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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신문지 예찬

등록 2012-11-21 03:50

20대 이후부터 내가 가장 행복해하는 시간 중 하나는 오전에 여유롭게 신문을 읽는 것이다. 넓은 책상을, 아무것도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다 치워놓고, 신문을 펼쳐 놓서는, 어느 것에도 시간을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한 장씩 넘겨가며 신문을 읽는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 최소 한 시간 이상은 걸린다. 

 신문과 커피는 ‘아침에 제격’이라는 것이 내 소신(?)인데, 두 품목 모두 바람의 찬 기운과 새 날이 시작되는 기운이 사라지기 전 ‘복용’해야 약발이 제대로 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접하는 뉴스는 흥미위주의 연예기사나 과장된 당일 뉴스가 대부분이어서 중요한 뉴스를 제대로, 차분히 접하기가 어렵다. 신문의 매력은 내가 좋아하는 기사는 꼼꼼히 읽을 수 있고, 내가 관심 없는 분야도 한번 스쳐지나가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골고루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게 아날로그의 매력이자 힘일 것이다. 

 본격적으로 살림을 하면서 발견한 신문의 치명적인 매력이 또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살림을 하는데 신문은 ‘머스트해브 아이템(must-have item)’이라는 점이다. 

 최근에만 해도 베란다에 고구마를 널어 놓고 습기를 말릴 때, 귤껍질을 말릴 때, 대추를 말릴 때 등등 식재료를 말릴 때 항상 신문지를 깐다. 중앙일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은 크기가 크고, 장수도 20여장 이상인데다가, 필요에 따라 장수를 펼치기만 하면 얼마든지 음식 깔 면적을 손쉽게 넓힐 수 있다. 복구하기 어려운 오물 같은 것이 묻지 않는 이상 이런 경우에 사용한 신문지는 다시 수거해 분리수거할 수 있다. 

 또 마늘 껍질을 까거나, 대추를 썰거나, 멸치 머리와 내장을 뗄 때도 신문지를 깐다. 이런 식품의 껍질과 종이인 신문지는 모두 자연 상태에서 분해가 되므로 한 번에 싸서 버리면 치우기도 쉽고 별 부담도 없다. 얇은 종이여서 쉽게 구겨지고, 부피도 작게 줄일 수 있다. 

 신문지의 강력한 습기 흡수 능력 또한 놀랄 만하다. 송이버섯을 오래 보관하는 방법 중 하나는 신문지에 싸서 밀폐용기에 담아두는 것이다. 송이버섯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체여서 부직포 비슷한 흡습종이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일반 가정에서 신문지를 대체할 물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옷장 서랍 등에 신문지만 제대로 깔아 놓아도 습기 때문에 옷에 곰팡이가 피거나 할 확률이 많이 줄어든다. ‘물먹는 하마’ 등의 인공적인 흡습제품을 쓰기보다는 신문지와 천연 숯을 제대로 활용하면 자연적인 방법으로 기본적인 습기제거는 할 수 있다.  살림에 사용하고도 남는 신문지는 분리수거로 내놓는데, 신문지의 인기는 배출 후에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신문지를 내놓으면 다음날 수거차가 오기도 전에 누가 가져가고 없다. 폐지 모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져갔을 것으로 짐작한다. 

 균형잡힌 정보습득과 읽는 즐거움을 제공해주는 신문이 일상의 살림에서 알뜰살뜰하게 이용되고, 재활용되는 과정을 떠올리면 이렇게 알차게 사용되는 제품도 별로 없겠다, 싶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정에서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거나 가정이 아닌 직장에서 신문을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앞에 놓고 나는 ‘인터넷 발달로 인해 신문과 같은 활자매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같은 문제보다 ‘신문지가 없으면 살림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마늘을 까고, 고구마를 널어놓을 넓은 쟁반이나 그릇을 몇 개씩이나 갖고 있는 집은 거의 없을 텐데. 신발장이나 옷장에 신문지 깔아놓으면 습기 쫙쫙 빨아들여 좋은데, 모두들 물먹는 하마를 쓰나? 아님 옷이나 신발에 곰팡이가 생겨 새로 옷이나 신발을 사는 건가?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사람이 준다’는 것은, ‘모두들 밖에 나가 돈을 버느라 집안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산다’는 의미로 왠지 나는 느껴진다.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까 신문지가 없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 아닐까? 일찍 나가고 늦게 퇴근하느라 지쳐서 차분히 한 장 한 장 넘기며 신문을 읽을 여유 또한 없어졌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돈 벌기, 능력개발 등을 위해 모두들 밖으로, 밖으로만 나도는 동안,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기본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건강한 먹거리, 정서적 안정 같은 살림의 가치들 또한, 점점 드물어지는 종이 신문처럼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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