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이리온 동물병원에서 다른 개를 무서워하는 푸들 ‘애플’(오른쪽)이 동물행동 교정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개들은 처음 만났을 때 서로의 엉덩이 냄새를 맡으며 탐색하는 시간을 보낸다. 사람 아이가 자라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이의 정서 발달에 좋듯이, 개도 성장기에 한 경험의 폭이 넓을수록 밝고 용감한 견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기에 다른 개와 전혀 만난 적이 없거나 성격이 좋지 않은 개를 만나 아찔한 경험을 했다면 개들도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다.
자신을 왕따시키는 개, 애플(암컷·5살)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애플이는 다른 개랑 한 공간에 있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다른 개들이 너른 놀이방에서 종종거리며 함께 동물병원 직원을 따라다닐 때, 애플이는 그곳에 발도 디디지 못한다. 직원이 품에서 내려놓으려고만 하면 벌벌 떨다가 불안한 듯 고개를 돌린다. 다시 자기 독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애플의 보호자는 “다른 이들처럼 강아지랑 같이 산책 다니고 애견카페 가서 놀고 싶다”는 바람이 있지만, 애플의 상태로는 불가능한 꿈일 뿐이다.
다른 개가 무서운 소심한 애플이
사람 뒤에 숨고 슬슬 피해
어릴 적 사람만 봤거나 트라우마
강아지 경험이 ‘견생’을 좌우
‘다른 개와 함께하기’ 수업으로
사회성 늘리는 법 익힌다
같은 품종, 다른 성별, 성격 좋은 개
애플이의 ‘왕따 탈출’ 돕는다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이리온 동물병원 교육실에 온 애플이는 바닥에 코를 대고 냄새를 확인하느라 바빴다. 지난해 12월부터 교육을 받고 있으니 벌써 7번째다. 교육자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진 뒤, 다른 개의 짖는 소리를 들려주는 수업부터 시작했다. 처음 전찬한 이리온 동물병원 교육 이사이자 서울호서직업전문학교 애완동물학부 훈련 전임교수를 만났을 때 애플이는 자꾸 방구석을 찾고 15분 이상 탐색 활동만 했다고 한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강아지 시기에 사람만 만나고 다른 개와 어울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죠. 사회성이 떨어지는 개들은 자기 세계에 갇혀 살기 때문에 먹이도 거부하고 주변 변화를 극도로 꺼려요.” 전 이사는 그나마 애플이가 다른 개들이 있을 때 사료를 먹는데 그건 좋은 신호라고 했다.
이리온 동물병원의 강아지 놀이방, 다른 개를 무서워하는 애플이는 개들과 함께 있을 수 없어 사람이 안고 있거나 혼자만의 방에 들어가서 있고는 한다. 박종식 기자
공간에 적응하고 점차 안정을 찾은 애플이가 이날 들어야 하는 수업은 ‘다른 개와 함께하기’다. 이전 수업에서도 시도했지만 좀처럼 나아지는 게 없어 계속하는 중이다. 애플이의 교육을 돕는 개는 ‘의젓한’ 13살 푸들 필립(수컷)과 ‘아직 교육이 덜 된’ 4살 캐벌리어 킹 찰스 스패니얼 종 미키(수컷)이다. (미키는 ‘전찬한의 개이득’ 지난 회 주인공이기도 하다) 전 이사는 “품종마다 몸짓언어(보디랭귀지)가 다를 수 있으니 처음에는 같은 품종, 다른 성별, 품성이 좋은 개를 만나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애플이는 그동안 필립이와 3번 이상 만났고 미키와는 1번 만났다. 전보다는 이 친구들을 익숙하게 느낄까.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이리온 동물병원에서 다른 개를 무서워하는 푸들 ‘애플’(가운데)이 동물행동 교정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애플이와 똑같이 생긴 필립이는 수컷인데다 품행이 바르기 때문에 도우미 견으로는 안성맞춤이다. 나이가 많아서인지 애플이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플이는 필립이가 근처에 올까 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방을 돌아다녔다. 안 보는 것 같지만, 항상 필립이가 어디 있는지 신경 쓰면서 방을 뱅뱅 돌았다. 전 이사와 눈을 맞추며 사료를 받아먹느라 바쁜 필립이와 달리, 애플이는 필립이 때문인지 사료를 든 전 이사에게 직진하지 못하고 뒤로 빙 돌아갔다. 전 이사 뒤에 숨어 필립이를 살피는 모습이 마치 엄마 다리 붙잡고 뒤에 숨은 꼬마처럼 보였다.
필립이와도 아직 데면데면한데 미키는 더 불편한 관계이다. 애플이보다 몸집이 크고 식탐이 많아 행동이 부산한 미키는,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이웃의 평범한 반려견이다. 이런 미키와 친하게 지낸다면 일상생활에서도 다른 개들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잘 지낼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함께했다. 처음 만난 애플이 엉덩이에 코를 대는 미키, 애플이는 바닥에 떨어진 사료도 먹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소심한 애플이는 다른 개를 공격하는 성격이 못 된다. 피하기만 하니 더 안쓰럽다.
“산책 다니다 다른 개를 만났을 때 무조건 친구 하라고 개들끼리 가까이 있게 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먼저 서로 어울리는지 보고 친구로 삼아야 합니다. 서로가 싫을 때는 ‘왕’ 하고 물거나 몸 위에 올라타거나 짖을 수 있어요.” 전 이사는 조언했다.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이리온 동물병원에서 다른 개를 무서워하는 푸들 ‘애플’(왼쪽)이 동물행동 교정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한참을 기다려보지만 애플이는 필립이나 미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다른 개들이 사료를 먹기 위해 전 이사 앞에 앉아 있을 때, 애플이는 계속 전 이사 뒤나 옆에 서서 자기도 사료를 달라고 발로 톡톡 쳤다. 그러다가도 다른 강아지들이 우다다 움직이면 몸서리를 치며 자리를 피했다. 무엇이 애플이를 외롭게 한 건지는 모르지만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가 사람이나 개나 쉽지 않은 걸까.
“내성적인 개보고 외향적으로 살라고만은 할 수 없어요.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성격을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개는 그게 어려우니 애초에 바라면 안 되는 걸지도 몰라요. 그러니 어릴 때 경험과 교육이 중요합니다.”
전 이사는 애플이의 훈련은 점점 덩치가 크고 외향적인 성격인 개와의 만남으로 진행될 예정이지만, 애플이의 상태를 봐서 훈련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애플이처럼 다른 개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생후 한 달도 안 돼 어미나 형제자매로부터 떠나 분양되는 애완동물 가게의 개들이 겪을 수 있는 불안 증상이다. 성견보다 새끼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개를 다른 개들과의 사회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소심한 개 애플이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진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