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애니멀피플은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이 충남 예산의 한 개농장에서 개들을 구조하는 현장을 취재했다. 김성광 기자
미국 현지시각으로 10일, 미국의 뉴스채널 시엔엔(CNN) 홈페이지 오피니언 섹션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올림픽의 그림자, 잔혹한 개고기 거래(In the shadow of the Olympics, a brutal trade in dog meat)’라는 제목의 글은 CNN의 기자인 랜디 케이가 적었다. 그는 자신이 2년 전에 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이 한국의 개농장에서 구조한 리트리버 ‘개츠비’를 입양해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랜디 케이 기자는 “선수들이 올림픽 경기를 하는 동안 멀지 않은 곳에서 불길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며 “HSI 보고에 따르면, 한국에는 1만7000개의 개농장이 있다. 한국과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개를 키워 고기로 먹기 위해 도살한다. 개들은 닭장과 비슷한 금속 철창에 갇혀 지낸다. 하루에 한 번 물을 주고 음식찌꺼기를 먹는다. 의료 조치는 없다. 모두 합법적”이라고 한국의 식용견 사육 실태를 알렸다.
그는 이어 “아시아에서는 개고기가 문화의 일부”라고 소개하며 “북미에서는 개를 도살해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미국의 여러 주에서 개와 고양이 도축이 합법”이라고 두 문화를 비교했다. 또 “미국 내에서도 개와 고양이 고기 거래를 중단하기 위한 법안이 마련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7월 충청남도 예산의 한 개농장.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은 이날 100마리 넘는 개를 구조해 외국으로 보냈다. 김성광 기자
지난해 7월 HSI 활동가가 충남 예산의 한 개농장에서 개를 구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13일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한국지부의 김나라 캠페인 매니저는 “지난해 12월 경기도 남양주 농장에서 170마리의 개를 구조하는 현장에 시엔엔 취재팀이 다녀갔다”고 밝혔다.
이 글 때문인지 한국에서도 개 식용 관련한 논쟁이 다시 시작됐다. ‘애니멀피플’은 12일 온라인 커뮤니티 ‘82쿡’과 ‘보배드림’, 게임커뮤니티 ‘배틀페이지’ 등에 올라온 관련 글의 댓글을 살펴보았다. 문화상대주의 입장을 고수하는 ‘개고기 찬성’ 쪽과 반생명적인 개 식용 문화 종식을 촉구하는 ‘개고기 반대’ 쪽 주장이 팽팽했다.
“개를 먹는 건 한국보다 중국이 더 먹는데, 베이징올림픽 때 가만히 있다가 평창에만 이러나”, “오리엔탈리즘이다. 문화 차이로 봐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 “남의 식성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더 야만일 수 있다”, “서양이 만든 오리엔탈리즘을 왜 동양 사람들이 내면화하나”, “문화 취향에 레벨(수준)이 어딨느냐”는 등의 문화상대주의 시각에서 외국 기자의 글을 비판하는 내용이 여러 개였다.
“기사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고기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90년대까지도 (사철탕) 간판이 자주 보였지만 요즘은 이런 곳이 있는지 모르겠다.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나. 개 키우는 사람으로서 (이런) 흥미 위주의 기사는 불편하다”는 글도 있었다.
하지만 “꼬투리 잡지 말고 (개 식용) 없어졌으면”, “소수 취향 문화 때문에 혐오스럽다. 자국민인 나도 너무 끔찍하다”, “개 식용이 무슨 오리엔탈리즘인가. 문화적 상대성보다 생명존중이 우선이다”, “과학이 발달해서 줄기세포로 고기 만들어 먹을 날이 오길”, “악습이니 개농장 없어지길” 이라며 비판을 수용하는 글도 많았다.
또 “개빠(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단어)들은 논리가 개만 안된다고 하니 차라리 육식은 안 된다, 채식하자 해라”, “거위털 파카 벗고 떠들어라”며 개 식용의 문제가 육식 문화에 대한 반성과 동물복지 인식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지난해 9월 서울 광화문에서 대한육견협회 회원 100여명이 모여 개고기 합법화 촉구 집회를 열었다. 유지인 교육연수생
HSI와 카라는 평창올림픽 시기인 이달 5일부터 15일까지 개 식용 반대를 위한 ‘달려라 윙카’ 캠페인을 한다. 개농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트럭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 사육 실태를 고발한다.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제공
한국의 개식용 문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은 한국을 무대로 열리는 국제 행사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에 이어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도 같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강원도 지역에서 사철탕, 보신탕 같은 단어가 눈에 띄지 않도록 가게 간판을 교체하는 것을 권하는 식으로 30년째 ‘불편한 논란’을 외면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여론이 어디로 기우는지 눈치만 보고 있다. 13일 농림축산식품부 친환경복지과 박홍식 과장은 “국회의원실을 통해 농장주 전업지원 특별법을 논의하고 있고, 식약처나 행정안전부, 환경부 등 관계부처와 논의를 해오고 있다”면서도 “가축으로서의 개는 농림부 담당이지만 고기로서의 개는 식약처 담당이다. 이 문제는 관행적으로 유지되어 온 틀이 있어 사회적 성숙과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올해 개 식용과 관련한 특별한 업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는 정부의 태도를 지적한다. 지난 5일부터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과 함께 개식용 종식을 위한 캠페인을 하고 종식 촉구 서명을 받는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전진경 이사는 “이런 논란 자체가 불필요한 만성적 고통이다. 있을 수 없는 (정부의) 태만이다. 이번에 끝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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