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제게 종종 물어봐요. 한국 와서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말입니다. 제게 가장 힘든 것은 스님답지 않은, 수행자답지 않은 제 모습과, 그런 저와 싸우는 거예요. 지속되는 내면과의 전쟁이 저를 괴롭힙니다.
‘자신과의 관계’가 가장 핵심적이며 결정적입니다. 자신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기 어려워요. 모든 문제는 스스로 행복하지 못한 데서 비롯됩니다. 바깥세상은 환영이에요. ‘보고 있는 눈’뿐이에요. 그런데 사실은 이것도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를 보는 눈’을 말합니다. 자신을 보듯이 남들과 세상을 보게 되고 자신을 대하듯이 남들과 세상을 대하게 됩니다.
불교는 자신을 바꾸는 게 아닙니다. 자신을 알아가는 거죠. 앎에서 모든 좋은 것이 비롯됩니다. 이것을 아는데도 계속 자신을 바꾸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행을 잘못하고 있어요. 자기도 모르게 업을 정화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마음의 습관, 즉 바람과 두려움을 강화시켜요. 자신이 완벽해질 때까지 행복과 깨달음을 기대하고 미룹니다. 업을 닦고자 하면서 업을 쌓기 때문에 영원히 기다리게 되는 거죠.
수행은 무의식 속에 있는 마음의 습관을, 업을 드러나게 하는 겁니다. 물론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항상 드러나고 있지만 업을 접하는 방식이 좋지 않아요. 이 한가지만 깊이 이해하고 마음에 담으면 삶의 방향이 달라지고 마음이 즉시 너그러워져요. 성장은 환영이에요. 꿈이에요. 꿈은 이루는 게 아니라 깨는 거예요. 바라는 것을 이루는 게 아니라 바라는 마음을 버리는 거예요. 허물이 없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허물을 받아들여서 행복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일어나는 생각과 동일시하면 업을 강화시키게 됩니다. 일어나는 생각을 알아차리면 정화가 됩니다. 알아차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알아차림은 판단하지 않는 관찰입니다. 객관적으로 친절하게 자신을, 업을 바라보는 겁니다. 알아차림 속에 항상 여유와 친절이 있어요. 여기서 정화와 치유가 일어나요.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어요. 허물을 건설적으로 보는 거예요. ‘나는 나쁜 스님이다’라는 생각은 파괴적입니다. ‘나는 좋은 스님이 되고 싶지만 안 좋은 습관이 많다.’ 이런 친절한 인정이 방법입니다. 인정은 받아들임을 의미하며 동시에 변화가 일어나지요. 인정과 불교에서 말하는 참회는 같은 맥락입니다.
갈 길은 멀어요. 근데 가고 있잖아요. 행복하게 갈 수 있어요. 자연스럽게 갈 수 있어요. 이게 받아들임의 길입니다.
자신에게 친절하세요. 결코 잊지 마세요. 매 순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응원하세요. 그러면 남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러면 남들을 항상 응원할 수 있어요.
남들한테는 잘하는데 자신에게는 가혹합니다. 남들은 이해하고 응원하는데 자신에게는 불친절합니다. 남들에게 잘해주는 만큼 자신에게도 잘해주세요. 사랑은 조건 없이 좋게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응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려고 하지 마세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 게 자신을 위한 사랑입니다. 당신 자신이 된다는 건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Being yourself is loving yourself).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자신의 행복을 찾는 거예요. 자신과 잘 지내면 행복해요. 스스로 행복하면 남들도 세상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용수 스님/세첸코리아 대표