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학 수업 시간. 학생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묻는다. “선생님.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본 적 있어요? 사랑 얘기해주세요!” 휴대폰에 입력된 문장 ‘사랑 안에서 길을 잃다’를 학생들이 보고 수업 시간에 던지는 질문이다. 수학 시간의 따분함을 수학 교사인 나의 연애, 결혼 이야기로 채워보려는 심산이다. 내가 휴대폰에 새겨 둔 문구는 루미의 시집 제목을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말이다. 뭐, 괜찮다. 사랑 아닌 것 없는 세상 아닌가!
아내와 만나기 전 좋아했던 초등학교 친구, 대학 동기, 대학 후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왕 나온 얘기라면 즐겁고 안타까우며 이루어지지 않는 뭐 그런 추억이 있어야 함을 나는 안다. 실제로 그런 애틋함이 있었고.
학생들과의 만남은 늘 긴장감과 즐거움 그리고 아련함이 섞인다. 수학이라는 지적 작용이 시험이라는 통과 의례와 만나면 더욱 긴장감이 돌고, 일단 지나간 통과 의례를 뒤로한 채 여유란 녀석과 만나면 즐거움이 생기며, 성장통을 겪으며 고민하는 진지함 속에서는 아련함이 느껴지기에 그렇다.
남녀 간의 사랑도 한동안 길을 잃게 만들지만, 나와 또 다른 나와의 사랑도 길을 잃게 만든다. 집착이라는 고질병을 단칼에 베어 버리려는 꾸준한 시도에는 갖가지 달콤한 유혹이 길 한복판에서 나를 손짓하기도 한다. 그 과정을 통과한 후의 평온함은 사랑 자체를 잊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매번 길을 떠나는 것인가?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리려고? 그런데 그 길이 있기는 있는 건가?
2.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는 일종의 선이 있다. 각자가 설정해 놓은 넘어서는 안 되는 선. 그 선을 넘었을 경우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다른 차원으로 넘어설 것인가? 학교와 교회에도 보이지 않는 선들이 적지 않다. 그 선을 아는 사람들은 때론 편하고, 때론 행복해 보이며 안정됨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그 선이 벽이 되면 나뉨이 되고 소위 전통이 되어 마음 한 켠을 아예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 학교 안에서, 모든 학생과 선생님 보는 앞에서 소위 애정 행각을 보인 남녀 학생을 두고 다양한 생각들이, 의견들이 오간다.
공동체가 만든 선이 절대는 아니지만 상대적인 경계 설정이 그 공동체의 한계라면 그 역시 받아들일 만하다. 일시적이라도. 중요한 것은 그 경계, 선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또다시 넘나드는 모습들이 자주 생긴다는 사실. 나는 그 모습이 재밌다.
두 학생에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두 학생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선과 경계가 있기는 한 걸까?
3.
1993년 어느 날, 관옥 선생님께서 <무위당 장일순의 老子이야기(上)>(다산글방)을 손편지와 함께 보내 주셨다. 30년 전 이야기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나에게 선생님의 편지와 책은 나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삼인’에서 2003년 개정 초판을 낸 이래로 20년 만에 초판 22쇄에 즈음하여 <무위당 장일순의 老子이야기>를 구입했다.
시공을 초월하여 한결같은 진리에 뿌리를 내렸는지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아직은 포장된 문명의 쓰레기 더미에 묻혀 지내고 있다. 그런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어떤 생기가 스며 있는지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귀한 책. 감사하다.
글 박진호(순천사랑어린배움터 공동체원)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배움터 마루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