되어 있는 개였다. 이후에 이사 간 집에서도 제일 먼저 베란다로 나가 완벽하게 배변을 가렸다. 버려졌을 당시 상황을 보면 보살핌 받고 관심받는 평범한 반려동물의 삶을 짐작할 수 없었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어쩌면 어리고 건강했을 때는 누군가의 가족으로 배변훈련도 받고 성공해서 칭찬도 받고 눈에도 생기가 넘쳤겠지’라고 생각하니 포대에 담겨 버려진 마지막이 더욱 가혹하게 느껴졌다.

내가 집에서 임시보호 하고 있는 ‘대국이’(왼쪽)와 랭이는 절친이다. 같은 방석에서 자고 늘 함께 붙어 있다.
내가 집에서 임시보호 하고 있는 ‘대국이’(왼쪽)와 랭이는 절친이다. 같은 방석에서 자고 늘 함께 붙어 있다.
애견펜션에 갔던 날. 이런 소풍이 랭이에게 처음일 것 같아 최선을 다해 놀았다.
애견펜션에 갔던 날. 이런 소풍이 랭이에게 처음일 것 같아 최선을 다해 놀았다.
돌덩이처럼 뭉쳤던 목의 근육이 자연스럽게 풀어지고 극성스럽지 않게 평화로운 관계로 지내 온 지 4년. 최근 랭이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사람이 힘들 뿐 랭이는 참 편안해 보인다. 늘 눈치 보고 주눅 들어 있던 랭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불편하고 싫은 것에 대한 표현이 확실해졌다. 당당하게 호통치는 ‘호랭이’가 되어라 이름 지었더니 요즘이 그렇다. 아마도 지금이 랭이 견생 처음으로 무한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있는 힘껏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녀석 삶의 마지막이 소금 포대 안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보살펴 줄 가족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글·사진 윤정임 동물자유연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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