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재구성. “이렇게 하면 문이 열린다냥!”
한라봉 철이 끝물이라서 육지에 있는 조카들 먹으라고 보냈더니 잘 받았다며 연락이 왔다. 언니는 3월 새 학기와 함께 큰애가 중학교에 입학해서 덩달아 바쁘다고 했다. 첫 조카가 벌써 중학생이라니, 명절 때마다 “네가 몇 살이더라”라고 묻던 큰아버지가 된 기분이다.
제주로 이주한 후에는 조카들 볼 일이 없어서 어쩌다 만나면 부쩍 자란 모습에 어색함이 크지만, 나도 한때 ‘조카 바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언니의 신혼집과 내가 다니던 대학교가 가까워서 같이 살면서 조카의 출산과 성장을 옆에서 지켜봤다. 조카가 태어난 후에는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왔다.
방 손잡이를 조심히 열면 베이비 파우더 냄새가 나는 후덥지근한 공기가 느껴졌다. 바닥엔 이불보에 갓난아이가 누워있었다. 미동이 없으면 숨을 잘 쉬는지 확인하고 고양이 젤리 같은 발바닥을 간질여보곤 했다. 지금은 잠자는 히끄 정수리에 얼굴을 부비부비하는데 어째서인지 히끄한테서는 화장실 모래 냄새가 난다.
그러고 보면 아이가 있는 집과 고양이가 사는 집이 많은 부분 닮았다. 언니는 외출하고 들어오면 조카 기저귀를 제일 먼저 갈아준 후에 분유를 탔다. 나는 밖에 있다 집에 들어오면 화장실을 치우고 혼자 있느라 심심했을 히끄를 간식으로 달래준다.
집에 있을 때는 습관적으로 청소하는 편이라 잠깐이라도 집을 비우고 돌아오면 할 일이 많아진다. 곳곳에 묻은 고양이 털과 발에 밟히는 화장실 모래를 치우느라 분주하다. 조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언니의 손에 걸레가 항상 들려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리고 아이나 반려동물이 시야에 없는데 조용하다면 사고를 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도 같았다. 언젠가 히끄는 혼자 현관문을 열고 셀프 산책을 한 적이 있다. 불볕더위였던 날씨 때문에 멀리 못 가고 텃밭 나무 아래서 ‘헥헥’ 거리고 있는 걸 잡아 왔다. 이렇게 유약한데 어떻게 길 생활을 견뎠는지 모르겠다. 그 모습이 웃겨서 혼내지는 못하고 현관문이 쉽게 열리지 않도록 손봤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만으로 얼마나 큰 효도인지도 히끄를 키우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한 입만 더”를 외치며 조카에게 밥 먹이는 언니에게 나는 “안 먹으면 굶겨. 그러다 버릇 나빠진다”라며 유난스러운 엄마 취급을 했다.
그런데 히끄를 키우며 나도, 잘 먹던 사료를 남기면 어디가 불편한지 생각한다. 고양이는 음수량 체크도 매우 중요해서 물을 조금 마시는 날에는 잠자는 히끄를 깨워서라도 반려동물 전용 우유를 먹이고 다시 재운다. 이게 다 아플까 봐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 그게 건강한 히끄를 낳아준 고양이 엄마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파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고 사랑이 부족해서 아픈 것 같아 속상하다. 히끄와 살아보니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내가 낳진 않았지만,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소중한 존재다.
이신아 히끄아부지 ‘히끄네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