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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부르더호프에서도 혁명이 일어난다

등록 2020-12-06 10:42수정 2020-12-06 10:43

사랑하는 켄트 & 조안나 부부께,

당신을 달무티 파티에 초대합니다.

준비사항: joyful heart

올여름 저의 50세 맞이 생일을 위해 아내가 가까운 친구 부부들에게 보낸 초대장입니다. 초대장을 받은 부부들은 ‘열렬한 기대’ 를 가지고 꼭 오겠다고 답을 해왔습니다. 이번에 초대된 부부들은 총각 때 저희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친구들인데 이제는 모두 결혼하여 어린아이 2-3명의 젊은 아빠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전에 우리 집에서 했던 달무티 게임을 못 잊고 두고두고 이야기해 아내가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 중 몇 명은 다른 공동체로 이사 간 친구들도 있었지만 1시간 넘는 거리를 마다 않고 찾아와 제 50세 생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환영 인사를 마치고 모두들 자리에 앉자 달무티 게임이 시작 되었습니다. 달무티 게임은 중세의 신분제도를 바탕으로 한 게임인데 나누어준 카드를 먼저 모두 다 써버린 사람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각 카드에는 달무티(왕), 대주교, 백작, 양치기, 농노 등 중세 시대 신분의 서열이 그려져 있고 조커가 2장 있습니다. 그런데 카드를 내는 방법이 독특한데 게임 첫판에는 순서대로 하지만 두번째부터는 카드를 먼저 다 쓴 순서대로 왕부터 노예가 결정되고 카드 내는 순서도 항상 왕부터 서열 순서대로 내고 노예가 된 사람은 좋은 카드를 받아도 가장 좋은 카드 2장을 왕에게 세금으로 바쳐야 하는, 그야말로 불평등한 신분 제도를 반영한 게임입니다.

게임의 재미를 위해 아내는 의상을 준비했습니다. 왕에게는 망토와 왕관을 귀족들에게는 멋진 모자들을 노예에게는 다 떨어진 짚으로 만든 모자를, 의자도 왕에게는 멋진 의자를, 노예에게는 바닥에 앉게 했습니다. 왕은 게임 도중 노예에게 심부름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아내가 게임이 진행되면서 음료와 스낵을 제공했는데 왕에게는 멋진 크리스탈 유리잔에 맛있는 포도주와 새우, 치즈 케이크, 선데 아이스크림 등이 나오고 서열대로 음식이 초라해지면서 노예에게는 약을 재는 조그만 컵에 물을 따라주고 새알 만한 M&M 초콜릿 몇 알만 주니 모두들 왕이 되고 싶어 머리를 굴리며 게임에 집중합니다. 그래도 덕이 있는 왕은 자기의 음식을 옆 노예와 나눠 먹기도 하네요. 게임이 여러 번 진행되면서 달무티가 된 사람이 좋아하면서 옆의 노예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하는데 갑자기 노예가 된 형제가 “잠깐만! 대혁명이다!” 소리치며 조카 두 장을 보여 주었습니다.

노예가 조커 2장을 가지게 되면 대혁명이 일어나 왕이 노예로 바뀌는 등 모든 서열이 거꾸로 매겨지게 되어 달무티는 울상을 짓고, 하층민 사람들은 신이 나서 희비가 엇갈리게 되자 게임의 재미가 한층 더하게 되면서 모두들 웃고 난리가 났습니다. 전에 우리 집에서 게임 했을 때는 한밤중에 큰 소리로 웃고 소란스럽게 하자 옆집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나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냐며 쫓아 나와 이번에는 밖에서 아이들과 새로 만든 피크닉 장소에서 게임을 하니 이웃에게 폐 안 끼치고 맘껏 웃고 떠들었습니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노예였던 형제가 옆에 있던 형제와 카드를 몰래 바꿔 치기를 해 모반을 도모한 거 였네요. 모두들 그 사실을 알고 그 형제를 두고두고 놀렸습니다.

재미 있는 달무티 게임이 끝난 후 형제들과 오랜만에 한국에서 하던 노래방도 했습니다. 노래방이라고 해봤자 큰 스크린과 마이크와 음향이 받쳐주는 것은 아니고 휴대폰에서 원하는 곡을 검색해 함께 부르는 것인데 옛날에 자주 듣던 사이먼과 가펑클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존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등 오랜 팝송들을 모닥불을 피워 놓고 산을 바라보며 형제들과 함께 신이 나서 부르니 옛날 생각도 나고 웬만한 노래방이 부럽지 않네요.

여러 부부가 준비해 온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자 아내가 TV 스크린을 가져 왔습니다. 무얼 하는지 봤더니 제 50년 인생을 담은 슬라이드 쇼를 깜짝 선물로 준비해 보여주네요. 빛 바랜 누런 빛의 부모님 사진, 어릴 적 형제들과 함께 찍은 사진, 청년 때 대학로를 누비던 사진, 결혼 사진, 우리 아이들과, 형제들과 함께 한 귀한 추억들이 모두 담겨져 있었습니다. 아내는 사진 앨범도 함께 만들었는데 2년전 한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 아내 친정 집에 있던 사진 첩들을 모두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짐을 간소화하기 위해 많은 사진들을 버리고 필요한 사진들은 사진첩에서 떼어 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추억이 담긴 걸 그렇게 다 없애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내가 한마디 하자 그게 마음에 걸렸던지 저 몰래 사진들을 스캔해서 우리의 인생이 담긴 ‘SS PARK LIFE TOGETHER’란 이름으로 사진첩을 만들어 내 생일날 선물했습니다. 우리의 귀한 추억이 담긴 사진첩과 슬라이드쇼를 보면서 지난 50년간의 삶을 되돌아 봅니다.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었으면 살아가지 못했겠지요.

오늘은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처음 시작한 에바하르트 아놀드가 돌아가신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0년, 독일에서 개신교 신학자였던 에바하르트는1차 세계대전 후 유럽사회가 황폐화되고 혼란이 만연하던 시절, 침묵하는 제도권 교회에 실망하면서 대안을 찾아 37세의 나이에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베를린을 떠나 자네츠라는 외진 시골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예수님의 산상 수훈과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삶에 영감을 받아 적은 무리의 그리스도인들과 공동체를 시작합니다.

초기 자네츠 부르더호프 형제들
초기 자네츠 부르더호프 형제들

시작 초기에 브루더호프는 빠르게 성장해 식구가 백 명까지 늘었고 농장 운영과 자체 출판사의 책 판매 수입으로 생활을 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늘 쪼들렸는데, 공동체가 고아와 미혼모 등 어려운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놓은 것도 한 몫을 했습니다. 얼마 후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공동체를 박해하기 시작했는데 1933 나치가 공예품 판매를 금지시켜 생활고가 극심해졌습니다. 이 때 에바하르트의 나이는 50세 였습니다. 그는 50세 생일을 맞이하면서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오늘, 저는 제가 얼마나 능력이 부족한지 그리고 제 본성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에 얼마나 부적합한지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고작 16세 때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건만 저는 오히려 그분에게 방해가 되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연히 이루시길 바라셨을 수많은 일들이 저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우리 인간들 가운데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일들이 드러나고 강력히 증거 된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입니다.

저는 인간의 무력함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어떠한 일이 맡겨졌을 지라도 사람은 본질적으로 무력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능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적으로 무능력합니다. 심지어 지금 맡은 일을 감당하기에도 우리는 그저 무력할 뿐입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 단 하나의 벽돌도 끼어넣을 수 없습니다. 공동체가 세워졌을 때에도 그것을 보호할 능력이 우리에겐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대의를 위해 그 무엇도 헌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삶으로 부르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력함을 압니다. 우리, 특히 나이 든 형제들이 어떻게 우리가 전적으로 무능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는지 설명하기란 힘든 일입니다. 우리의 모든 능력이 어떻게 벗겨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능력이 제거되고, 허물어지고, 버려지게 됐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젊은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저는 그들 역시 자신의 능력이 온전히 허물어지는 경험을 하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은 쉽게 일어나지도 또 단번의 영웅적 결단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 일을 하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철저히 무능력해지는 것 그것은 바로 은혜의 시작입니다. 오직 우리의 능력이 허물어진 만큼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서 그분의 일을 이뤄 가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만일 우리 자신의 능력이 조금이라도 일어서면, 그와 동시에 성령과 하나님의 권위는 그만큼 물러납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가장 중요한 통찰이라 생각합니다 …”

에바하르트는 나치 정권에 대항하고 집으로 돌아 오는 중 넘어져 다리를 다치게 되는데 그로부터 2년후 병원에서 다리 수술을 받는 중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 다음 해에 브루더호프는 나치에 의해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쫓겨나게 되어 영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자신의 능력은 철저하게 허물어져야 한다는 그의 통찰은 같은 50세 생일을 맞는 내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말년의 에바하르트 아놀드
말년의 에바하르트 아놀드

얼마전 브루더호프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에바하르트가 1차 세계대전 전부터 1920년대 말까지 독일 전역을 순회하며 남긴 강연 메모와 1920년 초부터 세상을 떠난 1935년까지 공동체 식구들과 방문객을 대상으로 강의 했던 원고를 토대로 정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에 관한 그의 비전을 응축한 ‘하나님의 혁명’이란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고 독사 굴에 어린 아이들이 장난 쳐도 물지 않는,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나누고, 강한 자와 약한 자가 함께 돌보고, 노인과 어린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이루어지길 바라며

세상의 어떤 대혁명보다 고귀한 하나님의 혁명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https://www.plough.com/ko/topics/faith/discipleship/gods-revolution

위의 사이트에 가시면 ‘하나님의 혁명’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글 박성훈(미국 부르더호프 메이폴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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