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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한밤중에 ‘유로 지름신’이 강림하시다

등록 2011-08-26 19:48

  

잠결에 한 켠에서 문자 들어오는 신호음에 눈을 떴다. 시도때도 없이 오는 광고문자려니 하고 다시 잠을 청하는데 얼마 후 같은 소리가 또 난다. 할 수없이 눈을 부시시 뜨고서 시계를 봤다. 새벽 두시였다. 혹여 긴급한 연락이 왔나 싶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EURO...해외정상 승인”   이게 뭐야? 유로를 그만큼 쓸수 있다는 안내문자인가? 하고 눈을 비비며 다시보니 그게 아니였다. 누군가 이역만리 유럽땅에서 내 현금카드를 쓰고 있는 것이였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해킹이라는거구나.   얼른 카드회사로 숫자판을 눌렸다. 신호음이 들리고 이어서 기계음성이 시키는대로 몇 번을 따라가다가 뭔가 제대로 연결이 안되는지라 다시 시도한 끝에 겨우 사람음성을 만났다. 칠흙같이 어두운 암자로 가는 산길에서 등불을 들고 마중나온 이를 마주한 것처럼 반가웠다. 본인여부를 묻는 몇가지 물음과 답변을 나누는 사이에 또 승인문자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날 잡아봐라!’라고 하면서 계속 그어대고 있는 모양이다. 소비를 부채질하는 권능을 가진‘지름신’이 강림한 것이였다. 겨우 지불중지를 요청하고 이런저런 수습과정을 마치고 나니‘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것처럼 정신마저 아득해왔다.   사용처가 프랑스 잡화점이라고 했다. 카드는 한국에 있는데 사용하는 사람은 유럽에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신통방통한 일이다. 분실신고가 어렵도록 토요일 꼭두새벽을 이용하는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지만, 그 한밤중에도 긴급전화를 받아주는 카드회사의 깨어있는 남자직원이 있다는 사실에 또 안심했다.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한 셈이다. 만약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면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혹시나’하고 마지막 결제를 조계사 근처에 있는 업소를 찾아가 해킹사실을 전했다. 혹시 다른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단말기를 확인해보라고 당부했다. 하지만‘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주말이 지나야 확인이 가능하다’는 사무적인 어투만 돌아왔다. 괜히 우리가게를 의심한다는 듯한 그런 모습에 괜한 짓을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바쁜 마음에 월요일 오전 종로구청으로 가서‘본인은 그 시간에 한국에 있었다’는 출국증명서를 발급받아 카드회사에 제출했다. 세상에! 이런 증명서도 있구나.   언젠가 2박3일짜리 소규모 논강(論講)모임을 주관한 적이 있었다. 편의점과 여타 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여러가지 종류로 샀다. 그 때 휴대폰이 울렸다. 카드회사였다. 평소 나의 소비성향과 전혀 다른 내용의 결제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데 혹시 카드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냐는 것이였다. ‘본인이 맞다’고 대답하고 사정을 설명한 후,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나니 갑자기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두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까닭이다.   신용정보사회에서 개인정보가 ‘나쁜의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면 아무리 편리하고 화려한 제도라고 할지라도 이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전혀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 ‘나쁜 의도’를 가진 것으로 치부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신뢰가 무너졌다는 불쾌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득달 같이 새카드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하지만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 한동안 그대로 두었다. 이달치 카드사용 명세서는 느릿느릿 도착했다. 다행이도 문제의 그 부분은 요금청구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쩝! 이번 일은 이 정도에서 툴툴 털어버려야겠다. 어차피 5일장날 우시장에 송아지를 사려가는 사람처럼 만날 현금을 들고다닐 수 있는 건 아니잖는가?     조현기자 트위터 팔로우해 최고의 필진들 글 받기       스페셜 글: 열광적 신앙으로 제정신을 잃는게 엑스터시인가    스페셜글: 엘리트는 적게일하고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준비된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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