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을 켜놓은 방보다 차가운 타일 바닥이 더 좋은지 욕실을 떠날 줄 모른다.
폭염 때문에 긴급재난문자가 매일 온다. 내가 사는 제주 오조리 마을회관에서는 휴대폰이 없는 어르신들을 위해 확성기로 일사병을 조심하라고 방송한다. 작년에도 덥다고 느꼈는데, 올해는 더 더워서 마트나
도서관 갈 일이 있으면 해가 지는 7시 이후에 재빨리 자전거를 타고 다녀온다. 빨래를 널거나 길고양이 밥을 주려고 마당에 잠깐 나가 있는 것만으로 땀이 난다. 111년 만에 찾아온 기록적인 폭염 탓에 에어컨을 쉬지 않고 돌려서 실외기가 고장 나버렸다. 보증기간이 지나서 32만원을 들여 고치긴 했는데, 또 고장 날까 봐 오전에는 거실 에어컨을 틀고, 오후에는 안방 에어컨을 번갈아 가면서 틀고 있다.
사람도 이렇게 힘든 날씨인데, 털옷을 입은 히끄와 길고양이들은 얼마나 더울까? 고양이의 체온은 사람보다 2도가 높다고 하는데, 패딩 입은 것 같은 더위일까? 히끄는 항상 입맛이 좋아서 사료를 주면 다 먹고 밥그릇까지 핥는데, 날씨 탓에 입맛이 없는지 사료를 남기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밥통을 보고 울면서 밥 타령하고, ‘트릿’(고양이 동결건조 간식)이 있는 냉장고 문을 열면 쪼르르 달려오는 걸 보면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여름 기력 보충용으로 미리 사놓은 고양이 종합 영양제를 ‘츄르’(고양이 액상 간식)에 섞어서 매일 챙겨주고 있다.
길고양이 시절, 이웃집 마당에서 고인 물로 갈증을 달래던 히끄.
에어컨을 틀어놓은 시원한 안방을 두고 햇빛이 들어오는 주방이나 거실에 누워있는 걸 보면 자기 나름대로 체온을 조절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모양이다. 집안이 시원하니까 바깥도 시원한 줄 알고, 햇빛이 이글이글한 한낮에 산책하러 나가자고 야옹거린다. “요놈아, 어디 한번 나가봐라”하고 내보내면 몇 걸음 걷다가 그늘에 엎어져 있다. 그래서 요즘은 해가 지는 저녁 7시 이후에 산책을 나간다.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들이 어떻게 여름을 견디고 있나 지켜보니, 그늘에서 쉬거나 그루밍을 하면서 폭염을 이겨내고 있었다. 히끄가 길고양이 시절, 옆집 할머니 마당에 있는 고인 물을 먹던 게 떠올랐다. 그때 생각을 하며 길고양이들에게 습식 캔을 매일 챙겨주고 있다.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지낸다면 에어컨을 계속 틀어놓고 고양이와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겠지만, 종일 밖에서 일하느라 집을 오래 비우는 반려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반려인 대신 집을 지키며 무더위를 견디고 있는 고양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가끔 장시간 외출할 일이 있으면 방충망이 있는 창문을 열어두고, 아이스팩을 넣어 사용하는 쿨필로우를 두고 나간다. 그러면 5시간 내외로 냉기가 유지된다. 반려동물용 쿨매트나 대리석도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다. 제품을 사기 어렵다면, 타일이 깔린 욕실 문을 열어두는 것도 좋다. 히끄 또한 시중에서 구매하는 제품보다는 욕실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한다. 조용해서 어디에 있나 보면 욕실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서 꼬리를 흔들면서 잠을 자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 행복해 보여서, “등목이라도 해주랴?” 장난스럽게 물어본다.
글·사진 이신아 히끄아부지 <히끄네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