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꽃다리
조국에 돌아오던 날 많은 사람들이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시인들은 앞다투어 노래를 했고 연인들은 제 향기에 빠져서 사랑을 속삭이곤 했지요. 역시 조국은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지요. 하지만 그것은 한낱 헛된 꿈이었을 뿐, 사람들은 저를 맞이해 준 것이 아니라 라일락이라는 꽃을 맞이해 준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도봉산에서 살고 있었지요. 1947년 봄 어떤 외국인이 어머니를 보고는 향기도 맡아보고 사진도 찍고 하더니 얼마 뒤 종자를 채취해 가지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저는 그렇게 조국을 떠나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원예종으로 개량이 되어 ‘미스킴라일락’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싹트기 시작했지요. 어떤 날은 낯선 고향이 꿈속에 나타나기도 했고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가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알게 되었지요. 제 고향은 한국이고 제 이름은 ‘수수꽃다리’라는 것을.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팔려온 저는 모든 것이 궁금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조국에 왜 팔려 와야 하는지 그리고 내 조국은 왜 나를 돈 주고 사 와야 하는지 아무튼 저는 그렇게 어머니의 나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사람들은 저를 외국에서 들어온 라일락꽃이라고 알고 있을 뿐 이 땅에서 자생한 수수꽃다리라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낯선 나라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살았는데 조국이 알아주지 않으니 서럽기만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찾으려고 밤에도 향기를 내뿜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머니는 제 향기를 알고 있을 테니까요. 어서 빨리 어머니가 나타나 제 이름을 불러 줬으면 좋겠습니다. 수수처럼 꽃이 달려있다고 해서 ‘수수꽃다리’로 불렸지요.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누가 그 이름을 불러 줬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희망을 찾아보려고 국토순례를 한 적이 있었다. 젊은 청년들이 주축을 이뤘지만 나처럼 나이든 중년들도 있었고 해외에서 온 동포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 프랑스에서 온 입양아도 있었는데 그는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풍경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를 찾으러 왔는데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자기를 만나지 않으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들을 멀리 보낸 어머니의 마음인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어릴 때 제 이름은 김창수입니다. 어머니를 찾으려고 국토순례에 참여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조국은 평화롭고 아름다웠고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도 아름다웠지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1910년 8월 29일 조선은 일본에게 강제 입양이 되었다. 입양된 사람들은 신사참배를 해야 했고 창씨개명을 해야 했고 강제징용이 되어 남의 나라에서 죽을 고생을 해야 했고 청년들은 전쟁터로 처녀들은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야 했다. 심지어는 우리 풀꽃의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바뀌고 말았다. 개불알꽃, 개망초도 이상하고 순자, 영자, 옥자처럼 여자 이름에 왜 ‘자’가 그리도 많은지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일제강점기를 끝내고 해방이 되었지만 일본총독부는 미군군정청이 되었고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휘날렸다. 겉으로는 평화가 찾아온 듯 했지만 우리는 다시 둘로 나뉘어 남쪽은 미국한테 북쪽은 소련한테 입양이 되었다. 결국 꼭두각시가 된 입양아끼리 전쟁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전쟁고아들이 나오고 전쟁고아들은 다시 여러 나라로 입양이 되었다. 그사이 ‘수수꽃다리’는 어느 미국인한테 강제 입양이 되어 ‘미스킴라일락’이 되었고 ‘금강초롱’은 어느 일본인한테 입양이 되어 ‘하나부사’가 되었다. 말이 강제 입양이지 쉽게 말하면 도둑질이나 마찬가지지. 그런데 세상은 도둑질 한 사람의 손을 들어 주고 당한 사람들은 업신여긴다는 말이지.
오월의 밤은 제가 노래를 가장 잘 부를 때입니다. 제 향기가 멀리 날아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제 향기를 오래도록 간직하려고 하지요. 나라마다 향기가 있다면 제가 앞장서서 우리나라 향기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꽃이니까요. 제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온 나라에 제 향기를 퍼트리는 겁니다. 삼천리강산에 제 향기가 퍼지면 저절로 통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를 업신여기지 못할 거예요. 세상 사람들도 ‘수수꽃다리’ 향기를 좋아하게 될 테니까요.
언제부턴가 마음 한구석에
그리움 하나 피어있었지
구름 사이로 보이는 저 들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라
아, 나는 누굴까, 나는 누굴까
그리운 어머니, 나의 어머니
딱 한번만, 한번만이라도
내 이름을 듣고 싶었지
잊을 수 없는 나의 옛살라비.
그리움 두고 다시 떠난다네.
아, 나는 누굴까, 나는 누굴까
그리운 어머니, 나의 어머니
「수수꽃다리」, 2006
글쓴이 한돌
이 글은 순천사랑어린학교에서 발행하는 월간 <풍경소리>(편집장 김민해 목사)와 함께 합니다.
일러스트 이람나키
수수꽃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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