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먹을 고구마를 거실에 뒀더니, 어느 날부터 올라가 있다.
서리가 내리기 전 5월에 심었던 고구마를 수확했다. 집 옆에 딸린 60평 남짓한 밭이라 하루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기계가 아닌 손으로 하나하나 캐려니 손가락과 허리가 아팠다. 수확하는 과정에서 중 호미에 찍히거나 고구마가 끊어지면 상품 가치는 떨어지기 때문에 조심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백화점 식품관이나 대형마트에 진열된 농산물들은 어떻게 흠집 하나 없이 예쁠까?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균일하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직접 농사를 지어보고, 다양한 농산물을 접해보니, 진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지 농부의 정성이 느껴졌다.
올해는 공식적으로 무농약 인증과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을 받았다. 무농약 인증을 받으려면 농약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는 권장량의 ⅓이내만 사용해야 한다. 히끄와 함께 먹을 거라 자연스럽게 친환경에 관심이 갔다.
3년 전, 고구마 캘 때 간섭하던 고양이. 검은 화산흙이라 유난히 히끄가 하얗게 보인다.
농사 과정은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밭을 갈아 고구마를 심고 잡초를 뽑으며 병충해와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수확을 기다린다. 수확이 끝은 아니다. 수확한 고구마를 그늘에 말려서 흙을 털어내고 실온에 보관해야 후숙이 되어 당도가 높아진다.
마님처럼 안방 창문틀에 앉아서 지켜보는 히끄의 감독 아래 마당에서 고구마를 크기별로 분리하고 손질했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보관을 잘못하면 썩어버린다.
왕년의 ‘고양이 확대범’ 경력을 살려 고구마 확대도 쉬울 줄 알았는데 수확량이 예상보다 적었다. 농사가 전업이 아니긴 했어도 기대하고 정성을 쏟았는데 속상했다. 사람들은 “나중에 할 거 없으면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지어야지”라는 말을 쉽게 하는데, 제일 힘든 일이 농사인 것 같다.
직접 키운 고구마라서 하나같이 예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농사로 직장에 다니면서 받는 월급만큼 돈을 버는 건 불가능하다. 만약 그렇게 돈을 번다면 땅값이 올랐거나 골병이 들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친환경 농사는 손이 여러 곱절로 가는 것에 비해 수확량이 떨어지지만 토양살충제를 뿌리지 않은 건강한 땅에서 자란 정직한 농산물임은 분명하다.
히끄는 아부지의 고생을 아는지, 보낼 데 다 보내고 남겨둔 우리가 겨우내 먹을 고구마를 보관해놓은 컨테이너 위에서 잠을 자거나 고구마 지킴이를 자처했다. 거기가 포근하고 캣타워 같아서 그런 게 절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발을 헛디뎌서 발바닥에 흙이 묻어도 괜찮다. 잔류농약검사까지 통과한 무농약 인증 고구마이기 때문이다. 고구마 농사를 지어보니 내가 먹는 먹거리뿐만 아니라, 히끄가 먹는 간식이나 사료에 들어가는 원재료에 대해 한 번 더 점검하게 됐다.
아는 만큼 보여서, 조금 더 비싸도 (손 가는 거에 비하면 비싼 게 절대 아니다) 친환경 인증 마크가 있는 상품을 사고 농산물뿐만 아니라 계란도 동물복지와 유기농 계란인지 확인한다. 내 자식 입에 좋은 것만 넣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이신아 히끄아부지 <히끄네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