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소리와 목소리를 알아듣고 아는 체를 해주던 햄스터 ‘햄구’.
20여년 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그림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 때 학생들 사이에선 햄스터를 키우는게 유행이었고, 종이로 만든 필통이나 통에 햄스터를 넣어 다니는 학생들이 있었다. 햄스터는 학생들의 가방에 실려 학교에 가고 방과 후에는 미술학원까지 따라왔다. 마치 필통에 든 필기구처럼.
결혼을 시킨다면서 두 마리를 같은 통에 넣었는데, 암컷이 수컷을 잡아 먹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새끼가 태어나면 서로 교환하기도 했다. 밤새 쳇바퀴 돌리는 소리가 시끄러워 다른 집으로 보내거나 케이지 채로 밖에 내놨다는 말도 들렸다. 그 때 나는 성인이었지만 햄스터에 대해 무지했다. 동족을 잡아 먹는 작은 괴물을 왜 키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2009년 10월, 동물자유연대는 폐업하는 수족관에서 판매가 되지 않은 햄스터, 기니피그, 토끼를 야산에 버린다는 제보를 접하고 100여 마리의 소동물들을 구조했다. 햄스터를 제대로 보는 것도, 만져 보는 것도 이 때가 처음이었다.
2011년에도 햄스터 14마리가 반려동물복지센터로 왔다. 햄스터의 주인은 좁은 공간에서 개와 햄스터를 같이 키웠다. 개가 햄스터를 물어 죽이는 일이 반복되었고 이를 방조했다. 보호소에 입소한 햄스터들 중 3마리가 유난히 나를 잘 따랐다. ‘햄구’는 내 발소리와 목소리를 인지했고, ‘햄지’는 나에게만 손길만 허락했다. ‘햄비’는 밥 주는 내 손가락을 사다리 삼아 어깨까지 올라와 애교를 부렸다. 햄구는 미식가였고 햄지는 밀당을 잘 하는 새침떼기였다. 사진을 찍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포즈를 잡아주던 햄비는 모델 같았다.
까만 눈을 반짝이며 먹이를 사각사각 씹어먹던 ‘햄구’는 미식가였다.
햄스터를 돌보면서 처음 가졌던 의문이 풀렸다. 햄스터는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 자기만의 공간(동굴같이 어두운 곳)에서 혼자 생활하는 동물이었다. 조명이 강한 대형마트 유리관에 진열하면 안되고, 친구를 만들어 준다며 작은 케이지에 여러 마리를 넣어도 안된다. 잠을 자야 할 낮에 계속 만지고 통에 넣어 가지고 다녀서는 안된다.
동료와 새끼를 죽이고 잡아 먹는 햄스터의 카니발리즘(cannibalism)의 원인은 바로 사람이었다. 개·고양이 학대는 구타와 방치가 많다. 반면 햄스터 학대는 도구를 이용한 극악무도한 학대가 많다. 살아 있는 상태로 믹서기에 갈고 온 몸에 이쑤시개를 꽂아 서서히 죽인다. 처형이라는 이름으로 발을 하나씩 자르고 몸을 분해하여 나열하기도 한다.
2017년 10월, 동물자유연대는 살아 있는 햄스터 11마리의 목을 펜치로 잘라 죽였다는 제보를 받았다. 동물 학대의 증거로 제출된 영상은 담당 형사들마저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잔혹했다. 영상 속 학대자는 살아있는 햄스터를 한 마리씩 잡아서 펜치로 목을 잘라 죽이고 있었다. 완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고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햄스터를 웃으며 다시 목을 잘랐다.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 앞에서 죽이는 행위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는 행위는 동물보호법 제8조(동물학대 등의 금지) 제1항 1, 2, 4호에 위배되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이다. 그러나 결과는 고작 벌금 100만원이었다.
이 사건 바로 다음 달이었던 2017년 11월, 햄스터의 머리를 잘라 연필에 꽂고 몸에 이쑤시개 수십 개를 찔러 햄스터를 처형했다고 온라인 대화방에 자랑한 동물학대 사건이 벌어졌다. 동물자유연대는 즉시 동물학대행위로 경찰에 고발했고 담당 수사관의 전화를 통해 피의자가 조용한 성격의 고등학생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2017년 11월 발생한 햄스터 학대 사건과 관련한 메시지. 피의자는 조용한 성격의 고등학생이었다.
개·고양이를 키우기 부담스러운 가정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햄스터를 많이 키운다. 실패하면 찢어버려도 되는 연습장처럼, 햄스터는 개체의 특성과 양육 방법을 모르는 무지한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짧은 생을 마감한다. 어린 시절 햄스터처럼 작은 동물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함부로 대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트라우마가 남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저항하지 못하는 작은 동물을 괴롭히며 무뎌진 생명 존중이 다른 동물과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 있음을 부모들은 알아야 한다. 사주지 않았을 때의 서운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각사각 맛있게 피칸 열매 먹던 햄구가 그립다. 떠나기 전 사력을 다해 내 손가락에 얼굴을 비비며 체온을 전하던 햄지가 무척이나 보고 싶은 밤이다.
글·사진 윤정임 동물자유연대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