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룡지기(屠龍之技)
특히 종교적 신앙심이 좋다는 사람들일수록 세상에 대해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다. 종교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속세(俗世)’라는 단어도 그렇고 ‘죄 많은 이 세상’이라는 표현 속에 세상을 경시하거나 멀리하는 심리가 담겨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과 다른 또는 격리된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현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장자》 잡편 열어구편(列禦寇篇)에 보면 주평만(朱泙漫)이란 사람이 지리익(支離益)이라는 사람을 찾아가 용을 죽이는 필살의 검법을 배우고 싶어 했다. 모든 재산을 다 투자하여 3년 만에 드디어 세상 최고의 검법을 습득했다. 그러나 다 배우고 나서 세상에 나와보니 검법을 쓸 곳이 없었다. 왜냐하면 용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에 열심히 헌신하여 도룡지기(屠龍之技)를 습득한 이들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태도를 보인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옳으므로 세상 사람들의 권고를 도무지 듣지 않는다. 자신들은 바이러스도 피해 가는 절대무공을 습득했기에 자신들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한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최고 절정의 종자가 백인-기독교-남성이다.
종교인들이 깨우친 최고의 경지라는 게 어쩌면 도룡지기(屠龍之技)인지 모른다. 세상에 아무 짝에 쓸모없는 허망한 짓거리일지도 모른다. 물 위를 걷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그런 류의 기적은 그걸 염원하는 이들에게나 소용 있는 짓이다. 오히려 목마른 자에게 물 한 잔을 주는 일, 배고픈 이에게 밥 한술 주는 일, 아픈 이에게 손 내미는 일이 세상에선 유용한 일일 게다.
글 이정배 목사(원주 살림교회 담임 &영화·고전 평론가)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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