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 두 귀가 순해져야 하는 시간 이순이라니, 이렇게 적지 않은 세월을 건너왔구나. 이제는 두 귀가 순해져야 하는 시간이다. 그렇다. 나는 살만큼 살아오면서 숱한 허물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니 부디 정신 바짝 차리고 죽는 순간까지 잘 살아야 한다. 이런 마음이어서 그런가. “눈보라여, 오류 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황지우 시인의 시 <눈보라>의 이 구절이 귀에 솔깃하고 마음을 찌른다. 그렇다. 나는 지금 분명 후회하고 자책하고 있다. 아울러 지금의 후회가 좌절과 절망이 아님도 분명하다. 하여, 지금의 후회는 지금의 희망이다. 지난 시간에 내가 저지른 일들은 첫 번째 맞은 화살이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으려면, 오류를 마주하면서 작은 깨달음을 일으키는 일이다. 나이를 충분히 먹었으니 이제야 철이 드는 모양이다.
‘죽음의 순간에 어떤 마음이 들까’ 이순에 들어서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명에 관심이 들었다. 그래서 검색을 해 보았다. 지금 내 나이를 기준으로 분류해 본다. 먼저, 지금의 나보다 적은 수명으로 생을 마감한 분들은 다음과 같다. <월든>의 주인공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1817~1862)는 45세를 살았다. <1984>와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은 47세, <신곡>의 단테(1265~1321)는 56년을 살았다. 이 사람들의 수명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나를 생각한다. “나는 뭘 이루었지?‘라는 지극히 단순한 물음이 든다. 인생이 무얼 이루고 못 이루고의 기준과 평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참 쓸쓸한 기분이 든다. 생의 온갖 치욕을 딛고 살아온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60세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럼 지금 그와 같은 나이에 들어선 내가 올해 죽는다면 죽음의 순간에 어떤 마음이 들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님의 침묵>의 만해(1879~1944)는 65세, 한국의 위대한 사상가 원효(617~686)는 69세, 세계적인 명필이자 금석학자인 추사(1786~1856)와 성리학의 집성자 주희(1130~1200)는 70년을 살았다. 이들을 떠올리면서 내가 살아갈 햇수가 10년 정도 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헤아림은 좀 긴장되면서 기분이 묘하다. 은근 조바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나의 스승 석가모니 부처님은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다. 스승을 생각하면서 나의 삶이 대략 20년 정도 남았다고 헤아리니 좀 안심이다. 이러고 보니 참 내 모습이 궁색해진다. 명색이 늙음과 죽음의 끈에서 자유로워야 할 수행자의 마음 꼴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김형석 선생의 연세와 120세까지 살았다는 중국의 조주 선사를 떠올리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지난날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고, 크게 후회하지 않는 삶을 경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역시 속물적 중생심이다. 알 수 없구나, 사람의 마음이여!
내가 묻힐 곳을 정하다 잠시 말의 발길을 돌려보기로 한다. 나는 작년에 내가 죽을 자리를 미리 마련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묻힐 곳을 정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 불교 수행자들은 생을 마감하면 다비를 한다. 태운다는 의미의 범어 자피타(jha- pita)을 음역한 다비(茶毘)를 마치면 돌로 만든 부도(浮屠)에 안치한다. 고찰 주변에 가면 부도를 많이 볼 수 있다. 지금은 세속의 풍습에 따라 스님들도 더러 수목장을 하기도 한다. 재작년에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실상사의 한 스님도 절 주변의 소나무 아래 유골을 모셨다. 나는 돌로 만든 부도와 수목장을 보면서 내가 묻힐 곳을 좀 기특하게 해 보자, 하는 호기심과 장난기가 발동했다. 한국불교사에서, 일반사회에서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새로운 무덤 찾기에 틈틈 골몰했다. 그런 발상은 곧 발견으로 이어졌다. 매우 멋지고, 자연친화적이고, 돈이 그리 들지 않는 죽을 자리를 발견했다. 실상사는 매주 수요일 승속의 모든 대중이 모여 농장 공동 울력을 한다. 작년 가을이었던가. 매우 넓은 밭에서 고구마를 캐다가 문득 밭 가운데 놓인 듬직한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아! 바로 이거다,라고 조용히 소리를 질렀다. 이 바위를 내 부도(무덤)로 하면 좋겠구나. 내 유골을 이 바위 아래 묻고 생몰연대와 출가연도만을 새긴 작은 표식만 하면 멋진 부도가 된다. 이름도 정했다. 이른바 ‘고인돌 부도’라고. 실로 멋지고 기막힌 발상 아닌가. 이후 여러 스님들에게 고인돌 부도에 대해 말하니 매우 좋은 제안이라고 동의한다.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여기에 묻히면 밭일을 하다가 새참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 건네라고 부탁했다. 가끔 이곳을 산책하면서 나의 고인돌 부도를 보면 마음이 그리 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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