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원래 수명은 얼마나 될까?
무려 30년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난 무수한 병아리들 중 삼계탕용은 28~30일을 살다 도계 당하고, 후라이드 치킨용은 40일, 닭도리탕이나 백숙용 큰 닭이 60~70일 정도 살다간 세상을 하직한다. 산란용 닭들이 운이 좋아 제법 오래 사는 편인데, 육축기간 4~5개월에 길어야 1년쯤 알을 낳다가 채산성이 안 맞으면 도계장행이다. 우리 같은 자연양계 농가를 만나면 정말 운이 좋은 셈이다. 두 번 정도 털갈이에 거의 4년을 살게 되고, 다른 농가로 옮겨져 그럭저럭 1, 2년을 더 살게 되니 천수까지는 아니어도 백수는 누리는 셈이다.
닭의 수명처럼 우리는 자연에 대해 사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 닭들은 마른 모래를, 소화를 돕기 위해 먹기도 하지만 날개 속에 붙어사는 진드기들을 퇴치하기 위한 모래목욕을 위해서도 필요로 한다. 닭은 먹이로 옥수수, 콩 등 곡식을 먹기도 하지만 풀이나 채소를 훨씬 더 좋아한다. 물론 지렁이 등 벌레도 먹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골고루 먹기 위해서는 닭들에게 마당은 필수적이고 일정 넓이 이상의 면적을 필요로 한다. 좁은 양계장에 일정 수 이상의 닭들을 넣으면, 스트레스가 심해져 닭들이 사나워지고 서로 꽁지부분을 쪼아 피가 나게 되고, 닭들이 피를 보면 더욱 달겨들어 상처부위를 서로 쪼아 먹기 때문에 결국 그 놈은 죽게 된다. 닭들 스스로 개체 조정을 통해 밀도를 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닭들에게 필요한 영양소와 환경조건들을 일일이 계산해, 완전 밀폐된 무창식(창이 전혀 없음) 첨단과학(?) 계사를 만들어 닭을 철창 속에 가두어 사육하며, 곡식을 주원료로 하는 배합사료만 준다. 이런 환경을 닭들이 좋아할 리 없으니 아무리 맛있는 사료를 넉넉히 준들 소화가 잘 될 리 없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소화시켜 계란 많이 낳으라고 호르몬제, 비타민제 먹여가며 환하게 불까지 켜 준다. 닭이 늘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으니 소화 흡수율이 반도 안 돼 닭똥 냄새가 진동하게 되고, 병에 대한 저항성이 약해지니 늘 항생제를 투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에서 사는 닭들이 알을 낳으면 그 알 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틱 낫한 스님은 그 속에 ‘화(스트레스)’가 있을 거라고 주장하신다. 이 말이 맞는다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자기가 먹은 것으로 이뤄지는 법이니, 이런 계란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닭이 겪고 있을 스트레스를 온전히 물려받고 있는 셈이다. 어디 닭들만이 스트레스 속에 자라고 있는가? 현재 행해지고 있는 과학농법이란 걸 조금만 관심 갖고 자세히 뜯어보면 모두 이런 식이다. 소, 돼지는 물론 딸기, 오이, 토마토, 파, 콩, 옥수수 등 대부분 농산물들이 자기가 원하는 환경에서 자유롭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농부’가 아닌 ‘농업경영인(!)’이 주관적으로 만든 환경에서 만들어진 조건 속에 살고 있으니 여간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맛있고 영양이 듬뿍 담긴 농산물이 아니라, 어쩌면 스트레스 덩어리를 매일 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농사 잘 짓는 농민들은 대개 공통점이 있다. 즉 자기가 기르고 있는 가축이나 작물에 대해 생리를 잘 알고 있다. 그 작물이 어떤 날씨를 좋아하는지, 물은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어떤 거름이나 먹이를 좋아 하는지 등등.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정성을 다해 마련해 준다. 그러면 작물이나 가축은 건강하게 자라, 새끼 잘 낳고 열매 잘 영글기 마련이다.
이는 가축이나 농작물도 한 ‘생명’으로 존중하고 나름의 인격체로 인정하게 될 때, 그들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이해할 때에만 그런 것들이 보이게 된다. 그럴 때 ‘내’가 원하는 환경이 아니라, ‘너’가 원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 노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한다면서 상대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주면서 스스로만 만족하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된다. 상대가 좋아하지도 않는데 열심히 주면서 자기는 그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상대방은 그의 호의나 보살핌이 행복하거나 고맙지 않을 수밖에. 그러면 스스로 실망하고 배신감 느끼고 본전 생각나고… 결국에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어!’라고 말한다. 닭들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초현대시설을 갖춘 무창식 계사를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