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였다면 책임감을 못 느끼고 분명 버티기 힘들었을 텐데 히끄가 내 옆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021년 새해를 맞이한 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4월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어서 새해의 설렘과 기대보다는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컸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 1년이 넘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이 다시는 오지 않는다”라는 질병관리본부의 브리핑을 보면서 ‘설마’라고 생각했었다. 현재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전문가의 의견이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 그때는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고 접종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희망이 있지만, 변이바이러스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확진자는 계속 나오고 있다.
우리는 지금 경험해 본 적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꼭 뉴스가 아니더라도 민박 손님으로 와서 친구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내 피트니스센터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분은 반년 넘게 기약 없는 대기 상태라고 한다. 소득이 줄어서 힘든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 힘들다고 했다.
나 또한 제주도에서 민박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소득이 많이 줄었지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기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민박을 운영한 지 6년째. 오픈하고부터 따로 휴일을 챙겨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찾아주셨다. 성격이 냉소적이지만, 낙천적인 부분도 있어서 그때 쉬지 못한 시간을 보상받는 뒤늦은 휴가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할 때마다 사람을 만나는 대신 텃밭에 나가 밭일을 했더니 당근 농사가 풍년이다.
위기와 고비의 순간에 끙끙 앓고 좌절하는 것보다 희망 회로를 돌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코로나19를 떠나서 오래전부터 ‘언제까지 제주도에서 지낼 수 있을까?’ 거주에 대한 불안감과 자영업자의 미래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었다. 글을 쓰거나 외부활동, SNS 광고 수익 등으로 민박 외의 수입을 준비해놓은 덕분에 조금은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또 작년 텃밭에 심었던 당근 농사가 태풍에도 잘 버텨주어서 예상했던 수확량보다 3배나 넘게 나왔다. 맛은 좋지만, 수확 중에 호미에 찍히거나 모양이 안 예쁜 ‘파치’는 어려운 시기에 맛있는 거 먹고 힘내자며 지인들에게 나눔을 하고 택배를 보냈다. 힘들 때일수록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히끄처럼 예쁜 당근은 재작년 고구마 수확 때처럼 반려동물 간식 업체와 함께, 짜서 먹는 간식을 만들어서 판매할 계획이다.
나 혼자였다면 책임감도 못 느끼고 분명 버티기 힘들었을 텐데 히끄가 내 옆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려운 시기에 반려동물에게 위안을 받는 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거리 두기와 재택근무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반려동물용품 매출이 늘고, ‘펜데믹 퍼피(Pandemic puppy)’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비율이 급격하게 높아졌다고 한다.
분양이 아닌 입양이 늘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씁쓸하다. 코로나19가 끝나고 마스크가 없는 날이 오더라도 반려동물을 향한 마음과 책임감이 변치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지금’이 아니라 ‘20년’ 후에도 함께 할 수 있는지 몇 번이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필요해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게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를 바란다.
글·사진 이신아 히끄 아부지·<히끄네 집> 저자
※ 애니멀피플의 오랜 필자 이신아 작가님이 제주에서 봄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히끄의 탐라생활기’ 종료 뒤 비정기 연재로 찾아오기로 한 독자와의 약속을 지켜주신 건데요. ‘히끄 아부지의 제주 통신’은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제주 오조리 소식과 히끄의 근황을 들고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