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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박정희와 김일성의 부활과 죽음 / 김보근

등록 2013-12-15 19:18수정 2013-12-17 09:58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남한 경제가 북한보다 발전한 이유는 박정희가 김일성보다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몇해 전 한 언론인 모임에서 보수신문 출신 언론인이 한 말이다. 백번 공감가는 얘기였다. 요즘처럼 남북이 앞다투어 ‘박정희’와 ‘김일성’ 부활가를 부르는 상황에서 꼭 한번 짚어봐야 할 말이기도 하다.

박정희와 김일성이 만들어낸 경제시스템은 남북 공히 ‘개발독재’다. 개발독재는 고부가가치나 창의성이 아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기반한다. 1957년 시작된 북의 천리마운동이 바로 극단적 노동강화운동이었고, 1972년 만들어진 유신체제가 바로 정당한 노동3권을 ‘용공이데올로기’ 등을 동원해 노동자들로부터 빼앗는 제도였다.

그래도 1970년대 중반까지 이 모델들은 꽤 성공적이었다. 각각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에서 주목받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화가 절실했다. 반도체칩으로 상징되는 극소전자(ME)혁명이 세계 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남한 경제는 변신에 성공했고, 북한 경제는 그러지 못했다.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라는 차이도 컸지만, 개발독재를 극복할 수 있는 내부의 정치적 힘이 있었는가도 중요한 요소였다.

여기에 ‘박정희의 죽음’이 발생했다. 박정희가 1979년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숨진 것은, 개인으로선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독재자 박정희의 부재’는 남한 민중이 ‘유신개발독재’를 극복할 출발점이 됐다. 남한 민중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항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노동자의 임금이 올랐고, 그에 맞춰 노동도 창의적인 것으로 바뀌어갔다. 민주주의 진전과 함께 남한 경제가 ‘업그레이드’된 것이지만, 죽은 박정희도 ‘산업화의 영웅’으로 되살아났다.

북은 시스템 변화 없이 1980년대를 보냈다. 미국의 적대시정책 등 대외 요인도 컸지만, 김일성이라는 ‘위대한 영도자’의 존재가 변화를 막은 큰 요인이었다. 김일성이 숨진 것은 박정희 사망 15년 뒤인 1994년이었다. 바로 다음해인 1995년부터 참혹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김일성 시스템’이 고난의 행군을 낳은 큰 요인 중 하나였지만, 많은 북한 인민들은 그를 여전히 ‘건국의 영웅’으로 기억한다.

늦었지만 북한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인민들이 굶주림 속에서도 시장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유용성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나 2012년 새경제관리체제는 이런 시장의 유용성을 제도화하려는 시도였다.

여기에서 처형당한 장성택의 존재가 눈에 띄었다. 북한이 ‘집단지도체제’로 나아가는 데 그가 발판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북한에 그 정도의 민주적 변화가 있을 때, 인민들이 키워온 ‘시장의 유용성’이 비로소 높은 경제성장으로 빛을 낼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제1비서가 박정희와 김일성의 통치를 자꾸 불러낸다. 남한의 검찰총장 찍어내기, 국가기관 불법 선거개입 은폐, 노동탄압 등이 모두 박정희 체제를 연상시킨다. 북한은 더하다. 장성택 처형은 북한을 남로당계 숙청 등이 자행되던 1950년대 중반으로 후퇴시킨다. 북한 언론은 김정은 제1비서를 ‘위대한 영도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부활은 정작 그들의 또 다른 죽음을 예고할 뿐이다. 무엇보다 낡은 통치방식으로 새로운 경제를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경제마저 비전을 잃으면, 사람들은 ‘박정희와 김일성’이 얼마나 구식인지 절감하게 된다. 마침내 ‘영웅신화’마저 깨어지고, 두 사람의 두 번째 죽음은 이전 죽음보다 더 서글프고 끔찍할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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