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목줄에 묶여 있던 검은 개 블레니. 어릴 적 놓아준 타이어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블레니는 목줄을 풀고 새 개집을 얻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경기도 남양주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로 걸어오는 길에 묶여 있는 시골 개들은 평균 5마리입니다. 목줄이 짧고, 개집이 없거나 있어도 비가 새고 추위를 막지 못하는 허술한 집입니다. 빨갛고 노란색의 밥을 주로 먹으며 물그릇은 당연히 없습니다. 냉동실에서 썩어 가던 꽝꽝 언 음식을 비닐봉지 째 먹으라고 던져 놓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그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검은 개가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꼬리를 아래로 잔뜩 말고 땅이 뚫어지라 고개를 숙이고 눈도 못 맞추는 겁쟁이였습니다. 10m 떨어진 곳에는 황구 두 마리가 묶여 있습니다. 두 녀석은 목줄이 자주 꼬여 편하게 숨 쉬지 못하고 캑캑거렸습니다.
1년, 이름 모르는 개들과 매일 출퇴근길에 만났습니다. 이름을 아는 순간 마음을 열게 되고 정이 듭니다. 그러다 복날 다가오면 노심초사하게 되고 매일 보던 그 개들을 사 오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벽에 부딪힙니다. 개를 사 온다 해도 그 자리엔 또 다른 개가 묶여 있는 상황에 좌절하게 됩니다. 많이 겪어봤고 전국에 만연해 있어 실제로 동물자유연대에 제보도 많이 되는 한국 개들의 현실입니다.
지난해 겨울은 유독 추웠습니다. 아기 때 이 동네 어느 집에 온 검은 개가 맞이하는 첫 겨울이었습니다. 잠깐 햇볕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온종일 벌벌 떨던 검은 개에게 개집을 가져다줬습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만 또 사람이 궁금한 검은 개에게 낮 동안 사람 구경하고 심심하지 않도록 타이어를 얻어다가 그 안에 볏짚도 깔아주었습니다. 매섭고 차가운 바람이 불면 검은 개는 타이어 안으로 들어가 몸을 돌돌 말고 얼굴만 내밀어 사람들을 구경하고 풍경을 보았습니다.
황구 두 마리가 목줄에 묶인 채 서 있다. 둘은 목줄이 자주 꼬여 숨을 편하게 쉬지 못하고 켁켁거리곤 했다.
동물을 하대하여 키우는 사람들의 생각과 방식을 바꾸게 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개들을 살피고 개 주인들의 성향을 알아갔습니다. 편하게 돌볼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해주고 대화를 해 나가면 살뜰하게는 아니어도 잡아먹고 팔아먹고 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마을 노인회장님께 개 주인들의 의견을 물어봐 달라 요청했습니다. 동물자유연대에서 마을 개들이 묶여 있지 않아도 되는 개집을 지어 주고자 한다고요. 개 주인들은 기뻐했습니다. 집을 지어 주는 날 수고한다며 커피도 타 주고 집이 완성되자 고맙다고 했습니다.
이름 없는 검은 개에게는 집과 함께 ‘블레니’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황구 두 마리의 이름은 ‘곰순이’와 ‘도비’였습니다. 넓지는 않지만 묶여 있지 않아도 되니 자유롭고, 비와 눈도 피하고 한여름엔 그늘도 넉넉하게 만들어 주는 집이었습니다. 개들은 난생처음 가져 보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출퇴근길이 즐거워졌습니다.
얼마 후 황구네 강아지가 태어났습니다. 강아지가 어미젖을 떼고 뽈뽈거리니 귀여움이 폭발했습니다. 그리고 블레니가 사라졌습니다. 블레니가 사라진 날, 평소 별일 없던 노인회관이 북적거렸습니다. 블레니를 위해 지어줬던 개집에는 황구가 낳은 강아지 두 마리가 자리를 채웠습니다.
길었던 독재정권 시절, 잘 살기 위해 재산이 되는 소와 돼지 등 가축은 챙겼습니다. 상대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개는 발로 차고 매질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언제라도 화풀이를 할 수 있는 만만한 존재였습니다. ‘복날 개 맞듯이 맞아봐야 정신 차리지’라는 말은 개들의 위치를 가장 잘 나타낸 말입니다. 개 패는 게 얼마나 일상이었으면 이런 말이 생겨났을까요. 대항하지 못해 가장 쉽게 폭압의 대상이 되는 비운의 동물이 개입니다. 강산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은 개들의 열악한 삶은 우리가 얼마나 구시대에 갇혀 있고 배려심이 없는지 여실히 증명합니다.
황구들이 집을 얻었다. 몸이 한결 편안해보인다.
문재인정부 2기 개각을 앞두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이개호 의원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개호 의원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농해수위)에 있는 동안 노골적으로 동물의 생명권을 무시하고, 부정해 왔습니다. “(동물은) 반려보다는 팔아먹는 데, 잡아먹는 데 더 중점이 있는 거지.” “다른 위원회는 보호하는 게 중요하지만 우리는 돈 되는 것이 중요하지, 잡아먹고 팔아먹고.” 이렇게, 생명에 대한 존중 결여를 넘어 농해수위의 동물보호 역할까지 부정하는 막말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또한 “솔직히 말해 하도 당해서 동물보호법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상식 밖의 말로 자신의 직무 태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개는 좋든 싫든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깝고 친근한 동물이며 가족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개마저 배려하지 않는 사회, 동물을 잡아먹고, 팔아먹는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이 우리나라 동물복지를 이끌어갈 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현실에 망연자실합니다. 돈 되면 동물 따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이랬다, 뭐가 문제냐’에 갇혀 변화를 보지 못하고 우리 사회를 답답하게 만듭니다.
원래 저렇게 춥게 산다는 말 듣던 개들, 구조해서 데려와 작은 발난로 하나 틀어주면 털이 타도록 붙어 있습니다. 짬밥에 수분기 있으니 물 안 줘도 산다는 개들, 깨끗한 물 주면 숨도 쉬지 않고 달게 먹습니다. 동물들이 겪는 불편함과 고통에 무감각한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합니다. 심각하게 후퇴해 있는 한국의 동물복지에 ‘변혁의 리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글·사진 윤정임 동물자유연대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