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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함께 걸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등록 2020-08-23 17:01수정 2020-08-23 17:12

내 꿈이 걷는다

순례중인 순천사랑어린학교 학생들
순례중인 순천사랑어린학교 학생들

걷지 않는 꿈은 고인 물과 같아서

썩기 마련이다

순천에 가면 사랑어린학교가 있다. 학교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들이 있고 멀지 않은 곳에 바다도 있다. 그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걷는 수업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2013년 겨울, 그 학교 아이들과 함께 ‘남도삼백리’를 걸었다. 대안학교라고 해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다닐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나도 아이들이 있다면 이런 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묵묵히 순례를 마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나중에 노래를 만들어 선물을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줄지어 걷지 않았고 빨리 걷지도 않았다. 내가 국토순례를 했을 때는 줄지어 빨리 걸었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의 걷는 모습에서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꿈이라는 것도 바라보는 것만큼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하늘엔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꿈을 지키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날마다 별을 바라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걷는 것이다. 별을 바라본다는 것은 꿈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으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꿈을 지킬 수 있는 것이며 걷는다는 것은 마음속에 숨어있는 욕심을 찾아내어 몸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므로 온갖 오염으로부터 꿈을 보호할 수 있다. 게다가 오래 걸으면 잡생각이 사라져 잘 지워지지 않던 마음의 때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설령 꿈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두 가지를 실천하면 새잎이 돋듯 꿈이 돋는다.

꿈을 지녔다고 해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걷지 않는 꿈은 고인 물과 같아서 썩기 마련이고 그런 경우 꿈을 잊었다거나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 핑계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꿈이 없는데도 꿈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랬다. 꿈도 없으면서 꿈이 있는 척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지금 내가 쓸쓸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억지로 꿈을 갖으려 하지 말라고.

꿈은 들꽃처럼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어서 그냥 지나치면 볼 수 없지만 오래 걷다 보면 들꽃이 자기를 쳐다봐 달라고 방긋 웃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꿈은 오래 걸을수록 좋고 짧게 걸어도 안 걸은 것보다는 낫다. 내가 걷는 것만큼 꿈도 걷는 거니까. 목적지에 도착하면 무언가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생기지만 비움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었다는 성취감에만 빠진다면 헛일이다. 걷는다는 건 어떤 뜻을 이루려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음을 비우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 김민해 교장선생님과 아이들이 해변을 따라 학교로 등교하고 있다.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 김민해 교장선생님과 아이들이 해변을 따라 학교로 등교하고 있다.

걷자. 걸어서 마음을 비워 보자. 걷는 길에 꽃이 피어있으면 더 좋겠다. 꽃 내음 가득한 길을 걸으면 시든 꿈도 다시 살아날 테고 지저분한 마음도 깨끗해질 테니. 걸으면 꿈이 보이고 걷지 않으면 먼지가 보인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 것처럼 꿈이라는 것도 걸어야 탁해 보이지 않는다. 옥도 갈아야 빛이 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가끔 자신도 모르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꿈에 욕심을 불어넣는 것이 그것이다. 어릴 때 풍선을 불다가 터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풍선을 크게 불려다가 그리된 것이었다. 아이들은 다 그런 거라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이들에게도 나름대로 욕심은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꿈에 욕심을 불어넣으면 터지기 쉬우니 걷고 또 걸어서 욕심을 밀어내야 한다.

비행기가 하늘을 제 맘대로 나는 것 같지만 다 정해진 길로 가는 것이다. 그것에 견주면 사람은 언제든지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다. 문제는 그 가고 싶은 길이 가서는 안 될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스승의 말씀이 곧 나침판이었지만 요즘 세상에 어느 아이들이 스승의 말씀을 나침판으로 생각하겠는가. 그래서 길이 아닌 길로 가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나라도 스승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나라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모르겠고 이제는 알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인생의 나침판은 꿈이 아닐까?

멀고 먼 인생길에서 늘그막까지 꿈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나를 떠나지 않고 먼 길을 함께 걸어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벗인가. 그러므로 오늘 내가 걷는 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라 꿈을 위함이다. 이제 나는 꿈을 이루지 않을 것이다. 꿈을 이루는 순간 꿈이 떠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난 그저 꿈이라는 벗과 함께 머나먼 구만리 인생길을 천천히 걷고 싶을 뿐이다. 아주 천천히….

바람에 꽃들이 춤추네

내 꿈에 꽃 내음 스며드네

참 아름다운 내 나라

내 꿈이 걷는다, 걷는다

둥다리둥당 둥다리둥

둥다리둥다리 둥둥둥

고마운 빗줄기 내려와

내 맘에 먼지를 씻어주네

참 아름다운 내 나라

내 꿈이 걷는다, 걷는다

둥다리둥당 둥다리둥

둥다리둥다리 둥둥둥

비 그친 하늘에 무지개

어둡던 마음에 햇살이

참 아름다운 내나라

내 꿈이 걷는다, 걷는다.

둥다리둥당 둥다리둥

둥다리둥다리 둥둥둥

꽃길 따라서 구만리

꿈길 따라서 구만리

참 아름다운 내 나라

내 꿈이 걷는다, 걷는다.

둥다리둥당 둥다리둥

둥다리둥다리 둥둥둥

「내 꿈이 걷는다」, 2014

글 작사가 한돌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학교 김민해 목사 펴내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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