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일 년 동안 고대하고 고대하던 그날이 왔습니다.
“빠진 것 없이 다 챙겼니?”
“네”
“자 그럼 유빈이가 기도하고 떠나자.”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 가는 길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물고기 많이 잡게 해주세요. 아멘”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요. 이병에 가득히 넣어 가지고서 랄랄랄라….
해마다 5월이면 형제들의 손이 근질거려 옵니다. 스트라이퍼(줄무늬 농어)가 대서양에서 허드슨 강가로 알을 낳으러 올라 오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허드슨 강가로 꿈에도 그리던 스트라이퍼를 잡으러 가는 날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공동체는 허드슨 강가에서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허드슨 강가 언덕 위에 도착 하자마자 차에서 무거운 낚시 장비와 의자들을 챙겨 들고 5분정도 걸어 내려가니 연둣빛 싱그러운 잎으로 덮여 있는 나무들이 울창한 허드슨 골짜기 사이로 앞이 탁 틔어 있는 허드슨 강이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스트라이퍼를 잡기 위해선 미끼가 있어야 하는데 스트라이퍼는 청어를 좋아합니다. 청어 역시 산란하러 허드슨 강가로 올라오는데 얼마 전 한 강가 지류에 있는 댐을 없애자 더 많은 청어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먼저 청어가 강가로 올라오면 스트라이퍼는 청어를 먹으면서 따라 올라 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청어로 과메기를 만들어 먹고 중세 수도원에서는 사순절 기간 육류를 금했지만 물고기는 제외가 되어 북유럽을 중심으로 청어 잡이가 한창일 때 청어를 절여서 먹곤 했습니다. 지금도 스웨덴의 청어 절임은 “세계 최악의 악취”를 자랑하며 미식가의 입맛을 자극합니다. 이곳에서도 가끔 독일에서 온 몇몇 할머니들이 청어로 절임을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가시가 너무 많아 먹지 않고 스트라이퍼 미끼로만 사용합니다.
하빈이가 청어를 잡기 위해 그물을 서둘러 조립하자 유빈이가 낚시대에 청어를 유인하기 위해 청어처럼 생긴 형광 빛 고무 물고기를 답니다. 보통 청어들은 떼를 지어 우두머리를 좇아 다니는데 유빈이가 낚시대를 강가에 던지자 자기 우두머리인줄 알고 좇아 옵니다. 하빈이가 손잡이 달린 그물을 잽싸게 들어 올리자 청어가 잡히네요. 청어가 죽지 않게 서둘러 낚시대에 달아 가능한 멀리 강물 속으로 힘껏 던집니다. 그 사이 하빈이와 유빈이는 청어를 또 잡았네요. 이번에 한꺼번에 두 마리나… 일석이조네요. 다른 낚시대에 청어를 달고 다시 또 강물 속으로 첨벙……
가져간 5개의 낚시대 모두 던져 놓고 이제는 의자에 앉아 언제나 낚시대가 내려갈려나… 낚시대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스트라이퍼는 큰 것은 길이가 1미터 안팎의 아주 무거운 놈이라 미끼를 물면 낚시대가 포물선으로 그리며 밑으로 쭈우욱 내려갑니다.
“아빠 저기, 저기!!” 유빈이가 낚시대가 밑으로 쭈우욱 내려가는 것을 보자 소리칩니다. 잽싸게 낚시대를 뒤로 제켜 올려 릴을 열심히 감아 올려 보니 청어의 꼬리 부분만 먹고 도망가 버렸네요. 모두가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다시 열심히 청어를 잡고 청어만 스무 마리 가까이 잡았네요. 정말 유빈이 기도대로 되었네요.^^ 다시 의자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 보지만 좀처럼 미끼를 물지 않네요. 저녁시간이 다되어 남은 청어는 다시 살려주고 모두 정리하고 차에 올라 탔습니다.
이제는 하빈이가 기도합니다. 참고로 우리는 공동체 밖을 운전하고 나갈 때 안전 운행을 위해 꼭 기도하는데 아이들과 함께 가면 아이들이 기도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안전하게 지켜주세요. 아멘” 스트라이퍼를 못 잡았어도 아주 기분 좋게 정말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하빈이의 마음이 느껴져 나도 마음이 좋아졌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주말이 되었습니다.
“…. 지난 번에 물고기 많이 잡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큰 물고기 잡게 해주세요..”
다시 스트라이퍼 도전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청어를 잡아 낚시대를 던져 놓고 기다립니다. 한 두시간이 지나고 아이들과 아내는 지루한지 나무에 헤먹을 매달고 돌아가며 누워서 낮잠을 자고 나는 청어가 아직도 살아 있는지 중간 중간 낚시대를 다시 감아 올려 확인해 다시 던지기를 반복하고 또 몇 시간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한 낚시대가 밑으로 쭈우욱 내려 갑니다. 열심히 감아 올리니 이게 웬일입니까? 유빈이가 기도한대로 30인치 (약80cm) 좀 넘는 아주 큰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시 기도를 들어 주셨네요. 그런데 스트라이퍼가 아닌 메기이네요. 참고로 허드슨 강가에 사는 물고기는 강이 오염되어 보통 먹지 않습니다. 다시 대 실망입니다. 다시 모든 걸 접고 집으로 철수.
또 일주일이 지나고 주말이 되어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또 다시 도전이 시작됩니다.
안전 운행을 위해 하빈이가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 가는 길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이번에는 스트라이퍼라고 불리는 큰 물고기 잡게 해주세요. 아멘.”
모두들 씩 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도 웃으셨겠죠..
다시 열심히 청어를 잡아 낚시대에 끼어 강 물속으로 첨벙… 스트라이퍼 잡는 노하우도 사람마다 가지각색이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많이 잡아온 형제에게 귀띰을 얻었습니다. 스트라이퍼가 미끼를 물때 바로 릴을 감아 올리면 도망갈 수 있으니 미끼를 충분히 물어 낚시 바늘에 꿰이도록 10초를 기다리라고 조언 합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낚시대 하나가 밑으로 쭈우욱… 내가 낚시대를 잡자 유빈이가 소리칩니다.
“아빠 기다려요. 하나 둘 셋…. 아홉 열” 세기가 무섭게 열심히 낚시줄을 감아 올리는데 너무 줄이 탱탱하면 줄을 끊고 도망가 버리기 때문에 줄을 감다 스트라이퍼가 다시 헤엄쳐 갈 수 있도록 느슨하게 풀어주고 다시 감기를 반복해야 스트라이퍼도 나중엔 지쳐 잡기가 훨씬 수월한데 워낙 무거운 놈이라 줄을 감는 것도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약간의 실수라도 하면 다 잡은 고기를 놓치는 것이라 머리에 식은 땀이 나도록 신중하게 감아 올립니다. 15분정도 사투를 벌이다 보니 스트라이퍼가 물가 가까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놈이 낚시줄을 끌고 이리 저리 헤엄쳐 다녀 옆에 있는 낚시대들과 엉켜 아이들이 옆의 낚시대를 들고 위로 아래로 움직여가며 돕자 드디어 놈의 정체가 보입니다. 하빈이가 잽싸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뜰채로 스트라이퍼 머리부터 집어 넣습니다. 간혹 꼬리부터 넣어 도망친 경우가 발생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마지막 순간을 지켜 봅니다. “와” 하는 고함 소리와 함께 모두들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정말 스트라이퍼라고 불리는 아주 큰 물고기가 잡혔네요.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기도를 정확하게 응답하셨네요. (^^) 유빈이가 Mother’s Day에 좋은 선물이라며 좋아합니다.
9년전 처음 이곳 메이플릿지 공동체에 이사왔습니다. 봄이 되자 형제들이 들썩들썩 거리는 것이 모두들 스트라이퍼 이야기를 합니다. “허드슨 강가에 가면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데..” 연어가 봄에 산란하기 위해 강가에 올라오는 것은 들어 봤어도 스트라이퍼라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물고기였습니다. 처음엔 어떻게 하는지 몰라 아이들과 강 지류에 있는 개울가로 가보니 청어떼가 헤엄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개울가로 들어온 청어는 그물로 잡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낚시대로 겨우 겨우 한마리를 잡아 양동이에 넣고 청어가 죽으까싶어 40분 거리를 부리나케 걸어 강가로 갑니다. 스트라이퍼로 쓰는 낚시대는 튼튼하고 멀리 나가는 걸 사용해야 하는데 제대로된 낚시대 하나 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이런 초자에게 스트라이퍼가 잡혀 줄리가 있나요?
스트라이퍼를 잡아 온 형제들이 생선 살을 뜨고는 머리와 뼈는 버리는 것을 보고 “아니 세상에, 저걸로 매운탕을 끓이면 엄청 나올 텐데…”하는 생각에 버릴 거면 나를 달라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하며(?) 흔쾌히 줍니다. 집에서 냄새가 안 배이도록 밖에서 불을 피워 생선 머리와 뼈로 매운탕을 끓이니 맛이 기가 막히네요. 우리도 한번 스트라이퍼 제대로 먹어봐야지 싶어 이 사람, 저 사람에 물어 정보를 하나 하나 수집해 매년 시도해보지만 처음 4년간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계속 실망하고 있는데 유빈이 친구 아빠 시므온이 자기가 어제 잡은 거라며 스트라이퍼 반 마리를 주었습니다. 보통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나 맛 볼 수 있는 스트라이퍼를 우리 가족이 생선을 아주 좋아하는 걸 알고 힘내라고 격려하게 위해 준 것이었습니다. 그 형제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참 고마웠습니다. 또 다시 시도해도 안 잡히고 계속 허탕만 쳐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이번 형제 미팅에 가면 일어나서 이야기해야지,
“형제들이여, 시간과 에너지 그만 낭비하고 다시는 스트라이퍼 낚시를 가지맙시다!
No more striper fishing!”
이렇게 굳게 마음먹고 있는데 어느 날 다비드 할아버지가 찾아 오셨습니다. 나랑 하빈이를 스트라이퍼 낚시하러 본인만이 아는 장소에 데리고 가시겠다는 겁니다. 그 때 하빈이는 5학년이었습니다. 날씨도 안좋고 별로 기대도 없었지만 할아버지께서 계속 실망만하고 기가 죽어 있는 나를 격려하기 위해 일부러 만드신 기회라 거절할 수 없어 함께 갔습니다. 비는 왜이리 쏟아지는지… 할아버지께서 나와 하빈이에게 낚시바늘을 끼는 것부터 시작해 언제 낚시대를 들어 올리고 어떻게 감아야 하는지 찬찬히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드디어 스트라이퍼가 미끼를 물자 나는 할아버지 말씀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주어 들은 대로 낚시줄을 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아뿔싸! 낚시줄이 뚝! 끊어지고 스트라이퍼는 도망가고 말았네요. 이렇게 기가 막힐 수가.
또 다시 낚시대가 쭈우욱 내려가고 이번에는 하빈이가 낚시줄을 감기 시작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하빈이가 열심히 줄을 감습니다. 하빈이는 하나도 틀림 없이 할아버지가 말씀해 주신 대로 정확하게 손을 놀립니다. 드디어 스트라이퍼가 물가로 오자 내가 뜰채로 스트라이퍼를 퍼 올렸습니다. 하빈이는 스트라이퍼를 보자 땅바닥에 드러 누워 깔깔깔 신이 나게 웃습니다. 자기도 믿기지 않은 냥 너무 좋은가 봅니다. 잠시 후 할아버지도 한 마리를 잡아 올리는데 반쯤 낚시줄을 감더니 힘이 딸리셔서 나머지 반은 내가 감아 올려 잡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나도 한 마리 잡고, 또 다시 한 마리… 물가에서 스트라이퍼가 첨벙첨벙 뛰어 노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날은 스트라이퍼 떼가 몰려 온 것 같습니다. 한 10번 정도는 낚시대가 쭈우욱 내려간 것 같은데 낚시줄을 끊고 도망가기도 하고, 4번째 스트라이퍼를 잡자 할아버지께서 더 이상 잡으면 다른 형제들이 울거라며 이제 됐다고 하셔서 모든 걸 정리하고 언덕 위로 올라 갑니다. 비가 쏟아지는 언덕길을 스트라이퍼를 어깨에 매고 올라가는데 얼마나 무겁던지 어깨가 빠지는 것 같았지만 마음만은 로또에 당첨된 마냥 즐겁기만 하고, 싱글벙글 입이 귀에 걸친 체 웃으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유빈이에 보여 주니 놀라고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벌써 소문이 퍼져 많은 형제들이 부러워합니다. 살을 발라내 한 마리는 다비드 할아버지께 드리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오기 할머니 가족에게 드리고 두 마리가 남았네요. 두 마리는 우리 옆집에 사는 스티브 할아버지네와 어니 가족을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어니는 낚시 보다는 새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 생전 스트라이퍼 낚시를 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7명이나 있지만 아빠가 안가니 남자애들도 갈 기회가 없어 우리가 낚시갈 때마다 하빈이, 유빈이를 부러워합니다. 호주에서 며칠 전에 오신 랜디 할아버지네도 초대하고 이렇게 저렇게 모이니 40명이 넘게 모였네요.
영국에 있을 땐 공동체가 바다 가까이 있어 가끔 바닷가로 놀러가면 fish and chips를 자주 먹곤 했습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별로 특별 한 메뉴가 없는 영국에선 그래도 fish and chips가 유명한데 대구나, 명태 등을 튀김 옷을 두껍게 입혀 튀겨 감자 칩과 함께 나옵니다.
영국 공동체에서 온 이사온 어니도 해물류는 안좋아 하지만 튀긴 생선을 좋아해 함께 옛날을 생각하며 스트라이퍼를 튀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의 튀긴 생선은 튀김 옷이 너무 두꺼워 한국식으로 탕수육 튀기듯 생강, 마늘을 조금 넣고 전분 가루로 얇게 튀김 옷을 입혀 튀기니 바삭 바삭해 모두들 좋아해 어니 부인 애니는 요리비법을 제 아내에게 물어봅니다. 애니는 평소 김치도 아주 잘 먹고 한국 음식을 아주 좋아합니다. 모두들 옹기 종기 모여 앉아 스트라이퍼를 맛있게 먹고 서로 낚시 경험담도 나누면서 물고기 2마리로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를 남기셨지만, 우린 보리떡이 없으니 물고기 2마리로 40명을 먹이고 12광주리가 아닌 한 광주리 가득 나눔의 기쁨을 우리 마음속에 남겼으니 이만하면 예수님을 따르고 싶은 사람으로써 더할 나위가 없는 것이겠지요.
스트라이퍼 2마리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행복으로 해마다 5월이면 박가족의 스트라이퍼 도전은 계속 되어집니다.
미국 뉴욕 브루더호프공동체, 메이폴릿치/ 박성훈 글

우리 집 근처에 있는 허드슨 강가

허드슨 강가로 산란하러 올라오는 청어

청어 잡기



난생 처음으로 잡은 스트라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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