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겨레> 자료
오래 전부터 보험을 리모델링하고 싶었다. 필요한 보장을, 적절한 가격에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상태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이들 그렇듯, 나 역시 보험 내용을 자세히 알고 가입하지 못했다. 내용도 복잡하고, 뭐 필요한 것이니까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와 포기로 그냥 시간만 흘려 보냈던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마음을 다잡고 보험 구조조정에 나섰다. 처음엔 인터넷 검색과 현재 가입하고 있는 보험사 콜 센터에 문의해 보험에 대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한 다음, 스스로 보험을 구조 조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꽤 많이 인터넷 검색을 하고 신문을 줄 쳐가며 읽어도 보험 보장 내용과 구성 형태 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 새로 가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변액연금보험은 여러 번 내용을 읽어도 선뜻 그 구조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헤매다가 내가 보험 구조조정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보험과 재테크 등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가진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내 기준과 시각에서 그 의견을 종합해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걸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잘 이해가 안되고 혼자 판단하기 두려운 마음에 재테크 강좌를 찾아 듣게 됐고, 그 과정에서 생긴 의문을 따라가며 다른 강의를 또 찾고, 자료를 검색하다 보니 그런 방법으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처음 들은 것은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열렸던 재테크 강좌였다. 이 강좌는 보험에 대한 것은 아니었고 재테크 전반에 대한 것이었는데, 강사는 변액연금보험 가입을 적극 추천했다. 수수료와 세금 등을 고려할 때 7년 이상 장기로 운용할 수 있다면 펀드보다는 변액연금보험의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이다. 변액연금보험에 관심이 있던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변액연금보험 가입을 더욱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연금보험 월 납입금 20만원 중 수수료만 무려 2만6000원
그러나 돌발변수가 생겼다. 연금보험 납입금액 중 적지 않은 금액이 수수료로 빠진다는 기사를 보고 내가 가입하고 있는 연금보험의 해당 생명보험사에 수수료를 알아봤는데 지난 7년간, 납입금액 월 20만원 중 무려 2만6000원 정도가 사업수수료로 빠졌다는 것이다. 20만원 중 2만6000원이 수수료로 빠졌으니, 실제 연금보험에 적립된 금액은 월 17만4000원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납입금액 전부가 연금으로 적립되는 줄 알고 이 상품에 가입했는데, 이 상품은 연금뿐 아니라 사망재해 보험 기능도 같이 있는 상품이어서 17만4000원 중 일부는 또 보험 비로 빠지는 상품이었기 때문에(가입 만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았다 --;) 연금으로 적립되는 금액은 17만4000원보다도 더 적었던 것이다!!
(8년째부터는 수수료가 줄어들고, 완납한 후에는 한 차례 더 수수료가 줄어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수수료가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 투자상품도 아니고 금리를 따라가는 저축성 상품에 불과하면서 월2만6000원의 수수료가 왠 말이냐!!)
연금보험 상품의 살인적인(!) 수수료에 경악한 나는 가입 초창기에 빠지는 사업비 등의 수수료가 더욱 높은 변액연금보험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단 가입을 미뤘다.
변액연금보험 가입을 미룬 또 다른 이유는, 나름 재테크에 관심이 있는 내가 적지 않게 노력했는데도 이해하기 힘든 상품을 가입하는 것이 과연 좋을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가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상품은 그만큼 가입자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상품의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판매하는 보험사의 횡포에 대한 불신이 점점 커졌다.
안티재테크 전문가그룹의 의견도 듣다
그 다음으로 내가 찾은 것은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의 보험료 다이어트 강좌였다. 평소 에듀머니 제윤경 대표의 재테크 철학에 많이 공감했던 터였는데 에듀머니 홈페이지에서 보험료 다이어트 강좌가 있는 것을 보고, 마치 나를 위해 강좌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반가웠다. 3시간짜리 1회 강좌였는데 수강료 3만원을 내고 강좌를 신청했다.
(에듀머니는 투기성 재테크를 부추기는 사회금융구조를 비판하며, 합리적인 소비와 돈 관리 등 건전한 경제마인드 확산을 위한 교육 상담 활동을 하는 단체)강좌는 에듀머니 소속 보험전문 강사가 진행했는데 강좌는 우리가 금융자본이 확산시키는 공포 마케팅에 휩쓸려, 대부분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재테크 시장에 뛰어들어 실패와 좌절을 맛보며 오히려 합리적이고 건전한 소득관리, 미래계획을 하지 못하는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급한 마음에 이런저런 금융상품 가입과 재테크 등에 뛰어들었다 역시 대부분 성공하지 못한 필자 역시 참담한 마음과 반성, 회한, 뒤늦은 깨달음, 새로운 다짐 등이 뒤범벅된 복잡한 마음으로, 강좌 내용에 공감했다 --;;)
노후대비를 하기 위해서는 변액연금보험, 보험, 펀드 등의 상품을 반드시 가입해야 할 것처럼 부추기지만, 노후대비가 꼭 그런 금융상품을 가입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이런 상품들은 대부분 수수료가 높아 납입한 금액의 상당부분을 금융사가 가져가는 데다가, 투자 상품의 경우 미래에 실제로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금융사가 제시하는 장밋빛 수익률이 반드시 현실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수수료 높은 이런 상품에 가입해 금융사의 배만 불려주는 것보다,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저축이나 수수료가 낮은 인덱스 펀드 등의 알찬 투자상품을 골라 그 것을 노후자금용 등 용도별로 따로 관리하라고 조언했다.
강사는 이어 종신보험, CI보험, 암 보험, 연금보험 등 구체적인 보험 별 특징을 소개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보험과, 필요 없는 보험과 보장내용, 보험을 구조 조정하는 방법 등을 제시해주었다. CI보험과 종신보험이 구조조정 1순위의 보험이었다.
특별히 책임질 가족이 없는(즉 가장이 아닌) 내가 사망보험금 5000만원의 종신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것 자체가 과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사 역시 이 부분이 불필요한 보험 내용으로 지적했다.
과거 이 보장내역을 없애거나 줄이려고 콜 센터, 보험설계사 등에 알아봤지만 대부분 별다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이번 강좌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보험금 액수를 줄여 납입금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보험사는 이런 방법을 알고 물어보지 않는 한, 자신들이 먼저 이런 방법을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보험설계사도 보장이 부족한 부분만 분석해 추가가입을 권유할 뿐, 중복 또는 과잉 보장된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
강사 분은 강의가 끝난 후 참석자가 가져온 보험증권과 참석자의 질문 등을 바탕으로 실제로 개인별로 어떻게 보험료를 다이어트하면 좋을 지에 대해 조언해 주었다.
에듀머니의 강좌는 기본적으로 보험은 실손 보험 하나만 가입해도 충분하며(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이 좋은 편이므로) 여유가 있다면 생명보험 하나 정도 추가로 보유하는 것 정도까지가 괜찮다고 했다. 나는 가장이 아니므로 굳이 종신보험이 필요 없으므로, 적절한 시점에 종신보험을 연장정기, 감액완납 등의 방법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병력이 없을 때 가입했던 종신보험인 만큼 이 종신보험에 같이 설계했던 특약부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종신보험은 해지하지 않고 그냥 유지하기로 나는 결정했다. 대신 별 필요가 없는 사망보험금을 최소가입금액 한도까지 줄여 납입 보험금을 절약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업수수료가 높고, 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최종 수익률을 장담할 수 없는 변액연금보험 대신 저축과 수수료가 싼 펀드상품 등을 통해 노후자금을 별도로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무슨 상품에 가입해야 꼭 노후자금이 마련되는 것이 아니라, 금융사의 그런 마케팅에 휩쓸리지 않고 착실하게 돈을 모아나가는 것이 더 안전하고 확실한 대비라는 생각에 더 공감이 많이 갔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품, 수수료가 너무 비싼 상품, 투자상품이라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이 얼마인지 불확실한 상품은 지금은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월 납입 보험료 반으로 줄고, 보험료 일부는 환급 받아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보험료 구조조정을 실행했다. 이미 완납한 생명보험사의 건강보험 하나는 다른 부분은 그대로 두고 사망특약(사망 후 500만원 지급)만 해지해 그 동안 사망특약으로 납입했던 보험료 중 약 35만원을 환급 받았다.
납입기간 20년으로 10년째 납입중인 종신보험은 사망보험금 5000만원인 주계약을 1000만원(최저가입한도)으로 줄였다. 월 4만원이 조금 넘었던 보험료 중 이 주계약이 차지하는 부분이 2만원을 넘었는데, 주계약 보장금액을 줄이자 주계약에 해당하는 보험료가 2만원에서 4000원대로 줄었고, 총 월 납입 보험료도 4만원 초반에서 2만원 초반대로 반으로 줄었다. 그리고 줄인 주계약 보험금에 맞춰 기존에 납입했던 주계약 보험료의 일부를 환급 받았는데, 이 환급 금이 170만여 원 정도됐다.
그리고 올해 새로 가입했던 갱신형의 보장성 건강보험은 기존 보험과 보장내용이 중복돼서 해지했다. 월 2만원 정도씩 10개월 정도 납부해 총 20만원 정도가 들어갔는데, 10개월 만에 중도해지하자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환급금 0원!!! (무력한 환급금의 현실을 실감했다--;;)
가입하고 있는 실손 보험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강좌에서 제안한 대로 실손 보험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되는 보험이라고 한다.
앞서 말했던 월 20만원 납입하고 있는 연금보험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 보험에 포함된 사망보험금 등 보험 보장내역은 원래 필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 상품을 가입하는 한 보장내역을 줄이거나 해지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보험 부분은 그냥 포기하고 원래 연금 용도로 납입했던 것이므로 연금 명목으로 계속 납입하기로 했다. 7년이나 납입한 데다가 납입기간이 길어질수록 수수료가 줄기도 하고, 저축성 상품이라 수익률은 높지 않지만 원금과 최소한의 이자가 보장되기 때문에 계속 납입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보험료 구조조정을 통해 월 납입 총 보험료(연금보험을 제외한 순수 의료비용 보험을 기준으로)가 8만원에서 4만원으로 반으로 줄었고, 주계약과 특약을 일부 축소 또는 해지하면서 약 200만원의 보험료를 돌려받았다. 그 동안 대형 보험사들에게 돈을 뜯기며 살았다는 피해의식(!)이 있었는데 보험료 구조조정을 통해 눈먼 돈을 다시 찾아왔다는 성취감이 생겼다. 앞으로는 가능한 아프지 않게 건강관리를 잘하면서 실손보험을 좋은 상품으로 갱신하며 살기로 다짐했다.
이번 과정을 거치며 살펴보니 주변에는 보험만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맹신(?)으로 엄청 큰 돈을 보험료로 납부하는 사람도 있었고, 보험사를 믿지 못하겠다며 보험을 전혀 들지 않은 사람도 의외로 적지 않았다. 자신이 동의할 수 없다며 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사람의 소신 있는 판단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나는 저런 주체적인 판단을 왜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있을 지도 모르는 위험을 적절한 수준에서 대비하는 정도의 보험은 미래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보험사의 광고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 과정을 거치는 것은 필요할 것 같다.
나를 포함한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게 돈을 벌어서, 너무나 허무하게 엉뚱한 재테크로 돈을 버리고 있는 현실을 이번 과정을 통해 목격했다. 돈은 무서운 존재이고, 돈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으면 삶 또한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