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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상좌야, 너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등록 2020-05-07 14:33수정 2020-05-08 10:44

사사건건1

조계종 행자교육원에서 교육을 수료한 뒤 정식 출가를 위해 수계를 받는 예비승려들.
조계종 행자교육원에서 교육을 수료한 뒤 정식 출가를 위해 수계를 받는 예비승려들.

출가수행자들의 옷에 관심을 가져보신 적이 있는가? 동색이고 일색인 거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승복은 주로 재빛 옷감이지만 목과 손목에 고동색의 깃을 덧댄 스님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복장을 한 스님을 절에서는 사미(남), 사미니(여)라고 부른다. 사미와 사미니는 수습 기간에 해당하는 6개월의 행자과정을 마치고 수계 득도의식을 거친 초심 단계의 수행자를 말한다. 이후 종단이 지정하는 4년 과정의 승가대학을 이수하고 비구계/비구니계를 받으면 정식 승려가 된다. 이때 승복에 달린 고동색의 깃을 뗄 수 있다. 몇 번 수계의식을 보았는데 목과 손목 소매에 단단히 박음질한 고동색 깃을 어찌나 빠른 속도로 능숙하게 떼는지, 그 솜씨에 감탄했다. 아마도 그 표식이 은근히 멍에이고 압박이었을 거라는 속내를 헤아려 보았다.

사미/사미니 이전의 행자들의 옷은 회색이 아니다. 남자 행자는 진한 고동색이고 여자 행자는 주황색에 가깝다. 이 행자 과정에서는 평생 절에서 살아갈 기초 소양 교육을 받는다. 이들은 처음 출가한 사찰에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입산 이후 6개월이 임박하면 종단이 소집한 교육도량에서 모두 모여 보름 동안 공동으로 교육을 받고 앞에서 말한 사미/사미니가 되는 수계의식을 치른다. 이 때 승적이 만들어지는데 여러 필수 사항 중에 ‘은사’가 기록된다. 은사란 세속으로 비유하자면 절집에서의 부모와 같다. 통상 스승은 은사, 제자는 상좌라고 부른다.

이제 스승과 상좌의 애기를 해 보려고 한다. 절에 들어와 수행하는 행자들은 입산 이후 3개월이 지나면 조계종 교육원에서 ‘입문 교육’이라고 하는 중간 소집 교육에 참여한다. 이 교육에서는 낮선 환경에서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경청하고 상담해 준다. 출가자의 삶이 결코 통제와 은둔의 길이 아닌, 자유와 보람이 넘치는 희망적 대안의 길임을 알려 준다.

십년 전 조계종의 교육부장의 소임을 하고 있을 때 이 입문교육에 ‘출가자의 길’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강의장에 들어서면 행자들은 매우 긴장하고 있다. 그래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하여 가벼운 정신 풀기 운동부터 한다.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의 결단을 축하합니다.” 이어 질문한다. “이제 여러분은 절에 들어와 평생을 꽃길을 밟고 살터인데, 출가수행자가 되면 좋은 점이 아주 아주 많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좋은 점을 말해볼까요?” 나는 분명 ‘꽃길’이라고 묻는다. 행자들은 조금 당황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행자라고 가정하고 그 꽃길을 헤아려 보시라). 행자들이 말한다. “참된 자아를 찾을 수 있습니다”(딱! 걸렸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행자님, 좀 솔직합시다. 난 참 자아를 찾는 길이 꽃길이 아니고 가시밭길이라 생각하는데요 (모두 어색한 웃음) 자~ 긴장 푸세요. 생사를 해탈하고 깨달음을 성취하는, 그런 거창한 거 말고 현실적으로 즐거움과 이익을 생각해 보세요. 힌트를 드리자면 여러분이 살았던 세속과 비교해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말하면 대개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온다. 1) 생계 유지에 그리 큰 걱정이 없는 거 같다. 2) 내 집을 마련하느라 평생을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3) 별장이나 콘도를 사지 않아도 많은 산사를 휴양지로 이용할 수 있다. 4) 세속 직장처럼 권고사직을 당할 위험이 없다.5) 여행을 많이 할 수 있을 거 같아 좋다. 6) 일정 정도의 실적을 내라고 압박하고 갑질하는 상사가 없어서 좋을 거 같다. 7) 다른 이와 비교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거 같다. 8) 부모 봉양과 자녀 양육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요건 솔직한 심정 고백이지만, 말하는 행자의 눈시울이 순간 붉어진다) 9) 옷과 신발의 유행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10) 다양한 취미 생활이 수월할 거 같다. 별별 소리가 실타래 풀리듯 술술 나오지만 10개만 적는다.

전북 남원 산내면 지리산 실상사에서 살아가는 필자 법인 스님(사진 오른쪽)과 각묵 스님(사진 왼쪽)
전북 남원 산내면 지리산 실상사에서 살아가는 필자 법인 스님(사진 오른쪽)과 각묵 스님(사진 왼쪽)

“그런데 말이예요, 출가하면 자녀 양육의 걱정이 없다고 하신 행자님, 나는 한발 더 나아가 더 좋은 게 있습니다. 그게 뭔지 생각해 보세요” 이 문제는 절집안 사정에 밝지 않고서는 쉽게 답할 수 없다. 모두들 나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나의 답은 이렇다. “출가하여 10년이 지나면 그리 힘들이지 않고 자녀를 쉽게, 그것도 양육비와 교육비 한푼 들지 않고 자녀를 거저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자녀를 수십명도 낳는(?) 스님도 있습니다.” 이제 대략 아하!, 하고 짐작하실 것이다. 상좌가 바로 힘 안들이고 돈 안들고 낳는 자식인 셈이다. 이러니 스님들은 세속 부모의 심정으로 보면 참으로 염치 없고 몰인정하고 원망스러운 부류들이다. 한 예로 어느 부모와 가족들이 스님이 되는 수계 현장에 몰려와 집단 항의한 적이 있다. 내 자식을 애지중지 키우고 힘들게 유학 보내 박사 따고 성공시켜다고 좋아했는데, 스님들이 내 자식을 빼어갈 수 있느냐고, 이게 자비로운 스님들이 할 짓이냐고. ( 이 행자는 외국 유명 대학 전임 교수 통지를 받는 날 입산 출가했다)... 각설하고, 이렇게 출가하면 좋은 점을 말하고 이어 말한다. “ 여러분, 우리가 살아갈 이런 좋은 환경은 바로 여러분이 얼마 전 살았던, 세속의 사람들이 보시한 ‘돈’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평생토록 시시각각 새겨야 합니다. 내가 누리는 이 복들이 어떻게 해서 내게로 왔는지, 여러분이 절에 들어오기 전에 겪어던, 때로는 치사하고 굴욕적인 상황을 감내하고 얻은 돈을 우리에게 보시한 것입니다. 이 ‘돈’이 바른 길을 가고, 뭇 생명을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도’가 되지 못하면 이 돈은 우리들을 청정한 마음을 죽이는 ‘독’이 됩니다. 단 돈 일만원에 스며있는 소리들을 들을 수만 있다면 중노릇이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예능으로 시작했는데 다큐로 이어졌다. 그러니 이제 다시 예능으로 가보자.

지금 실상사에는 십여명의 스님들이 30여명의 재가자와 더불어 공동체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공동체에 내가 좋아하고, 믿고, 존경하는 도반(출가자의 벗)이 있는데 각묵 스님이다. 각묵 스님은 불교계에서 역경가로 통한다. 본디 경전은 인도말인 파알리어·산스크리스트어를 중국의 한자로, 이어 한글로 번역되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각묵 스님은 부처님 초기 경전에 해당하는, 한역에서는 ‘아함’이라 불리는 ‘니까야’ 모두를 파알리어에서 곧바로 한글로 번역했다. 한글로 번역한 경전의 양은 대략 한 팔을 벌린 길이의 분량이다. 그러니 참으로 보석같이 귀한 분이다. 나는 늘 개인적으로 각묵 스님을 ‘조계종의 공적 자산’이라고 고무 찬양한다.

수계를 받으며 팔뚝을 연비하는 의식을 하는 이들
수계를 받으며 팔뚝을 연비하는 의식을 하는 이들

행자교육원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수계를 받는 조계종의 예비승려들
행자교육원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수계를 받는 조계종의 예비승려들

평생을 역경이라는 작업을 해오고 있으니 종단의 행정 소임이나 어느 절의 주지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 상좌(제자)를 둘 환경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절인연이 있어 지금은 건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청년을 상좌로 받아들였다. 나는 지리산이 인연터인지 작년 실상사에 네 번째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입방 며칠 후 젊은 사미승이 가사를 걸치고 내게 인사를 왔다. 절을 받고 물었다. “법명은 무엇이고 은사 스님은 누구입니까?” “네, 법명은 ‘자등’이고 은사 스님은 윗 자는 ‘각’자이고 아랫 자는 ‘묵’자이신 각묵 스님입니다.” 각묵 스님의 상좌라니, 유독 반가워 물었다. “그럼, 스스로 ‘’, 등불 ‘’ 인가요?” 그 때 자등 스님의 은사인 각묵 스님이 한 말씀 하신다. “아! 스님은 ‘자비의 등불’ 이라 하지 않고 단번에 ‘자기를 등불로 삼아라’는, 이라고 말하시네요. 맞습니다, 맞아요. 하하” 그런데 이 법명을 내린 과정과 사연을 듣고 보니 크게 웃지 않을 수 없다. 각묵 스님은 본디 상좌를 두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당신의 강의를 듣고 있는 신심 깊은 부부의 아드님이 출가수행자가 되기를 원한 것이다. 그래서 그 청년의 어머님은 허락을 하고 대신 ‘반드시’ 각묵 스님을 은사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여 각묵 스님에게 간절히 자신의 아들을 상좌로 받아 줄 것을 간청했다. 간절한 청을 받고 각묵 스님은 이도 인연이겠다 싶어 허락했다. 모월 모일 모처에서 청년과 부모가 스님을 만나기로 했다. 스님은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오면서 생각했다. 일단 상좌를 두게 되었으니 절에서 부르는 이름(법명)을 고심했다. 마침내 역사적 회동이 이루어졌다. 청년은 정중하게 스승에게 삼배를 올렸다. 스승은 이런저런 환영사를 하고 이어 종이에 적어 온 법명을 출가 청년에게 발표했다.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자등’이다” 아! 그리 흔하지 않고 어감도 뜻도 좋은 법명이다. 그런데 다음 발언이 대박이다. “스스로 ‘자’. 등불 ‘등’ 자등이 너의 법명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사바세계의 인연을 마칠 때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고 정진하라’고 제자들게게 전했다. 그러니 이 뜻을 본 받아 자등이 너도 ‘은사를 등불로 삼지 말고, 너 자신을 등불로 삼아 정진해야 한다.’ 알겠지?”

아! 내가 절집에서 사십 년이 넘게 살았지만 스승과 제자의 이런 초면 상견례는 처음이다. 아니 명색 스승이 자신을 등불로 삼지 말라고? 당당하게 스스로를 ‘디스’하다니, 과연 각묵 스님답다.

말은 가볍지만 속뜻은 의미가 깊다하겠다. 석가모니는 각자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고 했다. 중국의 임제 선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했다. 철저한 ‘주체’와 ‘자유’의 정신이다. 각묵 스님과 자등 스님, 옆에서 늘 보거니 둘 사이가 매우 정답고 법답다. 희유하고 희유한 그 인연에 무량 광명이 깃들기를...

실상사 법인 스님의 글입니다.

이 시리즈는 대우꿈동산(http://www.kkumds.or.kr/)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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