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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일하라, 돈이 필요없는 사람처럼!"

등록 2013-10-28 17:41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던, 최근에 겪은 일들이다.   #자전거 가게

2년 동안 묵혀 두었던 자전거를 수리하려고 동네 자전거 수리점에 갔다. 수십 년 된 낡은 한옥에 아직도 ‘자전차점’이라는 옛 이름의 간판을 달고 있는 집. 체인과 톱니바퀴, 타이어 튜브를 교체하기로 했다. ‘자전차집’ 주인인 할아버지는 “살 때는 다 중국산 부품으로 되어있지만 지금 교체하는 건 국산”이라고 말씀하셨다.

시간이 조금 걸린다며 들어와 앉아있으라고 하시곤, 커피 한 잔 마시라고 권하셨다. 역시 낡은 휴대용 버너에 낡은 주전자. 불을 켜고 물을 끓여서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 마시라는 거였다. (난 핸드드립 커피 마시는데...) 아침에 마셨다며 사양했지만 할아버지는 “아주 맛있는 커피”라며 극구 권하신다. 달달한 믹스커피를 종이컵에 타서 마셨고, 그 동안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수리해주셨다.  

내가 가게에 들어가기 전엔 환경미화원 한 분이 안에서 같은 커피를 마시고 나가셨다. 할아버지의 커피믹스 한 봉지는 이웃들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였던 거다.

수리가 끝난 자전거를 끌고 나와 타다가, 곧 내렸다. 자전거 자물쇠가 바퀴에 걸려서 자물쇠의 위치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작업을 하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길 건너 자전차점 할아버지가 이쪽을 보고 계셨다. 고친 자전차가 잘 나가는지 가게 밖에 나와 내가 타고 가는 자전차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계셨던 거였다. 대단한 고장을 고친 것도 아닌데... 따뜻한 그 마음에 가슴이 찡했다.   #반찬 가게

동네 재래시장 반찬가게에 갔다. 항상 웃는 얼굴의 주인 아주머니. 사려는 반찬을 막 만드는 중이어서 가게 안에 들어와 기다리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마저 반찬을 만드시고, 주인 아저씨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기다리는 나에게 드시고 있던 뻥튀기를 하나 권하신다. (오늘은 뻥튀기 별로 안땡기는데...) “조금만 주세요”하면서 예의상 받아먹었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무슨 뻥튀기를.... 거기 감 깍아 놓은거 먹어요” 하신다. 바로 옆에 예쁘게 깎아 놓은 감 한 개가 있다. (손님한테 무슨 감씩이나...) 괜히 내가 미안한 마음도 들고 “괜찮다”고 사양했다. (뭘 자꾸 퍼주세요... 미안하게...)

그 사이 반찬을 사러 온 젊은 주부. 이것저것 맛보고, 까다롭게 가격과 재료를 물어보더니 결국 반찬 하나만 달랑산다. 지켜보는 내 눈에도 얄미운데 아주머니는 전혀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먹어 볼텨?”하며 만들고 있던 홍어무침을 집어 주부의 입에 넣어준다. 나한테도 “먹어 볼텨?” 한다. 나는 “그냥 싸주세요”했다. (집에 싸가서 실컷 먹을 것이므로!) 아주머니는 웃는다. 집에 와서 싸온 홍어무침을 풀어보니 두툼한 홍어살이 평소보다 가득 들어있다. (아주머니, 이렇게 해도 남으시나요??) 물컹한 홍어를 씹으며 반찬집 아주머니 아저씨께 감사한 마음을 보내본다.   #중국집

집에서 일을 하느라 하루 종일 꼼짝도 못했던 하루. 세수도 안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시간은 어느덧 오후 5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배가 무척 고팠는데 자장면이 먹고 싶었다. 동네 중국집으로 갔다. 오래된 동네 가게지만 비싼 중국요리를 하는 곳이기도 해서, 자장면 한 그릇 먹으러 간 적은 없었던 곳이다.

초췌한 모습으로 혼자 들어갔는데, 종업원이 반가운 얼굴로 맞아준다. 혼자라 위축되진 않을지 오히려 신경 써서 배려해주는 느낌이 든다. 자리를 안내해주는데 주말에는 예약해야 앉을 수 있는 창가 쪽 조용하고 넓은 자리. 세수도 안하고 츄리닝 입고 혼자 온 나에게 선뜻 그 자리를 내준다.

나도 삼선 자장을 시키는 예의를 보였다. 나온 자장면을 다 먹을 무렵 타이밍을 정확히 맞춰 종업원이 디저트를 내온다. 코스가 아닌 단품 자장면에도 원래 디저트를 주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아, 감동이었다. 키위 한 조각과 단 찰떡 하나. 그 디저트를 또 다 먹어갈 무렵, 종업원이 다가와 이번에 “차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한다. 이 집, 녹차가 맛있다. 녹차를 달라고 했다. 자장면 먹고, 디저트먹고, 녹차까지 천천히 즐기며 마셨다.

자리에 일어나 계산하러 가는데 처음부터 반겨주었던 그 종업원이 “맛있게 드셨어요?” 환하게 웃으며 묻는다. “네, 잘 먹었습니다.” 나는 정말로 맛있게, 편안하게, 우아하게 자장면을 먹었다. 카운터에 서서 만원짜리 한 장을 냈다. 자장면은 6천원이었던가. 천원짜리 묶음을 꺼내 거스름돈을 내주던 또 다른 종업원은 천원짜리 뭉치 중에서 낡은 돈은 빼고 깨끗한 것으로만 골라 사천원을 거슬러 주었다. 나는 감사히 그 거스름돈을 받고, 다시 한번 “잘 먹었습니다.”하고 나왔다.

중국집을 나왔을 때, 그 날을 초가을의 따뜻하고 맑은 날씨였다. 햇빛은 무척이나 밝고 따뜻했고 살살 부는 바람도 기분이 좋았다.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와 친절에 나는 그 순간 정말 행복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사는 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란 구절로 유명한 시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내가 겪은 이 친절들은 돈과는 상관없이 자기 일을 사랑하고, 사람과 일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의 태도였다. 나도 그들처럼 마치 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일하고 살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될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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