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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지갑이 필요할 때가 있다

등록 2019-08-26 14:47수정 2019-08-26 15:19

[애니멀피플] 히끄의 탐라생활기
솜바지를 뒤져보면 아무것도 없고, 엉덩이를 만져주면 애벌레처럼 꿈틀거린다.
솜바지를 뒤져보면 아무것도 없고, 엉덩이를 만져주면 애벌레처럼 꿈틀거린다.
딱히 사치 하는 것도 아닌데 목돈이 마련되지 않는다고 주변에 말하니 하나같이 가계부를 써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가계부 쓰는 게 귀찮은 게 아니라 가계부를 쓴다고 나갈 돈이 안 나가는 것도 아니고, 가계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대부분의 수입이 운영하는 민박에서만 발생해서 자영업자지만, 월급처럼 고정돼 있어 더욱 그랬다. 최근에는 원고료 같은 부수입이 들어오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해 재정 상태를 객관적으로 알고 싶어서 가계부를 적기 시작했다.

다이어트할 때 “저는 먹는 게 없는데, 살이 안 빠져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먹은 걸 빠짐없이 적어보라고 하면 살찌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카드사용명세서를 확인해 보면 내가 쓴 게 정직하게 찍혀져 있다. 가계부를 적어보니 두루뭉술하게 알았던 수입과 지출, 소비패턴을 정확히 알게 됐다.

무엇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서 더욱 재정 상태를 파악하고 여유 자금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사람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어 큰 질병에 걸려도 부담이 덜 하지만, 반려동물이 아파서 동물병원에 가기 시작하면 부르는 게 값이다.

초음파 검사하러 동물병원에 가야 해서 수납 당한 히끄. 가방이 작은 게 아니라 얼굴이 크다.
초음파 검사하러 동물병원에 가야 해서 수납 당한 히끄. 가방이 작은 게 아니라 얼굴이 크다.
부자도 병원비가 아까울 순 있으니, 재정 상황이 반려인의 자격 여부를 결정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반대로 가난해도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지만, 치료해주고 싶어도 당장 치료비가 없다면 힘들 수밖에 없다. 심각한 상황의 경우 일주일에 천만원이 청구되는 경우도 봤다. 다묘가정이나 대형견을 키우면 기본적인 사룟값도 많이 나가지만 병원비는 넘사벽이다. 특히 유전병 발생률이 높은 특정 품종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면, 동물병원에 자주 갈 확률이 높아진다.

나 또한 히끄와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민박을 준비 중이라 한 푼이 아쉬웠다. 예상치 못한 공사비가 이곳저곳에서 발생해서 현금이 부족하고 신용카드 한도가 초과하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고정적인 수입이 있지만 만약 그때 히끄가 크게 아프기라도 했다면, 카드 돌려막기를 했을 듯하다. 히끄의 두툼한 솜바지 안 호주머니에 현금다발이 돌돌 말아져서 고무줄로 묶여 있을 것 같지만, 땡전 한 푼도 없다. 솜바지를 아무리 뒤져봐도 털 뭉치만 손에 쥐어진다. 히끄는 궁디팡팡 하는 줄 알고 좌우로 구르면서 가르랑거릴 뿐이다. 털 색깔만큼이나 순박한 고양이다.

집사가 있는 몸이니 직접 계산할 일이 없다. 히끄에게 필요한 물건들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주문해서 채워 넣는 게 진정한 호구, 아니 집사의 본분이자 기쁨이다. 히끄는 현재 아픈 곳이 없고 건강한 편이라 고정비용은 사료, 간식, 영양제, 화장실 모래뿐이다. 이런 기본적인 지출만으로 20만원이 매달 나가고 있지만, 치주질환이 발생하면 병원비가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모셨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 전에 시간과 돈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

이신아 히끄아부지·<히끄네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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