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노는 것 같지만 촬영하는 중이다. 목욕을 안 했는데 하얗게 나와서 다행이다.
2019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다가왔다. 연말을 맞이할 때마다 ‘벌써?’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경험은 줄고, 반복된 일상을 살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히끄와 내가 건강한 것만으로도 다행이고, 별일 없이 사는 게 제일 어렵고 잘 사는 거란 생각이 들지만, 하루하루 비슷한 일상을 살면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춘 기분이다.
그래서 일상의 즐거움을 찾거나 흔적이 남는 결과물을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휴대폰만 보다가 올해가 끝난 듯한 자괴감이 든다. 재작년에는 책 ‘히끄네 집’을 출간하고, 올해는 고구마 농사를 짓는 등 주업인 민박을 운영하면서 별개로 결과물을 만들었다.
대기실에서 대기하는 중. “문 열어라냥! 나는 준비가 됐다옹.”
‘히끄네 집’은 히끄를 대신해 내가 쓴 ‘타서전’이라 재주는 집사가 구르고, 인기는 고양이가 챙겼다. 하지만 올해 히끄는 주체적으로 에스(S)전자와 광고 계약을 맺어서 길고양이 출신도 씨에프(CF)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
광고 촬영은 히끄를 배려해 익숙한 장소인 집에서 이루어졌다. 최대한 촬영장처럼 세팅하느라 집에 여러 가전제품이 들어오고, 촬영에 필요한 소품, 조명과 카메라가 배치됐다. 히끄가 바뀐 환경에 낯설어하지 않도록 시간을 가지고 움직였다. 집이 좁아서 카메라 구도 때문에 촬영 감독님이 애를 먹었지만, 히끄가 적응할 때까지 스무 명이 넘는 스태프들이 기다려줬다. 알고 보니, 촬영 감독님도 노묘와 함께 사는 집사여서 소품으로 준비했던 사료를 선물로 드렸다.
광고 영상 중 한 장면. 길고양이 출신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는 데 앞장서는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그날 ‘전지적 참견 시점’처럼 히끄의 매니저가 되어 보니 너무 힘들었다. 고양이치고는 수더분한 히끄지만 혹시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과도하게 신경을 쓰다가 오히려 내가 스트레스성 소화불량이 생겼다. 히끄가 나오는 부분의 촬영이 끝나고 제품을 촬영할 때 촬영장과 분리된 작은방에서 화장실을 가고, 낮잠을 자면서 다음 촬영을 기다렸다.
대기실에서 메이크업을 고치듯이, 그루밍을 하며 다음 컷을 준비하는 프로의 모습을 히끄에게서 보았다. 매일 흰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한량인 줄 알았는데, 이날만은 흰색 수트를 입은 광고 모델이었다. 히끄가 이날 열심히 일해서 번 광고료의 일부는 동물권을 위해 기부했다.
캠페인에는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방법과 좋은 사례를 보여주는 방법이 있다. 길고양이의 안타까운 길 위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길고양이도 사랑을 많이 받으면 묘생이 바뀌고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방법이다.
나는 두번째 사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많은 사람이 히끄의 광고를 보면서 “저 고양이가 원래 길고양이였대. 우리도 펫숍에서 사지 말고, 보호소에서 입양하자”고 이야기하는 장을 만들고 싶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고, 펫숍이 사라지면 유기되는 동물과 보호소에서 안락사당하는 동물도 줄어든다. 2020년에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히끄와 함께 목소리를 내서 길 위의 동물들이 더 행복해지도록 할 것이다.
이신아 히끄아부지 <히끄네 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