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때문에 산촌지역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골짜기에 들어와 살면서 보니 야생동물 보호가 어쩌고 하는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멧돼지가 감자, 고구마, 더덕을 마구 파헤쳐놓는다. 우리 마을의 소득 작물 세 가지 중 하나가 더덕인데, 멧돼지 습격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3~4년 농사가 순식간에 작파된다.
수컷 멧돼지는 혼자 다니지만 암컷은 보통 새끼들을 6~8마리씩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한번 밭에 들어오면 먹지도 않으면서 이빨자국으로 난장판을 쳐놓고 간다. 작년에 개천가 최씨 할머니께서 “3년 동안이나 밭을 매고 애쓴 더덕밭을 멧돼지가 망쳐버렸다!”면서 한숨짓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멧돼지가 태생적으로 고구마, 감자 같은 뿌리 작물을 좋아하는데다 우리 밭에는 지렁이가 많아 지렁이를 잡아먹으려고 뿌리고 뭐고 사정없이 헤집어놓기 일쑤다. 한번 들이닥치면 농작물의 상품성은 끝이다. 한번은 야콘밭을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마치 우리 가족이 필요한 만큼 캐낸 것처럼 차근차근 질서 있게 파 들어간 것이 보였다. 그나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2005년 겨울로 기억하는데 갑자기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다. 확인해보니 간밤에 멧돼지가 마을에 내려와 저수조 탱크의 배수 파이프를 물어뜯은 것이다. 트럭으로 몇 번을 오가며 길어 부어야 하는 식수를……. 겨울에 눈이 오지 않으면 야생동물들은 목 축일 물을 찾아 마을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데, 방심했던 것이다. 물소리가 나지 않는데도 물이 있다는 것을 아는 짐승들의 감각은 천부의 센서다. 놀랍다.
멧돼지만 우리를 괴롭히는 게 아니다. 고라니는 배추, 콩, 모종을 차근차근 뜯어 잡수신다. 모종을 심은 날 밤, 어쩌면 그렇게 귀신같이 알고서 들어올까? 어떤 해는 고라니의 습격을 받고 김장배추 모종을 세 번이나 심은 적도 있다. 배추 모종을 심고서는 노루 망을 둘러치는 것이 순서인데, 어물쩍 넘기려다 큰코를 다친 것이다.
김장배추 모종을 심을 때 막대한 피해를 주는 다크호스가 또 있다. 귀뚜라미다. 배추 모종을 심고 물을 주면서 앞으로 나가다 보면 뒤따라오면서 모종 줄기를 똑똑 잘라버린다. 귀뚜라미를 쫒기 위해 물 대신에 목초액과 소변, EM(유용미생물)을 희석하여 모종에 뿌렸더니 효과가 있었다. 냄새가 고약해서인지 나타나지 않았다.
콩밭을 망치는 놈은 두 번에 걸쳐 등장하는데 콩을 심어놓고 새싹이 나올 무렵에는 산비둘기와 긴꼬리까치가 씨콩과 콩 싹을 파먹는다. 햇빛에 반사되는 줄을 쳐놓고 허수아비도 세우지만 효과는 며칠뿐이다. 새들은 아예 허수아비 팔에 앉아 바람을 쐬기도 한다.
“농사짓기 힘들지?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다 이렇게 공생하는겨!”
콩잎이 한 뼘 이상 자라날 무렵이 되면, 이번에는 노루와 토끼가 부드러운 콩잎을 잘라 먹는다. 그럭저럭 꽃이 필 무렵 이후라면 콩잎을 잘라 먹어도 따먹은 줄기에서 콩이 더 많이 열린다. 콩이란 본래 잎을 일부러 낫으로 쳐주기 때문이다. 이거 딱 한 가지만 서로 공생이 된다고 할까.
핀드혼 공동체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다. 그들은 모든 존재 사물에는 정령이 있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무와 밀, 각종 풀과 채소, 가축들과 대화를 하는데, 산토끼가 자주 출몰하여 채소를 뜯어 먹을 때 쫒는 방법은 출몰 지역을 바라보면서 대화로 타협하는 것이라고 한다.
“산토끼야, 우리는 너희를 사랑한다. 그런데 너희 때문에 요즘 스트레스가 대단하단다. 우리가 가꾼 채소를 버려놓으니 말이다. 먹을 것은 농장 밖에도 많이 있으니, 우리가 애써 심어놓은 농사를 망치지 말아다오. 부탁이다!”
그렇게 ‘튜닝(소통)’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가보지 못해서 사실은 알지 못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우리 공동체는 모임이나 전례를 시작할 때 서로 손을 잡고 ‘한 몸 되기’를 한다. 너와 내가 하나의 숨결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맥박으로 확인하면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존재 일체’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핀드혼 공동체는 사람관계를 넘어 동식물과도 그렇게 튜닝을 한다니 참 놀랍다.
핀드혼 생각이 나서 나도 몇 번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밭을 향해 팔을 벌리고 어딘가에 숨어서 나의 간절한 탄원을 듣고 보고 있으리라 믿으면서. 그러나 멧돼지와 고라니, 산토끼들은 나의 진실을 인정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지고 놀았다. 그날 밤도 다녀간 것이다!
내 책임도 있다. 진실한 믿음 없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교우들에게는 진실한 믿음은 산도 옮길 수 있다고 설교하면서……. 신부에게 믿음이 없으니 돌팔이 신부다.
면사무소 산업계에 신고를 했더니 다른 방법이 없다며 포수를 보내겠다고 한다. 야생동물과 조류의 농작물 피해 방지를 위해서 관청에서는 필요하다면 포획과 사살을 특별 허가하기도 한다. 그 후 포수들이 산으로 올라갔고 총성도 가끔 들렸다. 멧돼지를 몇 마리 사살했다는 말은 전해 들었지만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듬해 대안이 제시되었다. 전기 목책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저주파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밭 주변에 둘러치는 방식인데, 군청의 보조사업으로 이루어졌다. 효과는 대단했다. 그런데 멧돼지가 고라니보다 머리가 좋았다. 멧돼지는 한번 감전으로 혼나면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고라니나 노루는 당하고도 늘 나타나곤 한다. 한참 도망가다가 문득 돌아보면서 ‘내가 왜 도망가고 있지?’ 하는 것이 노루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인 것 같다. 닭대가리가 아니라 노루대가리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기억력은 중요하다.
도시에서는 멧돼지 고기를 파는 곳이 많은데 모두 양돈으로 생산한 잡종이라고 한다. 실제 멧돼지 고기는 너무 질겨서 우리 동네 사람들은 먹지 않는다. 삼겹살을 사다먹는 게 더 좋다고 말한다.
겨울이면 포수들이 마을 뒷산인 해발 930미터의 용화봉에 심심찮게 올라간다. 멧돼지를 잡게 되면 쓸게만 떼어내고 버린다고도 하고, 쓸게는 시가로 100만 원을 호가한다고도 하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또 고라니와 노루는 그 뼈를 매달아놓았다가 썩힌 후에 관절염 치료에 쓰인다고 한다. 그것도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법으로 보호되면서 개체수가 한없이 늘고 있다. 특별히 멧돼지는 먹이사슬의 천적이 호랑이라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천적이 없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골짜기를 중심으로 매년 출몰 지역이 달라진다.
길 잃은 어린 고라니와 멧돼지 새끼, 산토끼를 포획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분유를 먹이고 더러 동물병원에도 데리고 갔었는데 한 번도 살려내지 못했다. 그 후로는 포획하지 않고 내버려둔다. 야생은 야생에 맡기는 것이 그들의 생태임에 동의한다.
아무튼 목책기 덕분에 야생동물 피해는 현저히 줄었다. 자기 농사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로만 보지 말기 바란다. 멧돼지 고라니도 먹고살 권리가 있고, 우리도 우리 농사를 지킬 권리가 있다. 타협을 하면 좋겠지만, 살아보니 사람끼리도 소통이 어려운데…….
창밖에 긴꼬리까치가 벌레를 찾고 있다. 행복하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