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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삶도 죽음도 늙음도 젊음도 빛나라

등록 2020-10-26 09:21수정 2020-10-26 13:14

21세기 약사경을 만들다

전북 남원 지리산 실상사 경내. 사진 조현 기자
전북 남원 지리산 실상사 경내. 사진 조현 기자

은행나무와 감나무가 사이 좋게 빛나는 극락전 뜨락이 한가롭고 넉넉하다. 올 여름 장마 때문에 극락전 처마 아래가 많이 패였다. 노스님 한분이 자갈을 주워 고르지 못한 땅을 메꾸고 있다. 엄마와 함께 놀러 온 아이가 노스님에게 묻는다.

“뭐 하세요”

“보물 주워”

“돌멩이가 무슨 보물이예요”

“돌멩이가 필요할 땐 돌멩이가 보물이고,

똥이 필요할 땐 똥이 보물이고,

엄마아빠가 필요할 땐 엄마아빠가 보물이고,

아들딸이 필요할 땐 아들딸이 보물이지“

노스님의 말씀에 아이는 이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빙그레 웃는다. 화두와 깨달음은 늘 우리 곁에 그대로 빛난다.

허기진 사람에게는 밥이 부처다. 외롭고 지친 사람에게는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예수님이다.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부처다. 의사 부처님, 불교에 의사 부처님이 계신다. 몸과 마음이 아플 때 진단하고 치료해 주는 뭇생명의 주치의, 우리는 그 의사를 ‘약사여래 부처님’이라 부른다. 나무 동방만월세계 약사유리광 여래불!

실상사에는 기도처로 유명한 약사전이 있다. 중심 전각인 보광전 오른 쪽에 있다. 약사전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약사여래부처님이 계신다. 그 시대에 철로 조성했으니 우리는 철불이라 한다. 약사여래 철불님은 그 풍모가 위엄이 있으면서 자애롭다. 우리들의 모든 병고를 해소해 줄 것 같은 든든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부처님의 이마의 점이 지리산 천왕봉과 일직선으로 통하고 있다. 그래서 기공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실상사 약사전에서 철불님을 향하여 두 손바닥을 내밀면서 기를 받고 있다. 이렇게 21세기 부처님들은 뭇생명들의 다양한 소원에 응하기 위하여 매우 바쁘다.

실상사 대중들이 21세기 약사경을 읊고있다. 사진 조현기자
실상사 대중들이 21세기 약사경을 읊고있다. 사진 조현기자

대승경전인 <약사경>에 의하면, 약사여래는 우주의 동방세계를 관장하고 있으며 열두가지 큰 서원을 세워 뭇생명들의 병고를 치유하고 계신다. 신체의 병고, 마음의 병고, 위정자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고통, 빈부격차에 서러워하는 고통들을 살피고 치유한다. 그러니 우리가 아플 때 찾아가는 부처이고, 아픔의 소리를 듣고 찾아오시는 주치의 부처님이다.

묻는다. 경전에 있는 그 많은 부처는 어디에 계신가? 먼 과거세에 계셨는가? 미래세에 오시려고 어느 곳에 계시는가? 아니면 우리가 사는 곳이 아닌, 우리 발길이 닿을 수 없는, 먼먼 곳에 계시는가? 답한다. 만약 그런 시간에, 그런 공간에, 부처가 계신다면 이미 부처가 아니다. 지금이고 여기이다. 지금 여기에 계셔야 부처이다.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듯이, 아픈 소리를 듣고 오시는 분이 부처이지 않는가. 그러므로 약사여래는 지금, 여기, 우리들의 주치의가 분명하다.

지금! 여기! 우리들의 부처를 모시기 위해 약사여래께 초청장을 쓰기로 했다. 대승경전인 <약사경>을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재해석하고 기도문의 체제로 새로운 경을 만들어 약사여래를 초청하기로 했다. 그 초청장의 제목은 <21세기 약사경>이다.

<21세기 약사경>은 현재 모든 사찰에서 독송하고 있는 <천수경>의 체제를 따랐다. 취지는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 전환이다. 경의 내용은 현재 우리 사회가 고통 받고 있는 실상을 직시하고, 그 고통을 해결하는 발원을 담고 있다.

먼저 경의 시작은 약사여래 부처님을 찬탄하고 있다.

길을 잃어 방황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 귀의 하옵니다.

질병으로 신음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 귀의 하옵니다.

가난으로 고생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 귀의 하옵니다.

증오심에 시달리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 귀의 하옵니다.

억압당해 절규하는 뭇생명을 돌보시는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 귀의 하옵니다.

실상사작은학교. 사진 조현 기자
실상사작은학교. 사진 조현 기자

지금, 여기, 우리 사회의 실상을 직시하고 보듬고 위로하는 약사여래의 공덕을 찬탄하고 귀의하며 간절한 참회를 한다. 그리고 왜 우리가 문명 전환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를 말한다. ‘약사여래 치유광명 대다라니’를 여기에 옮겨 본다.

가는 이여 가는 이여 광명의 길 가는 이여

어둠을 떨쳐내고 광명의 길 가는 이여

보는 이여 보는 이여 이 세상의 모든 존재

그물코로 보는 이여

시방세계 부처님을 뵈옵듯이

뭇생명을 부처로 보는 이여

아는 이여 아는 이여 그대와 나 둘 아님을 아는 이여

너와 내가 한몸임을 아는 이여

하나 속에 여럿 있고 여럿 속에 하나 있음 아는 이여

한순간이 영원이요 영원함이 순간임을 아는 이여

온 세상의 순간순간 하나하나 저마다가 소중함을 아는 이여

이 다라니는 화엄의 세계관을 풀이한 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탄생하거나 작용할 수 없다. 서로의 힘을 빌려서 탄생하고 활동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밥은, 밥 그 자체로 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땅과 바람과 비와 해와 농부와 공양주의 도움으로 밥이 되고 우리 몸으로 들어온다. 그러니 하나 속에 여럿이 있는 것이다. 너와 내가 그물코로 연결된 한 몸의 다른 몸이고 다른 몸의 한 몸인 것이다. 이치가 이러하니 어찌 상대를 은혜로 바라보고 서로를 돕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우리 문명사회는 과연 이런 취지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다시 묻는다. 우리 문명은 죽임의 문명인가, 살림의 문명인가를 묻는다. 배제와 혐오의 문명인가, 협력과 사랑의 문명인가를 진심으로 묻는다. 나만/우리들만 살자는 문명은 미혹의 문명이다. 나와 너 모두가 살자는 문명은 깨달음의 문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21세기 약사여래 큰 서원’을 말한다.

21세기 큰 서원의 주인공인 대자대비 약사여래 부처님께 지성발원 하옵니다.

삶만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죽음도 빛나고 삶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 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젊음만을 좋아하고 늙어감을 싫어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늙음도 빛나고 젊음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 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남성만을 존중하고 여성들을 비하하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여성도 빛나고 남성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 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인간만을 사랑하고 자연환경 괴롭히는 미혹문명 내려놓고

자연도 빛나고 인간도 빛나는 깨달음의 밝은 문명 피어나게 하옵소서

함께 일하는 실상사 대중들
함께 일하는 실상사 대중들

이렇게 실상사의 출가불자와 재가불자들이 모여 이 시대의 대립하고 배척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모두 호출했다. 불러내어 함께 가자고 발원한다. 내려놓고 함께 가자고 간절하게 기도한다. 나와 너, 부자와 가난한 이, 소유와 자족, 경쟁과 협력, 서울과 지역사회, 절집과 이웃 마을, 도시와 농촌, 침묵과 대화, 특별함과 평범함,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빛나기를 호소한다. 왜 그런가? 이들은 본디 반목의 존재가 아니라 화목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자리, 떠나온 자리로 돌아가면 서로가 빛나고 빛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어 반목을 넘어 화목으로 가자고 기도한다.

전쟁테러 생명파괴 어리석은 재앙이니

무기없고 폭력없는 세계평화 원합니다.

국가민족 인종계급 이모두가 망념이니

지구촌의 가족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기업노동 반목하면 모두에게 해로우니

노동자와 사용자가 함께 가길 원합니다.

성현들은 한결같이 사랑평화 원했으니

이웃종교 존중하는 종교평화 원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일등주의 멈추고서

함께사는 상생문화 가꿔지길 원합니다.

이렇게 <21세기 약사경>을 독송하면 어느새 가슴이 뜨거워진다. 읽어가면서 내내 뜨거움과 부끄러움이 솟는다. 그리고 답답한 기운이 사라지고 청량하고 강인한 힘이 솟는다. 이게 바로 치유다. 어느새 내가 치유되고 건강한 몸이 된다.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니 약사여래가 내 가슴에 오시고 심신의 병고가 치유된다. 사회의 병고가 사라지는 광명을 느낀다. 경을 읽어가며 미혹의 실상을 직시하니 그 자리에서 어둠이 사라지고 깨달음의 광명이 드러난다. 깨달음은, 부처는, 지금, 여기, 우리들임을 깨닫는다. 나무 약사여래불!

미혹의 문명은 반목이다. 반목이란 글자 그대로 서로를 반대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참으로 슬픈 착각이다. 전도몽상이다. 깨달음의 문명은 그리 거창하거나 어려운 곳에 있지 않다. 존재의 실상, 현장의 실상을 잘 살펴보면, 모든 존재는 서로의 도움과 은혜로 탄생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서로가 빛나는 존재이다. 이게 생명의 질서이다. 생명의 질서가 극락정토이다. 화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생명의 질서이고 실상이다. 자! 실상사의 약사여래는 오늘도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서 있는 지리산을 바로 보며 반목을 넘어 화목으로 가자며 나직한 목소리로 동시 한 편을 읽어 준다.

‘엄마’의 반대편은

‘아빠’래요.

아녜요 아냐

아빤 엄마의

참 좋은 짝인걸요

‘남’의 반대편은

‘북’이래요

아녜요 아냐

북은 남의

참 좋은 짝인걸요

‘하늘’의 반대편은

‘땅’이래요

아녜요 아냐

땅은 하늘의

참 좋은 짝인걸요

-우리 가족,

우리 나라,

우리 별 지구·····,

자꾸자꾸 불어나는

참 좋은 짝인걸요. <손동연 시인의 ‘짝1’>

법인스님(실상사 한주 &실상사작은학교 철학선생님 &전 조계종교육원 교육부장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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