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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외로운 별들아, 나는 너를 믿는다

등록 2020-06-16 10:44수정 2020-06-16 11:06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장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장면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가

떠도는 별들에게 거름이 될 수 있다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로 치자면 대충 13살부터 19살 정도가 되겠지요. 저는 그 소중한 시절을 너무 허무하게 보냈습니다. 무엇에 대한 간절함도 없었고 그냥 허황된 꿈속을 헤매다가 꿈도 찾지 못한 채 설익은 어른이 되고 말았습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그 시절에 약간의 자폐 증세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금도 가끔 그 증세가 나타나긴 하지만- 동무들과 대화를 하면 제 말만 고집했고 책을 읽으려고 하면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어쩌다 상상 속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우리나라를 괴롭히는 강대국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초능력을 발휘하기도 하였고, 어떤 때는 듬직한 여전사들이 등장하여 악마의 늪에 빠진 저를 구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평소에도 저는 또래 여자아이들보다 나이 많은 누나들을 더 그리워했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여자들과 눈도 못 맞추고 여학교를 지나갈 때면 고개를 들지도 못했지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돌연변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머리통이 얼마나 큰지 동네 사람들이 머리 큰 아이를 보러 올 정도였으니까요. 백일이 지난 아이는 옹알이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기만 했습니다. 제 뒷머리가 납작한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다행히 공부는 잘 따라가는 편이었지만 가끔 엉뚱한 짓을 해서 아버지 어머니한테 걱정을 끼쳐드리곤 했습니다. 산에 걸린 해를 잡으려고 산에 갔다가 길을 잃어버린 적도 있었고 비 맞는 것이 즐거워서 비를 흠뻑 맞고 돌아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이었습니다. 학교에 스케이트부가 생겼는데 저는 스케이트를 탈 줄도 모르면서 스케이트부에 들어갔습니다. 스케이트를 타고 싶어서 그랬다기보다는 동무들한테 관심을 끌기 위해서 그랬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대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눈물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열중쉬어 자세로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운동을 1,000번 이상을 해야 했고 허리를 펴지 않고 400m 얼음판을 5바퀴를 돌아야 했습니다. 허리를 펴려고 하면 코치 선생님이 얼른 달려와서 지휘봉으로 엉덩이를 때렸지요. 저는 혹독한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 두려고 했으나 무서운 코치 선생님은 그때마다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다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정말이지, 관심을 끌려고 스케이트부에 들어갔다가 고생만 실컷 했습니다. 다행히 3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전학을 가는 바람에 스케이트를 그만 둘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농구부에 들어갔습니다. 원래는 야구부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야구부가 없어서 농구부를 택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농구도 할 줄 모르면서 농구부에 들어가 맨날 마루 청소만 했습니다. 농구부에 들어간 것도 농구를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멋진 농구 선수가 되려는 마음이 앞섰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동작이 굼뜨다는 이유로 농구 선수는커녕 마루 청소만 하다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제 마음속에 괴이한 벌레가 들어앉은 것 같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정신과 의원’도 없었고 ‘자폐’라는 말도 없었으니 ‘관심병’이라 한들 그것을 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저도 모르게 옷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청바지를 입고 폼 잡고 싶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 달라는 말은 못했지만 내 마음을 눈치 챈 어머니가 몇 개월 뒤 청바지를 구해왔지요. 저는 청바지를 입고 아이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도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혼자만 입었으면 아이들한테 자랑도 하고 그럴 텐데 모두 다 입고 있으니까 모처럼 입은 청바지가 빛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청바지가 빛나지 않았다는 건 제 생각이고 아이들은 청바지 상표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청바지를 입고 있느냐에 따라서 등급이 정해지는 거지요. 제 청바지 상표는 아예 등급에 끼지도 못했습니다.

어느 날 영어 회화를 가르치는 미국 여자 선생님이 나타났습니다. 곧바로 영어 회화 시간이 생겼고 아이들은 영어 회화보다는 미국 여자 선생님한테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가을에 영어 웅변대회가 있었는데 저는 8명 가운데 8등을 했지요. 아이들은 저보고 용감하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영어도 못하는 놈이 웅변대회에 나갔다고 비웃었습니다. 심사를 맡은 미국 선생님도 영어 발음이 엉망인 저를 보고 묘한 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예술제도 그랬습니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저에게 나가보라고 부추긴 건데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동의하는 걸로 간주되어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지요. 그렇게 되고 보니 막상 예술제에 나가서 무얼 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동무 아버지가 무교동에 있는 살롱에서 기타를 친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거기 가서 기타를 배웠습니다. 거기가 뭘 하는 곳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기타를 배우는 낮 시간에는 손님들이 없었습니다.

글쓴이인 <홀로 아리랑>의 작사가 한돌
글쓴이인 <홀로 아리랑>의 작사가 한돌
그런데 제가 갈 때마다 나타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미스 윤이라고 하는 종업원이었는데 제가 가면 음료수를 갖다 주었고 제 앞에 앉아서 기타 치는 것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풍기는 분 냄새 때문에 기타를 제대로 배울 수가 없는 거예요. 야릇한 분 냄새가 포근하기도 하였고 어쩌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몸이 굳어져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젖가슴이 유난히 커 보였던 그녀는 언젠가 제 상상 속에 나타났던 듬직한 여전사를 연상케 했습니다. 어느날 그녀가 저를 데리고 경양식 집에 가서 햄버그스테이크도 사 주고 만년필도 선물했습니다. 처음 받아 보는 선물과 처음 먹어 보는 음식에 저는 크게 감동을 하여 몸 둘 바를 몰랐지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음식을 꿀꺽꿀꺽 삼키는 제 모습을 보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얘, 천천히 씹어서 먹어야지 체하겠다.”

세상에서 저를 이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는 사람은 미스 윤이 처음이었습니다. 누나가 없는 저는 미스 윤을 누나로 생각하게 되었고 동생이 그리운 미스 윤은 저를 남동생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기타를 배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미스 윤을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미스 윤한테서 풍기는 따뜻한 분 냄새가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디어 예술제 하는 날이 왔습니다. 오전에는 전교생 앞에서 예행연습 겸 공연을 했습니다. 공연은 고등학교 그룹사운드가 중심이었고 들러리로는 중학교 음악 선생님이 ‘성불사의 밤’을,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 색소폰으로 ‘Danny Boy’를, 중학교에서는 성악 하는 동무가 ‘금발의 제니’를, 저는 ‘Yesterday’를 불렀습니다. 제가 노래를 마쳤을 때 반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박수를 치며 앙코르를 외쳐 댔습니다. 순간 저는 제가 정말 잘한 줄 알고 예정에 없던 ‘500 miles’를 불렀지요. 저는 노래를 마치고 흐뭇하게 퇴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연출 선생님이 다짜고짜 제 뺨을 후려쳤습니다. 제멋대로 순서에 없던 노래를 했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장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장면
오후 공연에는 가족들이나 다른 학교 학생들이 보러 왔습니다. 저는 무대 뒤에서 커튼 사이로 관객들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미스 윤 누나가 꽃다발을 안고 맨 앞줄에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나가려고 하는데 연출 선생님이 못 나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노래를 못해서 안 되겠다.”

눈앞이 캄캄했지요. 그럴 거면 미리 말해 주지 갑자기 못 나가게 하면 어쩌란 말입니까. 오전 공연 때 연출 선생님이 교복을 단정히 입어야 한다면서 호크를 채우라고 했는데 저는 노래하기가 답답하여 호크를 채우지 않고 맨 위에 단추까지 풀고 노래를 했습니다. 그것 때문이었을까요? 말로는 제가 노래를 못해서 그런 거라지만 사실은 관객들 앞에서 제가 불량하게 보인다는 이유로 그랬을 겁니다. 아니면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노래 한 곡을 더 불렀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아무튼 그때 그 연출 선생님이 얼마나 미웠던지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미운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미스 윤 누나가 건네주는 꽃다발을 받기는 했지만 제 모습이 너무 처량했습니다. 제가 공부만 조금 잘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공부도 못하는 놈이 노래까지 못했으니 제가 생각해도 저는 정말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놈이었습니다. 그래도 미스 윤 누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저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지요. 미스 윤 누나가 제 팔짱을 끼고 괜찮다고 말해 주는데 갑자기 콧구멍이 벌렁거리면서 뜨거운 눈물이 고였습니다.

졸업하는 날이었습니다. 다른 동무들은 가족들이 와서 축하해 주는데 제 가족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졸업식 행사를 끝내고 동무들과 사진을 찍는데 제가 외로워 보였던지 짝꿍 어머니가 자기 아들 목에 걸려있던 꽃다발을 제 목에 걸어 주었습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은데 제 모습이 외롭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때 어떤 아이가 저에게 밀가루를 뿌리고 달아났습니다. 도대체 밀가루는 왜 뿌리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교문을 나서면서 잠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저도 모르게 명동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미스 윤 누나가 햄버그스테이크를 사준 경양식 집이 이 근처 어디였는데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 저도 모르게 미스 윤 누나가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를 힐끗힐끗 쳐다보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광화문을 지날 때도 사람들이 저를 쳐다본 것 같았습니다.

영화 <친구>의 한장면
영화 <친구>의 한장면
‘혹시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역시 명동은 다른 동네와 달리 사람도 많이 지나가고 화려했습니다. 명동 성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어느 쇼윈도 안에 있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여자 옷을 파는 가게였는데 그 여자는 저를 잡아끄는 신비한 마력이 있었습니다. 저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여자 앞으로 다가갔지요. 갑자기 추운 마음이 따뜻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제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는지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마네킹이 아니었다면 저는 쳐다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저는 마네킹이 너무 고마워서 저도 모르게 마네킹한테 손을 뻗었습니다. 유리창이 손에 닿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밀가루가 묻어있는 교복에 동그란 꽃다발을 목에 걸고 있는 제 모습이 유리창에 비친 것입니다. 저는 제 목에 꽃다발이 걸려있다는 것도 모르고 학교에서 명동까지 걸었던 거죠.

고등학교 1학년 때 저희 집은 남대문에 있었고 학교는 효자동에 있었습니다. 학교 갈 때는 버스를 이용했지만 집에 올 때는 걸어서 다녔지요. 어느 날 시흥에 살고 있는 동무네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버스를 오래 타고 가는 것이 어찌나 부럽던지 저희 집도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남산 부근 어딘가에서 살고 있던 동무네 집은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자그마한 판잣집이었는데 방 안에서 풍기는 곰팡내와 따뜻한 분위기가 어찌나 포근하고 좋은지 저도 그런 집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말했지요.

“아버지 우리도 판잣집에서 살면 안 될까요?”

저는 아버지한테 뒈지게 맞았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사업이 망해서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아버지 마음을 긁어놨으니 저는 두들겨 맞아도 싼 놈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제가 한심했던지, 어디서 저런 돌연변이가 나왔을까 하면서 한숨을 푹푹 쉬었습니다. 저는 가난이 뭔지 몰랐고 감정이 꽤 무딘 편이었습니다.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태연했고 슬픔을 느끼면서도 태연했고 심지어는 집에서 기르던 개가 하늘나라로 갔는데도 3년이나 지나서야 그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수학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워서 어머니한테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제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학원비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처음 가 본 학원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저자가 직접 강의를 했는데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300명은 족히 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열심히 선생님 강의를 듣는데 저는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한테는 미안했지만 저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학원을 그만두었습니다.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집에 가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다른 아이들 책가방은 뚱뚱한데 제 것은 며칠을 굶었는지 홀쭉하기만 했습니다. 저는 제 가방한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루는 YMCA 강당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습니다. YMCA에 소속된 동아리가 여럿 있었는데 동아리마다 장기자랑을 하는 일종의 축제 같은 행사가 있었지요. 저는 Mary Hopkins가 부른 ‘Those were the days’와 Dave Clark Five가 부른 ‘Because’를 불렀습니다. 예전에 비해서 기타는 좀 늘었으나 노래는 여전히 잘 부르지 못했지요. 그런데도 예상과 달리 박수를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제가 정말 잘한 줄 알고 우쭐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저희 학교 아이들이 많이 와서 박수를 쳐준 것이었습니다.

영화 <고교 얄개>의 한장면
영화 <고교 얄개>의 한장면
며칠 뒤 보슬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우산도 없이 YMCA에서 광화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빵집에서 여학생 한 명이 튀어나와 저를 붙잡고 빵집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빵집 안에는 또 다른 여학생이 앉아 있었는데 저를 앞에 앉혀놓고는 번갈아가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야, 너 그날 노래 되게 잘하더라.”

“기타는 언제부터 배운 거야?”

저는 얼굴을 붉히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본 적 있지만 그 아이들이 유명한 왈가닥이라는 건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저하고 친한 것처럼 계속해서 말을 했습니다. 얼떨결에 끌려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 아이들과 눈도 맞추지 못한 저는 빵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빵을 다 먹은 여자 아이들이 빵 값 좀 내라는 말을 남기고 가 버렸습니다. 꼼짝없이 빵집에 갇힌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결국 주인한테 사정 얘기를 하고 내일 빵값을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주인아주머니는 저를 믿어 주었고 친절한 여자들을 조심하라는 말까지 해 주었습니다. 비를 맞고 걸으면서 생각했는데 생각할수록 어찌나 부아가 나는지 욕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별 거지 같은 년들을 다 보겠네.”

드디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다른 동무들은 대학 가느라고 뚱뚱한 가방을 들고 열심히 학교에 다니는데 저는 홀쭉한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빈둥대기만 하였습니다. 학교에 왜 다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방황할 실력도 되지 못했습니다. 꿈도 없고 대학 갈 실력도 없고 그야말로 멍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냈지요. 예비고사 치르는 날 다른 아이들은 열심히 문제를 푸는 데 저는 문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얼마 뒤 드디어 저에게 올 것이 오고 말았습니다. 전교생 720명 가운데 3명이 예비고사에 떨어졌는데 제가 거기에 뽑힌 것이었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저는 계속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딱히 갈 데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금지구역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좋은 대학 가려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저는 아이들한테 방해만 될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교단에 올라가 아이들한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런 말은 안 해도 되는데 괜히 말을 꺼내는 바람에 예비고사에 떨어진 사실을 아이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졸업을 하면 뭔가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막상 졸업을 하고 나니까 눈앞이 캄캄하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면서 한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너무 한심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궤도 이탈을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졸업하고 나니까 우주의 미아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새삼스럽게 학교가 그리웠습니다. 유일하게 저를 받아 준 곳이 학교였는데 졸업한 뒤에는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지난날들이 후회가 되었지만 이제 와서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미스 윤 누나의 분 냄새가 그리워졌습니다. 터벅터벅 걸어 무교동에 갔는데 살롱은 없어지고 미스 윤 누나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악마의 늪에서 저를 구해 준 여전사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장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장면
떠도는 별님들에게!

떠도는 별님들이여! 한번쯤은 눈을 감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어보십시오. 물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아름답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로 흐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어딘가에 갇혀 있습니까? 만약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떤 형태로든 그곳에서 빠져나오길 바랍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소리가 나지 않고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건 썩는다는 겁니다. 고인물이 홍수를 만나 강물에 합류하듯 자신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흙탕물이라도 흘러야 합니다. 흘러서 바다까지 가야 합니다. 바다까지 가는 길이 바로 우리의 궤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궤도를 벗어나면 고인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멀리서 보면 떠도는 별이 자유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불쌍하고 초라하고 볼품이 없습니다. 왜냐고요? 떠도는 별은 고인물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고인물이 소리가 없듯이 궤도에서 벗어난 별도 빛나지 않는 거죠. 빛나지 않으니 아무도 그 별을 알아볼 수 없는 거지요. 저를 보십시오. 저는 아직도 떠돌고 있습니다. 허황된 삶을 살았던 지난날들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자식들 앞에서조차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을 허무하게 보냈습니다. 너무 허무하게 보내서 추억도 없습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엇보다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오래 살아 보니 공부가 가장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 쉬운 공부를 하지 않아서 제가 지금 이렇게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가끔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한테 불효를 했습니다.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잘 할 수 있을 텐데…. 저의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와 달리 무뚝뚝한 편이었지요. 다정한 말은커녕 쓰다듬고 만져주는 일도 없었지요. 하지만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요. 부모님 다리를 주물러 주고 맛있는 음식을 사 드리는 것이 효도가 아닙니다. 자기한테 주어진 일(공부) 잘하고 꿈을 향해 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제가 저한테 물어보았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부모님한테 효도를 해 본 적이 있느냐고요. 그러고 보니 저는 부모한테 사랑받기만 원했지 제가 부모를 사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떠도는 별님들이여! 더 이상 떠돌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십시오. 어머니만큼 따뜻한 고향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저는 후회하고 있습니다. 돌아갈 고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하늘나라로 가셨거든요.

영화 <쎄시봉>의 한장면
영화 <쎄시봉>의 한장면
저는 어릴 때부터 따뜻한 사랑이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관심 받기를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스케이트부에 들어간 것도 그렇고 농구부에도 들어간 것도, 노래도 잘 부르지 못하면서 예술제에 나간 것도, 영어도 못하면서 영어 웅변대회에 나간 것도, 선생님한테 칭찬이라도 받아 보려고 시를 쓴 것도 알고 보면 다 관심을 받아보려고 그랬던 겁니다. 한편으로는 따뜻한 사랑이 그리워서 살롱에서 일하는 미스 윤 누나를 좋아했고 쇼윈도 안에서 따뜻함을 전해 주던 마네킹을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 시절의 제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한밤중에 서소문 고가도로 난간에 걸터앉아서 동무와 함께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객기를 부리다가 경찰한테 잡혀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선비가 되고 싶어서 소주 한 병 사가지고 경복궁에 들어가 폼을 잡아 보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그 소중한 학창 시절을 관심 타령으로 허송세월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기타를 배웠을 때도 그랬습니다. 간절함이 있었다면 기타를 잘 배울 수도 있었을 텐데 저는 그저 관심을 끌기 위해서 기타를 배웠던 겁니다. 다 허영이었지요. 만약에 그때 간절함으로 기타를 배웠더라면 지금쯤 꿈꾸던 기타리스트가 되었을 겁니다. 여러분들은 저처럼 살지 말고 부디 간절함으로 꿈을 지피십시오. 겉멋으로 꿈을 꾼다면 꿈이 지펴지지도 않습니다. 서투른 방황 하지 말고, 객기 부리지 말고, 부모를 탓하지 말고 혹시 관심을 받고 싶다면 그냥 자기 일에 충실하십시오. 그러면 저절로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목련을 싫어합니다. 다른 꽃들보다 먼저 사랑을 받으려고 일찍 피어났다가 추하게 떨어지는 모습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목련보다 더 추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의 부끄러운 얘기가 여러분들에게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관심병! 그게 인생의 푸른 잎을 갉아먹는 벌레입니다. 자기 일에 충실하면 저절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건데 저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열매만 따먹으려고 했지요. 나이 들어 뒤늦게 깨닫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 같은 떠돌이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을. 그러니 소중한 시절을 ‘관심’이라는 벌레 때문에 허송세월하지 마십시오. 관심이라는 것에 얽매이게 되면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떠도는 별이 되려고 일부러 궤도 이탈을 하였습니다. 떠도는 별이 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줄 줄 알았던 거죠. 하지만 그건 제 생각이고 실제로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한번 궤도에서 벗어나니까 되돌아가기도 힘들었습니다. 태양을 구심점으로 궤도를 도는 지구처럼 저도 제 자신을 바라보며 살았어야 했는데 어리석게도 구심점 없는 삶을 살고 말았습니다. 그깟 관심 한번 받아보려고 인생을 낭비했으니 이처럼 딱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되려고 사범대를 지원해서 떨어졌고 갑자기 화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미대를 지원했다가 떨어졌습니다. 왜 떨어졌는지 아십니까? 실력이 모자라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간절함이 없고 겉멋만 살아서 떨어진 겁니다. 꾸준히 나를 가꾸고 다듬었으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마음에 분칠만 하고 살았으니 허무한 인생이 된 겁니다. 인생은 꾸미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것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어떤 집에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건데 그때는 그걸 몰랐습니다. 꿈을 이룬 인생보다 꿈을 버리지 않는 인생이 더 값지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무엇을 배우든 남한테 보여 주려고 배우지 마십시오. 남을 의식하면 기교를 배우게 되고 기교에 치중하다 보면 기본을 놓치게 됩니다. 악기를 배우고 싶거든 악기와 한 몸이 되도록 피나는 노력을 하십시오. 그리하면 언젠가는 여러분이 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 소리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찾아올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찾아오길 바란다면 더 이상 좋은 소리를 얻지 못하지요. 문학을 일구려는 사람 역시 문학과 한 몸이 되도록 갈고 닦으십시오. 그리하면 어느 날 문학이 여러분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 역시 남을 의식하게 되면 갈고 닦아도 헛수고가 될 것이니 결코 여러분의 재능을 함부로 믿지 마십시오.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멋은 꿈을 해치지요. 천만 관객이 봤다고 해서 명작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고 해서 존경받는 배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옷이라는 것도 그래요. 남한테 잘 보이려고 혹은 관심을 끌려고 옷을 입지 마십시오. 아무리 싸구려 옷이라도 소중히 입으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유행에 말려들지 말고 나한테 편안한 옷을 입도록 하십시오.

공부도 그렇습니다. 일등하려고 공부하지 말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십시오.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성적이 나쁜 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실용음악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모두 다 가수가 되고 연주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미대를 졸업했다고 해서 모두 다 화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원하는 대학에 못 갔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좌절을 한다는 건 진정성이 없다는 겁니다. 만약 뜻을 이루고 싶다면 먼저 나한테 간절함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십시오. 간절함이 있으면 대학은 들러리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떠도는 별은 되지 마십시오. 별이 빛나는 것은 스스로 빛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서 궤도를 찾아 하고 싶은 공부를 하십시오.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됩니다. 떠도는 별님들이여! 더 이상 어둠 속을 헤매는 어리광별이 되지 말고 나중에 뜻을 이루어 우주를 여행하는 멋진 나그네별이 되길 바랍니다.

나는 너를 믿는다

해맑은 너의 눈빛을

나는 너를 사랑한다

꿈꾸는 너의 마음을

서투른 방황은 하지 말아라

아, 그것은 너무 외로워

너무 외로워

추운 마음속에 꿈을 지피자

여윈 너의 마음에 우우우

-「떠도는 별」, 1979

*<홀로 아리랑>의 작사·작곡가 한돌 씀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 등이 만드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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