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 머물러 있는 배는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정박해 있는 배는 배가 아니다.’(The ship stays in the harbor is the safest…But the ship at anchor is not a ship) 나의 메모장에 메모해 둔 글귀다. 미국 교육학자 존 A. 쉐드의 말로 알려져 있지만 출처는 다양해 보인다. 정호승의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라는 책에도 소개되어 있다. 참 좋은 은유다. 항해하기. 용기를 가지고 바다로 출항하기. 이런 메시지를 던져준다.
하지만 이 말을 ‘어떤 목표를 지니고 특정 목표지를 향해 나아가라’라고 해석하는 것은 별로라고 본다. 가령 이런 식이다. ‘항구에 정박해 두려고 배를 만들지 않았다. 그것이 배를 만든 이유가 아니다. 정박해 있는 인생은 진정한 인생이라고 할 수 없다. 인생의 목적을 명확하게 하고 도전하라.’ 이는 성공주의나 목적론적 메시지로 오독·오용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유목하기, 표류하기의 관점에서 이 글을 읽으면 전혀 달라진다.
‘정박하고 정주하기’를 그만두고 유목하는 삶을 살라. 미답의 길로 나아가라. 목표가 없어도 좋다. 표류하여도 좋다. 안주하기를 그만두고 일렁거리는 바다로, 펼쳐진 초원으로 나아가라. 모든 경험을 받아들이고 즐겨라. 그것이 인생이다.
떠남, 그것만이 새로운 생성을 만들어낸다.
정박해 있는 배는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제작된 배가 아니다. 우리는, 나는 특정 용도로 만들어진 배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바람, 새, 음악, 아이, 철새, 작품, 여행자, 소설, 드라마,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자신을 고정하거나 규정하지 말라. 유동하고 흘러가는 나, 변화하고 움직이는 나, 살아 있는 나, 나만의 나로 살아가라. 나다움, 그것은 나를 고정시키는 닻을 끊을 때 시작된다,고 읽는다. 밤 카페에서.
글 황산(인문학연구자· 씨알네트워크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