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끄에게도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을까? 우선 고봉밥을 먹고 생각해보겠다냥!
올해 추석 보름달은 유난히 히끄 얼굴처럼 동그랗고 예뻤다. 히끄는 ‘아부지가 매일 고봉밥 퍼주게 해주세요’라고 솜방망이를 맞대고 소원을 빌었을 것 같다.
추석 연휴는 항상 그래 왔듯이 부모님 댁에 가지 않고, 평소처럼 민박 손님을 맞이하면서 히끄와 함께 보냈다. 내년 설날에도 고향 방문 계획은 없다. 관행대로 해왔던 걸 하지 않아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제주에 이주하고 나서 깨달았다. 취업하지 않아도,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지 않아도, 미래를 묻지 않고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제주에서 만난 대부분의 친구가 이렇게 잘살고 있다.
고향 친구 대신 동네 친구의 ‘개 조카’들과 산책을 하고, 고향에 간 이웃 대신 ‘냥 조카’들의 밥을 챙겨줬다. 털북숭이들과 함께해서 털털하고 행복한 추석이었다. 오히려 사람 조카들을 본 지 오래되어 길에서 우연히 만나도 못 알아볼 것 같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속담을 ‘가까운 동물 조카가 먼 친조카다 낫다’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다.
보름달처럼 둥근 히끄의 얼굴을 보면 추석 때 맛있는 거 잔뜩 먹은 것 같지만, 오해다.
명절 선물이라며 안동에서 온 손님이 건어물을 사오고, 대전에서 온 손님이 빵을 사 왔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오는 손님들 덕분에 지역 특산물을 맛보는 호사를 누린다. 민박 손님과 함께 빵을 나눠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곳에 자주 가던 시절이 생각났다.
대전에서 가장 번화한 은행동은 문재인 대통령도 방문한 유명 빵집이 있는 핫플레이스다. 은행동에 놀러 온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지만, 어떤 동물들에게 이곳은 지옥이다. 번화가 뒤편에 ‘애견 골목’이라고 불리는 펫숍이 줄지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잘 아는 이유는 부끄럽게도 나 역시 10년 전에 데이트하면서 자주 가던 장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유리창 너머 그 강아지들은 왜 그렇게 힘없이 누워있었을까? 그 고양이들은 왜 그렇게 눈곱이 끼고, 콧물을 흘리고 있었을까? 그 강아지와 고양이는 다 어디서 왔을까?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히끄와 함께 산 이후 다시 찾은 그곳에서 나의 무지함이 하나둘 죄책감으로 느껴졌다. 학생으로 보이는 손님이 “강아지에 대해서 하나도 몰라요. 키우기 쉬워요?”라고 물어보고, 직원은 “쉬워요. 아프면 바꿔줄게요. 요즘 유행하는 종이에요”라고 답했다.
귀에 안 들리던 게 들리고, 눈에 안 보이던 게 보여서 그 장소가 불편했다. 당장에라도 손님에게 “동물 사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직원에게는 “동물 팔지 마세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 후로 다시는 그곳에 들르는 일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펫숍에서 이런 대화가 오가고, 동물을 사고파는 행위가 존재한다. 입양되는 동물보다 버려지는 동물이 많은 현실이 안타깝다. 개·고양이 공장에서 태어난 동물들이 동물보호센터에서 안락사당한다. 그 중심에는 펫숍이 존재한다. 눈에 뻔히 보이는 연결고리이자 펫숍이 없어져야 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이신아 히끄아부지, <히끄네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