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소니어 자연사박물관에서 연 특별전시전 ‘아웃브레이크’. 원헬스 관점으로 신종질병에 접근한 전시회였다.
얼마전 워싱턴 디시에 다녀왔습니다. 워싱턴은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정작 미국인들에게는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 및 교육재단인 ‘스미스소니엄 재단’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박물관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필자는 운 좋게 그 박물관들 중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아웃브레이크: 모두가 연결된 세상에서 역병의 발생’이라는 특별전시전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자연사박물관에서 질병을 다루는 것은 흔치 않은데요, 전 세계적으로 신종질병이 왜 증가하고 있는지, ‘원헬스’(One health·인간, 동물과 환경, 생태계의 건강이 연결되어있다는 관점)적으로 신종 질병에 접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일반인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멋진 전시였기에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입구에 들어가면 보이는 표지판입니다. 전시회를 기획한 사람과 기관입니다. 학회, 정부 및 지자체, 엔지오 등 다양한 기관과 미생물학자, 공중 보건학자, 감염병학자, 보전생물학자, 질병생태학자 등 다양한 학계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통합적인 시각으로 신종질병에 접근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 줍니다. 그중 대표적 기여자인 조너단 엡스타인(Jonathan Epstein)은 에코헬스 연합(Ecohealth alliance·옛 Wildlife Trust)의 부회장으로 수의사이자 야생동물 질병생태학자이며, 다니엘 루시(Daniel Lucey)는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인류학 연구부 소속 감염병 및 공중보건학자라고 합니다.
전시회 내용은 무척 촘촘했고 정보는 방대했습니다. 사스, 메르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부터 아직 우리나라에는 다소 낯선 에볼라, 니파 바이러스 등이 주요 신종질병으로 다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시회가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이 질병들에 대해 병원체, 증상, 치료법 등의 의학적 소개를 하는 데 집중하기 보다는 신종질병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이러한 동물 유래 신종질병, 특히 사람들의 주 관심사인 인수공통감염병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생하는지 그리고 우리 인간이 이러한 과정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그 연결고리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두 번째는 그 연장선상으로, 사람과 가축 그리고 야생동물의 ‘건강’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고를 기저에 깔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축과 야생동물이 건강하게 살 수 없다면, 결국 사람도 건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각 질병에 대한 소개도 아래와 같이 사람, 동물, 환경 세 가지 요인이 어떻게 결합되어 질병의 발생에 기여하고 있는지 나눠 설명합니다. 사진 속의 사례는 팜나무 수액을 먹는 방글라데시 사람들과 서식지가 파괴되어 갈 곳을 잃은 박쥐들 그리고 니파 바이러스의 발생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시회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사람이 야생동물이나 가축의 ‘건강’에 인위적으로 ‘침입’ 또는 ‘개입’함으로 질병이 발생하는 과정과 예시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고기 수요와 그로 인해 증가하는 대형 공장식 농장들이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에 기여하는 사례였습니다. 대량의 가축을 극단적으로 인공적인 환경에서 키우는 행위는 신종질병의 빠른 전파와 진화를 일으켜 사람의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인의 육식 문화는 단시간에 변하기 힘든 사안인 만큼, 공장식 축산과 관련한 질병 발생의 위험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종질병의 탄생에는 공장식 축산과 관련이 깊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두 번째로는 동물을 사고파는 행위, 특히 야생동물을 사고파는 행위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국 프레리독에서 발생했던 원숭이 두창(천연두와 유사한 질병)을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2004년 애완동물로 키우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설치류에서 같이 팔기위해 감금해놓았던 프레리독에게 질병이 전파되고 결국 사람에게까지 퍼졌던 사례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뒤 미국에는 아프리카 설치류 수입이 일체 금지되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질병의 유입이 아프리카 설치류를 통해서만 들어오는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되니, 더욱 선제적인 대응 방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시에 필자는 과연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야생동물들은 얼마나 잘 관리되고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야생동물을 자유롭게 만지고 안고 뽀뽀해서 병이 사람에게 옮으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2004년 미국에서 애완동물로 키우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설치류에서 같이 팔기위해 감금해놓았던 프레리독에게 질병이 전파되고 결국 사람에게까지 퍼졌던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워싱턴 디시의 국립동물원에 전시된 프레리도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각종 질병과 사례들을 소개한 공간을 지나면 사람이 신종질병의 탄생을 촉진한 네 가지 활동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바로 (1) 사람과 동물이 원서식지를 떠나 끊임없이 인위적으로 움직이거나 이동시키는 행위 (2) 사람들이, 때로는 동물들과 함께 엄청나게 밀집되어 살고 있는 것 (3) 인간이 자연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원서식지를 파괴하고 그 안에 살고 있던 야생동물과 병원체의 생태를 변화시키는 행위 그리고 (4) 사람들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바꾼 행위(다른 대륙에서 온 야생동물을 집안에서 키우거나 가축을 고밀도로 사육하는 행위 등) 이렇게 네 가지를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실제로 이러한 행위들로 인해 신종질병이 발생한 역사적인 사건 아홉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동물 가축화, 농경 생활의 시작, 신대륙의 발견, 콩고의 식민지화 등이 중요한 사건들로 선택되었는데요, 20세기 들어 발생한 가장 최근의 사건 세 가지는 바로 전쟁, 공장식 축산 그리고 동물들을 전 세계적으로 사고파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신종질병의 ‘방아쇠’들 중 아직 인류가 되돌릴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일지 생각하게 됩니다.
전시회장을 나가는 출구는 다시 한 번 원헬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사람, 가축 그리고 야생동물·환경의 건강을 더 이상 떨어뜨려 논의할 수 없다, 오직 원헬스만이 있을 뿐”이라는 에코헬스연합 카레쉬 박사의 말을 인용하며 생각 많은 표정이 되어버린 관람객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던 표지판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야생동물과 병원체가 (새삼) 사람을 공격하려고 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을 뿐”
황주선 질병생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