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산위의마을 앞마당에 노는 아이들 사진 조현
입시철이 되니 수험생들과 그 부모들의 마음이 예같지 못할 것 같다. 우리 마을에서도 대입 수험생 한 명이 있는데 다행히 전북대 수시모집에 합격하여 마을 가족들이 모두 기뻐하고 있다. 합격한 장길산 요한이는 우리 마을에 6년 째 살고 있다. 홀어머니와 동생과 세 가족이 입촌하여 살아왔다. 3년 넘게 살다가 가족이 퇴촌하게 되었는데 길산이는 마을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혼자 남게 되었다.
길산이는 중학교 대신 실상사 작은 학교를 다녔다. 고등 과정은 마을 꼬뮌스쿨로 독학을 했다. 결국 중·고등이 모두 검정고시 출신이 된 셈이다. 길산이는 마을에 독학 생활을 할 때 전례와 축산을 담당하면서 마을에 중요한 일꾼으로 살았다. 성품이 온유하고 자상해서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길산이를 잘 따르고 좋아했다.
혼자서 EBS 교육방송으로 공부를 하고 짬짬이 가까운 삼촌 고모들에게 개인교습도 받고 준비하면서 작년 아동교육학과에 응시했는데 성적이 부족하여 낙방했다. 한 해 더 도전해보도록 기회를 달라고 해서 부족한 과목은 학원도 다니면서 고심한 끝에 작년에 낙방했던 학과를 다시 응시하여 합격한 것이다. 우리 마을에서는 처음으로 대학생이 되었다.
전북대학교 수시합격의 수준이 서울의 대학들과 비교해서 따진다면 어떤 정도일까? 아무래도 많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전혀 상관 없다. 공부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했는데도 국립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소백산 산위의마을에서 박기호 신부와 함께 미사를 드리는 아이들 사진 조현
우리가 공동체로 살아가는 영성으로 이해할 때 꼭 대학을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대학에 보낼 이유가 있다. 우선은 자발적으로 공부하려는 본인의 의지가 있고 또 마을에서는 필요한 인재의 양성해서 후학들의 양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마을 생활에서는 공동체 세계관과 창조적 능력과 품성을 함양하고 앙양시키는 교육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스스로 공부하는 실천성 좋은 아이들을 꾸준히 교육시키고 외국의 공동체로 유학도 보내고 실력을 쌓게 해서 공동체 세계 건설의 일꾼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우리 마을의 교육은 경쟁없이 서로 배려하며 평화롭게 생활하는 관계와 노동을 강조한다. 새벽마다 일어나 미사를 준비하고 복사를 하고 기도에 참석하고, 함께 찬양하는 생활을 어른들과 똑같이 한다. 노동을 하도록 한다. 소와 양계, 염소에게 여물을 주고 관리하는 일, 청소와 식당 뒷정리를 책임지고 하는 일, 신발을 늘 정돈하는 일, 욕을 했거나 다툼이 있었던 날 저녁에는 공동체 앞에 고백하고 화해하도록 하는 일, 예의염치를 강조하는 일... 이런 생활을 소중히 여긴다. 이것은 가진 것 없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고 유산이다.
만약에 우리 마을에서 독학을 해서 명문대학을 합격했다면 개천에서 용났다!고 할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날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내 자녀들이 세상을 덮고 하늘을 오르는 용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삶의 몫이 아니다.
승천하기 위해서 한생을 몸부림치며 사는 것은 불행한 삶일 것이기 때문이다. 용으로 승천하는 한 장의 티켓을 두고 경쟁하고 싸우는 것은 똑똑하고 훌륭하고 강대강 제왕의 꿈을 가진 이들에게 양보해야 한다. 그런 잠룡들이 득실거리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리그에서 누군가 잠룡이 되건 이무기가 되건 기어 다니다가 밟혀 죽던 그건 각자의 몫일 거다. 우리는 이 땅의 농업을 지키고 전통을 따르고 살며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 것이다. 이웃이 평화롭게 사는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서로 조화롭게 사는 것에 만족하겠다. 가진 것을 나누고 무소유의 풍요로움이 얼마나 은혜로운 삶이지를 기뻐하면서 살아갈 것이니 개천이건 남한강이건 용이 될 생각도 꿈도 없고 그럴 이유도 전혀 없다.
길산이더러 합격을 했으니 이제, 학교를 먼저 다니다가 현역 복무와 마을 생활을 할 것인지, 마을 생활과 복무를 마치고 학교를 다닐 것인지 결정하라고 했다. 삼촌들과 몇 번의 상의를 거치더니 1학년 교양과정을 마치고 마을로 복귀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길산이가 듬직해서 고맙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입시에 애쓰는 학생들과 그 부모들에게 산위의 마을 가족들의 힘찬 격려의 기운을 보내드린다. 길산이의 생활을 인도하여 주신 하느님과 도움을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산위의마을 장길산,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