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유황앵무가 쓰레기통의 뚜껑을 열어젖히고 있다. 이를 모방한 행동이 시드니 전역의 유황앵무로 퍼지고 있다. 노란 뚜껑은 재활용 통이고 붉은 뚜껑은 일반쓰레기용인데 앵무는 대부분 붉은 뚜껑을 연다. 바버라 클럼프, 막스 플랑크 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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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등 오스트레일리아 동남부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새의 하나인 큰유황앵무는 시끄럽고 무리 지어 다니며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기도 하지만 영리하기로 유명하다. 이 앵무 일부가 쓰레기통을 열어 먹이를 얻는 방법을 터득한 뒤 이를 모방한 행동이 여러 지역으로 퍼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독일 생태학자들은 시민 과학의 도움을 받아 큰유황앵무의 사회적 학습과 문화적 전파 능력을 확인했다고 23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유황앵무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쓰레기통 뒤지기 방법은 이렇다. 먼저 바퀴 달린 규격 쓰레기통의 뚜껑을 부리나 발로 들어 올린다. 이어 뚜껑을 부리로 문 채 쓰레기통 가장자리를 따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뚜껑의 각도가 점점 높아져 마침내 뒤로 완전히 젖혀진다. 옆에서 기다리던 다른 앵무와 함께 쓰레기통 안의 음식 찌꺼기로 만찬을 벌인다.
대형 쓰레기통의 뚜껑을 여는 것은 여러 단계에 걸친 동작을 순서대로 밟아야 하는 복잡하고 힘든 일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행동이 우연히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고 배워야 하는 동작이라고 판단했다.
한 유황앵무가 뚜껑을 여는 동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모방은 어린이의 놀이처럼 빠르게 인근 지역으로 번져나간다. 바버라 클럼프, 막스 플랑크 연구소 제공.
연구에 참여한 리처드 메이저 오스트레일리아 박물관 선임 과학자는 “큰유황앵무는 놀라울 정도로 영리하고 끈질기며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성공적으로 터득했다”고 독일 막스플랑크협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쓰레기통의 규격이 통일돼 있고 또 큰유황앵무가 도시에 널리 분포하기 때문에 사육환경에서는 볼 수 없는 야생 앵무의 행동을 연구할 이상적인 야외 실험장이 마련된 셈이다. 연구자들은 2018년부터 시민과학자들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여 이런 행동이 어디서 관찰되는지 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2018년까지 3곳에서만 관찰되던 큰유황앵무의 쓰레기통을 여는 행동은 2019년 말까지 2년 새 44곳으로 확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 저자의 하나인 바버라 클럼프 막스 플랑크 연구소 박사는 “멀리 떨어진 곳보다는 인근 지역으로 더 빨리 번지는 것으로 보아 이런 행동이 우발적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모방을 통해 확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주에 흔한 큰유황앵무. 건물의 폴리스타이렌 설비를 뜯어내는 등 불편을 끼치기도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앵무 약 500마리에 물감으로 표시해 조사한 결과 앵무의 약 10%가 이런 행동을 습득했으며 주로 수컷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수컷이 상대적으로 덩치가 커 무거운 뚜껑을 더 쉽게 열고 지배적이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또 뚜껑을 여는 방법이 지역마다 약간씩 달라 지역적 하위문화가 출현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한 지역에서는 모방이 아닌 전혀 별개로 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방법을 개발해 인근 지역으로 퍼뜨리기도 했다. 클럼프 박사는 “지역 시민들의 협조로 과학자들은 유황앵무의 독특하고 복잡한 문화의 양상을 밝혀내고 있다”고 말했다.
뚜껑을 여는 방법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부리로 손잡이를 쥐는가 하면(위) 부리와 발을 모두 동원하기도 한다(아래). 하위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바버라 클럼프, 막스 플랑크 연구소 제공.
사람 이외의 동물이 모방 등을 통해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한다는 증거는 영장류 등 포유류뿐 아니라 새, 물고기, 곤충 등에서 많이 밝혀지고 있다(▶침팬지 '지푸라기 패션'...동물 문화 폭넓다). 조류 가운데는 박새가 1949년 가정에 배달된 병 우유 뚜껑에서 크림을 쪼아먹는 행동이 10년 만에 영국 전역으로 퍼진 사례가 처음이다.
큰유황앵무는 영리하기로 유명하며 최근에는 다양한 박자에 맞춰 춤을 추는 행동이 보고되기도 했다(▶헤드뱅잉하는 앵무새 스노볼, 음악 맞춰 14개 즉흥 댄스까지).
인용 논문: Science, DOI: 10.1126/science.abe78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