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사진 김봉규 기자
마음으로 하는 기도 어떤 사람이 담배를 너무 좋아해서 기도하면서도 담배를 피우니까 기도하면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신부님이 주의를 주었더니, “그러면 담배 피우면서 기도하면 됩니까?”라고 묻자 그건 된다고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농담을 떠나서, 이 두 가지 행위 사이에 과연 무슨 차이가 있기에 하나는 안 되고 다른 하나는 된다고 했을지 궁금해진다. 전자는 기도 대신 담배 피우는 것이 주 행위가 되고 후자는 담배 대신 기도가 주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담배 피우면서 기도하는 것도 썩 좋은 일은 아니다. 담배 맛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기도에도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담배 대신 일이라는 것을 대입해 생각해보자. 기도하면서 일하는 것과 일하면서 기도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을까?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성경 말씀도 있듯이, 역시 일하면서 기도하는 편이 더 신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가 문제다. 일을 하면 일에 집중해야지 기도하면서 일을 하면 아무래도 일에 지장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과 기도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묘수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기도, 즉 일을 멈추고 틈을 내서 말로 드리는 기도 대신 마음을 비우는 기도나 마음을 다잡는 명상적 기도를 해야만 한다.
이렇게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별도의 시간이나 장소가 필요 없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할 수 있는 기도다. 문자 그대로 ‘쉬지 말고 하는 기도’가 된다. 이런 마음의 기도, 생활 속의 기도, 일하면서 하는 기도가 사실 기도의 고수나 영성의 대가들이 가르치는 고차적 기도다.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 손모내기하는 어린이 사진 <한겨레>자료
서양 수도원에는 일하면서 기도하는 전통이 있으며, 선불교에도 농사지으면서 마음을 닦는 선농일치의 정신이 있다. 농사나 노동이 물론 경제적으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동이 기도를 중단시키거나 방해하는 행위가 아니라 바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어서 좋고 기도가 일을 방해하기는커녕 일에 정성이 담겨 더 좋다.
최근 불교계 안팎에서 마음 챙기기(위파사나) 명상법이 대중적 관심을 끄는 이유도 그것이 선정에 몰입하는 명상보다 쉬울 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하는 명상으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자기의 마음 상태를 늘 주시하여 흐트러짐이 없도록 하고 항시 비고(적적하고) 깨어 있는 상태(성성한)를 유지하도록 하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일을 하되 일에 치이거나 휘둘리지 않는다.
마음이 일 가운데 있지만 일이 마음에 없는 초연한 상태를 유지한다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말한다. 도가에서는 이것을 무위 가운데 하는 행위이며,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에서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하는 순수한 행위인 ‘행위의 요가’(karma-yoga)라고 한다. 왕양명은 또 그것을 사상마련, 즉 일 속에서 갈고닦는 수련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신앙인들은 신앙생활에는 열심이지만 생활신앙은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신앙과 생활이 따로 놀아 신앙이 삶 전체에 영향을 주거나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지 못하고, 기도하는 시간과 종교 집회나 의례에 참석하는 시간만 경건해진다.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하고 명상도 부지런히 하지만 그 자제가 목적이 되어서 실생활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일 가운데 늘 자기 마음을 성찰하는 기도, 생활 속의 기도를 익혀서 성과 속이 하나가 되고 진과 속이 둘이 아닌 경지에 드는 것만 못하다.
길희성/서강대 명예교수 겸 강화도 심도학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