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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궁하면 통한다

등록 2012-08-20 10:26

영화 <저수지의 개들>의 한장면

내가 좋아하는 문구가 두 개 있다. “궁즉통”. “원할 것, 이룰 것, 살아갈 것”. 이 두 문구는 살아가는데 위로와 힘을 준다. 

궁즉통, 즉 ‘궁하면 통한다’는 말은 낙천적으로 살 수 있게 해준다. 일을 할 때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극한의 상황에 어쩌다 부딪힐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해 넘다 보면 신기하게도 최악의 상황은 거의 오지 않는다. 운이나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일이 순탄하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일이 왜 그렇게 풀렸는지 어떤 논리적 설명도 댈 수 없지만, 배수진의 심정으로 상황에 임하다 보면 그 절박한 기운 때문에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는 것 같다는 짐작만 할 뿐이다. 때문에 궁하면 통할 것이다, 라고 믿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것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렇게 살진 못하고 있지만.

그리고 가능한 소비를 적게 하고, 좀 부족한 대신 마음과 시간을 여유롭게 하고 살고 싶은 지금에도 궁즉통은 생활경제에도 좋은 지침을 주는 단어다. 

예전엔 필요한 것은 무조건 돈을 주고 사려고 했다. 화장품 파우치가 필요하면 인터넷쇼핑몰과 오프라인 매장 등을 구석구석 뒤지며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가격의 파우치를 사려고 많은 시간과돈을 썼다. 

그러나 지금은 필요하면 재봉틀을 이용해 내가 원하는 기능과 모양의 파우치를 만들어 쓴다. 천을 새로 사서 만들 수도 있지만, 쓰지 않는 에코백이나 옷 등을 활용해 만들 수도 있다. 가진 게 적으면 불편할 수 있지만 넉넉치 않기 때문에 있는 것들을 오히려 잘 활용하게 되는 새로운 돌파구가 생기는 것이다. 

궁즉통의 미학을 깨우치게 해 준 것은 바로 박찬욱 영화감독의 글에서였다. 

“경제학에서 미학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물적 조건이 상이하면 상이한 미학이 발생한다는 뜻이고, 더 쉽게 말하자면 가난한 영화에는 특유의 멋진 매력이 따라서 생긴다는 소리입니다. … B감독에게는 스펙터클보다는 인간으로, 기술적 완성미 보다는 갈 데까지 가보는 극단성으로 승부를 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되기 때문이죠. 뭐가 달라도 달라야 비싼 영화와 차별성이 생길 테니까요. 첫째도 개성, 둘째도 개성, 무엇보다도 오직 개성, 이야말로 가난한 예술가의 무기입니다.”

영화 <저수지의 개들>의 타란티노 감독. 돈과 시간이 넉넉하지 못했던 그는 영화 속 보석상 터는 장면을, 흔히 다른 영화들이 화려한 총격전과 자동차 추격 액션신으로 찍었던 것과는 달리, 범행 모의에 이어 범행 자체는 생략해 버리고 곧바로 경찰에 쫓기는 장면을 붙여 버렸다고 한다. 저예산 감독은 악조건을 독창적인 표현의 계기로 전환시킨 것이고, 이 내러티브 전개의 대담성이 모든 비평가와 영화 팬들을 오히려 열광시켰다고. (<박찬욱의 몽타주> 중에서)부족함이 오히려 새로운 미학을 탄생시킨 것이니, 부족한 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며 그 조건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풍요로움에서 나올 수 없는 새로움이 탄생할 수 있다는 멋진 발견이다. 

“원할 것, 이룰 것, 살아갈 것”이 문구는 가수 겸 방송인 김창완씨가 어느 지면에 쓴 칼럼에서 본 말이다. 어떤 맥락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문구는 마음에 쏙 들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사람이 사는 것은 결국 이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갖고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삶은 활기와 재미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삶이 어디 즐겁기만 한가. 왜 사는 지,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허무와 무기력에 빠질 때도 많은데 그럴 땐 이 단어를 떠올린다. 살아갈 것.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우울과 고민에 빠져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상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우울해 하고 고민은 하되, 오늘 해야 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내일 입을 옷을 빨고, 바닥에 쌓인 먼지를 청소한다. 일단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허무와 무의미, 동시에 인생의 활기를 동시에 포용하고 있는 문구다. 

궁즉통의 마음가짐으로 원하고, 이루고, 살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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