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응급실 의사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사무실 게시판엔 날마다 의사들의 등급을 매기는 평가표가 나붙었다. 녹색·노랑·빨강 세 가지 등급이다. 응급실에 온 환자들을 가급적 많이 입원시키라는 병원 내부 목표를 달성하는 의사에겐 녹색이, 목표치에 근접한 의사에겐 노랑, 목표 달성에 실패한 의사에겐 빨강이 각각 부여됐다.
의사들을 평가하는 잣대는 방문한 환자 가운데 몇 퍼센트를 입원시켰느냐였다. 특히 65살 이상의 응급실 내원 환자 가운데 절반 넘게 입원시키라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됐다. 입원을 많이 시키면 병원 수익이 그만큼 많아져서인데, 65살 이상을 주 대상으로 한 것은 미국 연방정부의 노인층 대상 건강보험인 메디케어에서 진료 비용을 많이 받아내려고 한 것이다.
고열 아기 응급실 왔다가
정상체온 됐어도 입원시키고
목이 아프다는 환자에겐
난데없는 가슴통증 검사한 뒤
이상없음 결론에도 또 입원
‘노인 절반이상 입원시켜라’
잘하면 보너스, 못하면 해고
환자 알선자 사례금까지 주며
연 수십억달러 매출 올려
미 정부, 참다못해 직접 고발
이 평가표는 미국에서 넷째로 큰 영리병원인 ‘헬스 매니지먼트 어소시에이츠’(HMA)가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사용했던 것으로, 내부고발자들의 폭로로 외부에 공개됐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본부를 둔 이 영리병원은 미국 남동부 지역 15개주에 71개의 병원을 소유하고 있는 거대 병원그룹이다. 이 영리병원의 2012년 매출은 58억7000만달러(약 6조3000억원)에 이르는데, 매출의 40%가량은 메디케어·메이케이드 프로그램에 따라 정부에서 나온다. 응급실 외래와 입원은 진료 비용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이런 내용을 폭로한 내부고발자들은 이 영리병원 그룹에 소속된 펜실베이니아주 지역 병원의 최고경영자 마이클 코울링과 이 병원 응급실에 의사들을 공급하는 협력회사 직원 재클린 메이어다. 두 사람은 2011년 7월 연방정부에서 더 많은 돈을 받아내려고 과잉진료를 하는 등 사기 혐의로 이 병원을 고소했다. 두 사람은 소장에서 “이 병원은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입원율을 높이라고 의사들을 압박했으며, 이에 따라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자들이 불필요하게 입원을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 평가표는 이익 극대화를 위한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현재 이 영리병원은 병원 관리자, 의사, 협력회사 등한테 모두 8건의 고소·고발을 당한 상태인데, 이들의 소장을 보면 이 병원은 의사들의 성과를 관리하는 고객맞춤형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의사들에겐 보너스를 줬으며, 이런 지침을 따르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해고했다. 또 외부 의사들이 환자들을 이 병원에 진료를 의뢰해주는 대가로 사례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불법이다. <한겨레>는 이들 소장을 미국 법원기록공개 사이트에서 확보했다.
미국의 거대 영리병원 그룹 ‘헬스 매니지먼트 어소시에이츠’(HMA)의 내부고발자들이 <시비에스>(CBS) 방송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인 ‘60분’에 나와 이 그룹의 불법 영리행위를 폭로하고 있다. <시비에스> 화면 갈무리
미국 법무부는 이 영리병원의 수법이 미국 의료시스템에 끼치는 악영향을 고려해 최근 이 내부고발자들의 소송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법무부는 지난달 13일 성명을 통해 “이 사건은 미국 의료 비용을 증가시키고 불필요하게 환자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부정청구방지법’ 위반 혐의로 전면적인 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플로리다 남부 검찰청의 윌프레도 페레르 검찰총장은 “병원이 진료 의뢰를 더 많이 받고자 외부 의사들과 불법적인 금융 관계를 맺는 행태가 만연해 있다”며 “오직 병원의 수익 증대를 위해 입원자 수를 늘리려는 사기 행위는 의료시스템에 직접적 타격을 입힌다”고 지적했다.
이익 극대화를 위해 이런 변칙 수법을 쓰는 행태는 이 영리병원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최대 영리병원인 ‘에이치시에이’(HCA)와 또다른 거대 영리병원인 ‘커뮤니티 헬스 시스템스’도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을 다룬 기사에서 “의료 행위가 개별 의사들의 의학적 결정에서 기업 이해에 따라 통제받는 방향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며 “거대 병원 시스템의 등장과 신기술이 이런 변모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 신문은 “수십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메가 병원 시스템은 규제 당국의 규제도 어렵게 한다”고 덧붙였다.
자유방임적으로 성장해온 미국의 병원은 크게 공공병원과 비영리병원, 영리병원 세 가지로 나뉜다. 미국의료통계센터 자료를 보면, 2010년 병원 수 기준으로 비영리병원이 58%가량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영리병원이 20% 수준이다. 1970년대만 해도 10% 수준에 머물던 영리병원이 1980년대 이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은 비영리병원과 공공병원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민간 건강보험 회사들의 영리 추구 활동이 시장 전반을 지배하자 의료시스템이 시장에 포획됐다. 뒤늦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을 통과시켜 민간 건강보험 시장 개혁에 나서고 있으나 현재로선 역부족이다.
‘헬스 매니지먼트 어소시에이츠’의 사례는 이렇게 성장하는 미국 영리병원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영리병원은 의사들의 성과를 관리하려고 ‘프로-메드’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각 병원 응급실 의사들의 성과를 일별·주별·월별로 관리했다. 점검 내용은 치료환자 숫자, 입원시킨 환자 숫자, 입원시킨 환자 비율, 65살 이상 환자의 입원 비율 등이었다.
이 영리병원에 소속된 조지아주 지역 병원의 응급실 담당 국장인 크레이그 브러머(의학박사)도 소송에 나선 내부고발자다. 그는 소장에서 자신이 직접 수집한 부당 입원 사례를 적시했다.
열이 40도까지 올라간 생후 11개월 된 아기가 응급실로 왔다가 여러 조사에서 이상이 없고 체온이 정상인 37.1도까지 내려갔으나 ‘열병’ 진단으로 입원 조처 됐다고 지적했다. 또 목 통증 때문에 응급실을 찾은 71살 노인은 가슴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으나 심전도 검사와 흉부방사선영상 검사를 받았다. 그는 이들 검사에서 정상으로 나왔으나 가슴 통증 규정에 따라 불필요하게 입원 조처됐다. 그는 소장에서 “의학지식이 없는 병원 관리직원들이 급성이 아닌 환자들을 입원시킬 것을 요청했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병원의 방침을 거역하면 가차없이 해고하기도 했다. 이 병원 응급실에 의사를 제공하는 업체 직원인 메이어는 입원 목표를 채우지 못한 의사들을 해고하라는 이 병원의 지시를 거부했다. 메이어는 이런 이유 때문에 자신이 해고됐다고 주장했다. 코울링도 입원율에 따라 의사를 관리하라는 본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의사들에게 “환자들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라”고 지시했다가 해고됐다고 주장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30년간 근무한 베테랑 수사관인 폴 메이어는 2006년 퇴직 뒤 이 병원의 준법감시인으로 일했는데, 그도 내부고발자가 됐다. 그는 2011년 제출한 소장에서 “이 병원은 외부 의사들과 사무실 임대계약을 하며 정상가보다 낮은 임대료를 받거나 검사 대행 계약을 하며 검사비를 계약서보다 높게 지불했다”며 “이런 금전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들 의사들이 이 병원에 환자 진료 의뢰를 한 것은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문제제기를 하다 해고당했다.
그러나 이 병원은 이런 혐의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 병원 쪽은 법무부의 수사 발표가 나온 뒤 성명에서 “헬스 매니지먼트 어소시에이츠와 이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최고 품질의 진료를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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